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번화가 초입에 있는 고서점, 통문관. 유리문을 열면 비밀스러운 고서들이 나타난다.
오래전 독일의 구텐베르크 인쇄박물관 관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통문관 앞에서 찍은 흑백 기념사진.
오래된 서점의 노래, 통문관
평안남도 출신의 소년이 있었다. 16세가 되던 1934년에 서점 ‘금항당’의 직원이 됐고, 9년 후 해방을 맞아 사장이 됐다. 청년이 된 이겸로는 상호를 ‘통문관’이라 명명했다. 책을 매개체로 많은 이의 지식과 교류가 흐르고 연결되는 장소이길 바랐던 것. 현재의 통문관은 그의 손자이자 3대인 이종운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그에게 통문관은 어릴 때부터 집이자 놀이터였다. 학교에서 배운 〈용비어천가〉 원본이 있을 정도니 때로는 이곳이 박물관 역할도 했다. 통문관의 시작은 여느 서점과 다르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선시대의 고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에 발간된 인문학 서적과 희귀본, 각종 도록과 도감을 시대별로 갖춘,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90년 역사의 서점이 됐다.
종종 사람들의 손을 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책을 포장해 두기도 한다. 고서 중에 한글이 섞여 있는 시집은 많은 이가 찾는 책이다.
주인의 책상을 기준해 양쪽으로 책장이 펼쳐지는 통문관의 구조. 대부분의 책장은 이곳이 건설된 1960년대에 나왕으로 튼튼하게 만든 것이다.
출입문과 마주한 주인의 자리를 기준으로 양옆에 책이 빼곡히 들어찬 구조는 일본의 작은 서점과 동일한 방식이다. 지금의 인사동 자리에 안착한 시기가 1961년이었으니 내부공간도 63년간 전혀 바뀌지 않은 셈이다. 1960년대 무렵에는 통문관 주변으로 고서점과 고미술품점이 40곳에 달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통문관만 남았다. 주로 통문관을 오가는 사람들은 고문서와 관련된 교육자나 학자, 전문가들이다. 때때로 고서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방문해 〈해에게서 소년에게〉 〈진달래꽃〉 등 일제강점기 문인들의 시집이나 문집을 구매하기도 한다.
노천명 시인의 시집 〈창변〉 무삭제본의 한 페이지.
청록파 시인들의 시집을 둘러보거나 추억의 교과서를 손에 넣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있다.
“1945년에 출간된 노천명 시인의 시집 〈창변〉의 무삭제본은 구하기 어려운 책이죠. 해방이 될 줄 모르고 써 내려간 시들을 보면 시대의 회한이 느껴지기도 해요.” 이종운 대표는 새로운 고서를 탐색하기 위해 전국을 누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책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일본이나 중국을 오가기도 한다.
“오랫동안 잘 보관돼 온 책을 만날 때는 기분이 좋아요. 인품 좋은 주인에게 귀한 대접을 받은 책을 갖고 오는 날에는 이 일이 무척 보람되게 느껴집니다.” 통문관의 오래된 책상에 앉으면 창밖으로 인사동 거리가 펼쳐진다. 이 풍경이 수없이 바뀌는 동안 그 자리를 굳게 지켜온 고서점의 역사는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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