김수근 건축가가 작업한 주택 건물에 자리 잡은 레리치.
본래의 모습을 살린 공간에 레리치의 결에 맞는 가구와 기물을 직접 제작해 채웠다.
완연한 가을색으로 물든 남산 둘레길 아래 오솔길처럼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건축가 김수근의 미공개 주택 건물 한 채가 동굴처럼 웅크리고 있다. 두텁바위가 있던 가파른 지형에 낮고 평평하게 지어진 검은 벽돌 건물은 땅의 강렬한 기운은 안으로 품고 탁 트인 하늘을 향해 부드럽게 열린 형태다. 다부진 모습의 건물은 그 앞으로 펼쳐진 넓은 정원과 더불어 보면 신묘함이 감도는 제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외벽과 출입구의 연속적인 아치 형태가 인상적인 공간. 내부로 들어서면 텅 빈 공간 가운데 기다란 나무 테이블이 자리하고 돌을 깎아 만든 토르소, 실제 통나무를 잘라 세운 기둥이 있는 공간을 따라 숲을 거닐 듯 레리치의 옷들이 전시되어 있다.
2005년 시작한 레리치는 이탈리아의 비스포크 기술을 현대적인 미감으로 해석해 손바느질로만 옷을 만든다. 공방의 바느질 장인들이 만드는 옷은 한 달에 16.2벌. 한 벌에 800단계의 공정, 100여 시간을 거쳐 완성되는 레리치의 옷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가치 있는 옷을 만든다’를 모토로 극한의 장인 정신을 담고 있다. 양복 기술이 탄생한 영국이나 이탈리아도 아닌 한국에서, 명품 시장도 트렌드 영향을 받는 패션 시장에서 결코 쉽지 않았을 20여 년의 세월 동안 김대철 대표는 옷을 주제로 건축, 도예, 사진, 문화예술 전반을 들이파며 레리치의 옷을 개념화했다. 레리치의 옷은 그 자체로 살아 있고 감각하는 옷이다. 입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경유해온 옷, 인체의 곡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며 친밀한 집처럼 나를 감싸는 옷.
다이앤 애커먼은 자신의 저서 <감각의 박물학>에서 ‘시인 랭보는 예술가가 생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모든 형태의 사랑, 고통, 광기를 경험해보는 것이라 주장했다’고 썼다. 랭보의 시선에서 보자면 레리치는 옷에 관한 한 사랑, 고통, 광기를 모두 지나온 김대철과 그와 뜻을 함께하는 장인들이 만든 진실된 결과물이다. 그가 꿈꿔온 것은 허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환상이다.
비스포크 재킷을 입은 레리치 김대철 대표.
청담동 레리치 건물을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이 강렬했어요. 옷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옷을 만들기 시작했나요?
저는 무언가 조금씩 바꿔보고 싶어 하는 성격이에요. <객석>이란 월간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회사에 제안해 클래식 잡지를 명품 잡지 스타일로 바꿨어요. 좀 더 문화적으로 가길 바랐죠. 그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자신감이 생겨 직접 웨딩 잡지를 창간했어요.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어렵게 잡지사를 운영하다 다른 이에게 넘기고 다시 회사 생활을 하는데 어느 날 걷다가 맞춤 양복점을 봤어요. ‘양복 두 벌에 00만원’ 이렇게 내걸고 옷을 맞춰주는 사업이 전국적으로 성행했는데 여성들은 “저기 은갈치 지나간다” 하며 웃음거리로 말했죠. 그때 이 시장이 쇠락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안타까웠어요. 남자 양복엔 여러 감정의 결이 있는데 아쉽더군요. 그래서 이미 시장이 존재하고 있으니 맥락을 바꿔보자는 상상을 했어요.
그때가 몇 살인가요?
서른 살이요. 소공동 양복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업 제안을 했지만 다 퇴짜맞았어요. 그러다 한 분과 뜻이 맞아 디자인을 바꾸고 기획서를 만들어 웨딩업체에 턱시도를 대여하는 사업 구조를 갖췄어요. 한 고객의 옷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드렸는데 다음 날부터 매장 앞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는 거예요. 소공동식 비스포크의 부활이었어요. 그렇게 잘 운영하다 또 아쉬운 부분이 생겼죠. 더 하이엔드로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동업하던 할아버지께 다 넘기고 저는 다시 주변에 돈을 빌려 청담성당 뒤 4층짜리 건물을 빌렸어요. 프리마호텔에서 테일러 노조위원장을 만나 당대 최고를 모아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업계 최고로 불리던 장한종 재단사, 지금도 레리치에 계시는 이영탁 선생 등 각 파트의 1등이 모이게 됐죠. 레리치의 시작이에요.
레리치라는 명칭은 이탈리아의 도시 이름에서 따온 건가요?
레리치를 시작하기 전 부속과 원단을 사려고 이탈리아에 출장을 갔어요. 새벽에 레리치라는 마을에 내렸는데 너무 아름다운 항구도시였어요. 밤거리를 걷는데 바다는 그랑블루였고 대성당 두오모에 걸린 달이 손에 닿을 듯 정말 큰 거예요. 만화인 줄 알았어요. 그때 떠올린 거예요. 브리오니도 양복점 재단사 두 명이서 술 마시고 걷다 벽에 붙은 포스터에 ‘환상의 섬 브리오니로 오세요’라는 문구를 보고 이름을 지었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1 시침질이 드러난 레리치 재킷을 입은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2 레리치 한편에서는 공방 장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3 고전적인 M65 재킷을 재해석한 풍성한 볼륨의 아우터. 이탈리아 공방에서 제작한 레리치 건메탈 스냅을 사용했다. 4 레리치의 테일러링 노하우가 집약된 트렌치코트. 실크와 코튼을 이탈리아에서 직조한 시그너처 원단을 사용했다.
원단 사이의 공기층까지 고려해 만든 옷이라는 게 느껴져요.
바늘과 원단이 만날 때 생기는 공기층 개념이 비스포크의 핵심이에요. 사람들이 손으로 만들어서 좋다고 하지만 그 이유가 접합의 장력이나 방향을 손으로 다 컨트롤하기 때문이죠. 저희는 폭신한 상태의 빵처럼 공기를 가두는데 여기엔 옷에 인간을 담고 싶다는 개념이 있어요. 사람의 몸은 부드러운 곡선이고 봉긋하잖아요. 자기 몸에 맞게 툭 떨어지고 휘어지는 느낌을 다 바느질로 공기를 가둬 만들어요.
언제 이걸 발견했어요?
저는 잘 모르는 분야는 좋다고 여겨지는 레퍼런스를 끝까지 파요. 레리치를 만들고 1년이 안 됐을 때 몰스킨 몇 권을 사고 이베이에서 당시 키톤, 브리오니, 아톨리니의 중고를 소재별로 다 샀어요. 그러면서 일일이 분해해서 설계도를 그리고 원단에 따라 어떻게 구조를 짜는지, 어떤 실을 쓰는지 스크랩해서 그에 대한 의견을 덧붙여 책처럼 만들었어요. 그러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요. 지금 선생님이 입으신 재킷에 대해서도 A4 용지 한 장을 가득 채워 쓸 수 있어요. 그만큼 좋아하고 많이 생각해봤으니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해부도에서 시작하는 것 같은 개념이네요. 그 집요함이 레리치 옷에서 느껴져요.
차이는 쉽게 말하면 시적이죠. 대량생산 시대에서 무언가 마음을 살짝 녹여주거나 인간미가 느껴지는. 약간 겸손하거나 담백한 거요. 화려하지 않아요. 화려한 건 만들기 쉬워요. 이걸 다 죽여서 내 안으로 넣는 게 더 어렵거든요. 티도 나면 안 되고. 그 어려운 걸 타협하지 않고 20년째 한 팀으로 올곧게 유지해왔다는 데 자부심이 있어요.
그런 예민한 감각은 어떻게 길러졌는지, 그렇게까지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요.
예민한 사람은 신경학적으로 타고나는 거래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올라오는 싹들이 너무 신기해서 우산을 쓰고 쭈그려 앉아 1시간씩 싹을 지켜본 게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요. 마른 운동장에 비가 내리고 저에겐 우산만큼의 작은 돔이 생긴 거예요. 그 안에서 보호받는 느낌이 묘했죠. 비즈니스를 할 때 기존 시스템에서 1%만 바꾸는 것도 정말 어려워요. 난리가 나는 일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10시간 할 거 100시간 쓰고, 굳이 보이지도 않는 조각을 다 갈라서 턱을 없애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고. 아무도 몰라준다 해도 내가 아니까 해야만 하는 것. 그럴 수밖에 없는 성향 같아요. 이런 생각에 동조하는 줄리오(이민혁) 같은 사람이 와서 함께하니 감사한 일이죠. 천재 같은 친구예요.
뜻을 함께하는 분들이 있어 지속할 수 있었군요.
이곳에선 연령 불문하고 우정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종종 정말 멋진 일이 일어나죠. 작업 방식을 이탈리아식으로 다 바꾸고 나서 저희 선생님 한 분이 속도가 너무 느려지니까 팀에 피해가 갈까 봐 은퇴하시겠다고 한 거예요. 제가 한 달에 소매 하나 만드셔도, 한 벌을 못 만드셔도 나오시면 기본급을 드릴 테니 남아달라고 했더니 그분이 감동하신 거죠. 복귀해서 시간 제약 없이 코트 한 벌을 만들었는데 말도 안 되는 애가 태어난 거예요. 너무 아름다워요. 살아 있는 것 같아서 팔지 말자고도 했어요. 그만큼 이 일에는 놀라운 감동이 있어요.
5 실제 나무 기둥을 잘라 시적으로 배치한 공간에 레리치의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6 입는 사람의 몸에 맞춰 수백가지 공정을 거쳐 만든 레리치의 옷은 생명력을 띈다. 7 입으며 하나씩 실이 떨어지는 것에서 시간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예술가 시리즈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만들었는데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으면 고통스럽잖아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다 1년 동안 내가 생각한 것들을 정리해 1년에 한 번 전시 형태로 쏟아내자. 그리고 미의식이 높은 사람들과 옷이라는 하나의 오브제를 두고 동등하게 대화를 나눠보자는 거였어요. 앤디 워홀이 너무 좋아했다는 보테가 베네타, 피카소가 사랑한 파텍 필립 같은 거죠.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라이카가 없으면 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잖아요. 결국 그런 브랜드가 되고 싶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승효상 건축가가 두 번째 옷을 맞추실 때 요구한 게 알베르토 자코메티 사진 속 코트 같은 거였어요. 거기는 알 수 없는 시간의 흔적과 낡음과 자연스러움이 처음부터 있다는 거예요. 그런 뉘앙스를 공유하는 거죠.
레리치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고객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의외로 딱딱한 직업을 가진 분이 많은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컨설팅 회사 대표인 분이 계신데 오시면 밥도 사주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가세요. 평생 숫자만 보던 자신의 삶과 다르게 저희는 순수하고 인간적이라 마음에 든다고 하시죠. 한 번은 건설 쪽에서 일하는 분이 오셨는데 젊은데 너무 비싼 걸 사시는 거예요. 걸어서 오시는데 항상 노트를 가지고 오세요. 물어보고 싶은 걸 기자처럼 다 물어보고 기록해요. 이 옷이 왜 가치 있는지 계속 탐구하는 거죠. 그러고 스스로 이해됐을 때 옷을 사는데 어느 날 800만원짜리 캐시미어 재킷을 고민하는 거예요. 원단의 차이를 말씀드린 뒤 이 옷의 가치는 오직 바늘에 있다고 했죠. 그런데도 사셨어요. 나중에 성공해서 사는 것보다 지금부터 50년을 입으면 나는 50년 동안 이 좋음을 누리는 거라고요.
멋지네요. 고객들에게 기성복 출시 소식이 꽤 반가울 것 같아요.
제품의 퀄리티가 어떨지 아는 분들이니까요. 어떤 고객은 43벌을 사셨어요. 보면서도 놓치는 것이 없는지 체크하셨죠. 아틀리에 옷들과 편하게 매치하기 좋고 접근성 좋은 가격에 레리치의 테일러링 노하우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청바지의 경우 일본 쿠로키사의 셀비지 데님 중 가장 등급이 높은 원단으로 만들어요. 입체적인 직조감을 살리고 이탈리아 공방에서 제작한 버튼과 리벳, 천연 쪽염색을 손가공으로 완성한 레더 패치 등 섬세하게 구현했어요.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쉽게 옷을 만들어 파는 시대예요. 오늘날 디자이너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한 일은 먼저 옷에 대한 개념을 만들고 그다음 들여다봐주는 것이었어요. 좋은 옷을 만들기 위해 건축, 예술 등 여러 분야의 책을 매일 읽으며 수천 장씩 정리하던 시절도 있었어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두 명이 같은 오솔길을 가는데 한 명은 더 많은 삶을 산다는 내용이 있어요. 니트처럼 펼쳐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금빛 실 같은 햇빛과 바닥이 사각이는 느낌, 바위를 움켜쥐고 선 나무의 웅장함을 생생하게 오감으로 감각하는 사람과 그저 “여기 예쁘다” 하며 사진 찍고 가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다는 거죠. 음미하지 않는 삶은 몸이 건조해져요. 시스템처럼 움직이다 끝나버리니까요. 음미하는 사고가 열리면 저보다 훨씬 멋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올 거예요.
앞으로의 계획은 뭐예요?
공방은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가고 새로운 AP 레이블로 대중적으로도 소통하고 싶어요. 20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며 레리치로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이 해봤어요. 희열도 맛봤고 옷을 만들지만 옷이 아님도 느끼죠. 옷은 살에 직접 닿고 내 몸에 평생 걸치는 거잖아요. 단순히 예쁜 패션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도자기에서 많은 은유를 느낄 수 있듯 극한의 장인 정신으로 만든 옷에서도 그걸 느낄 수 있거든요. 이걸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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