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동덕여대 재학생들이 이러한 구호를 외치며, 대학 측의 남녀공학 전환 추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학교 측이 남녀공학 논의를 완전히 철회할 때까지 본관 점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학당국은 학생 시위와 관련, "폭력 사태에 법률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대응을 단호히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25일 진행된 3차 면담에서도 양측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동덕여대 시위는 앞서 지난 11일 시작됐다. 학교 측이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됐다.
특히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수렴과 소통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
학생들은 학교 건물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고, 학과 점퍼 수백 벌을 길바닥에 벗어두는 ‘과잠 시위’를 하며 수업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에 동덕여대 측은 “공학 전환은 학교 발전 계획을 고민하며 나온 의견 중 하나일 뿐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모든 구성원들과의 의견수렴 절차를 계획 중”이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학생들의 건물 점거로 인한 기물 파손 등 시위 행위에 대해 최대 54억 원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경고했다.
이에 대해 최현아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은 '아이디어 수준'에 불과하다는 공학 전환 논의에 대해 일부 교수들이 수업 중 "내년부터 남녀공학으로 전환된다"고 언급했으며, 이는 학생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 불안감을 일으켰다고 B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대학 본부가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태도를 꾸준히 보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가 이번에도 의견을 무시하고 남녀 공학을 진행할 거라고 느껴 학생들이 이를 막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겁니다.”
BBC가 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한 조교도 학교 측의 의사결정 구조에 문제점을 지적했다. 동덕여대에서 졸업 후 조교로 근무 중인 강소희(가명) 씨는 시위로 인해 업무가 마비된 상황에도 학교 측이 조교들에게 출근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강 씨는 “출근은 했지만 제대로 업무를 볼 수 없는 상황에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19일 학교가 전체 직원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조교들의 의견은 전혀 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총학생회는 지난 20일 학생총회를 소집해 '동덕여대 공학 전환' 안건을 표결했는데, 재학생 약 3분의 1인 1973명이 참여했다. 이 중 기권 2명을 제외한 1971명이 남녀공학에 반대했다. 찬성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21일 학교 처장단과 총학생회가 면담을 통해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잠정 중단하고, 본관을 제외한 다른 건물들의 점거를 해제하며 수업을 재개하기로 합의했지만 남녀공학 전환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젠더 갈등·폭력 시위 논란도
시위에 나선 동덕여대 재학생들은 여대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며 공학 전환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공학 전환이 여자 대학의 근간을 흔들고 여성의 지위를 상실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김엘리 피스모모 평화페미니즘연구소 소장은 여대가 “남성중심의 문화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여성들이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는 정치를 배우는 장이며, 모든 일들을 여성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역량을 강화하는 공간”이라며 “이 공간을 유지하고 싶은 학생들의 열망은 클 것”이라고 전했다.
올해 수능을 치른 고3 박양도 일방적인 공학 전환 논의에 반대했다. 박 양은 “공학 전환이 추진된다면 수시 접수가 끝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수험생들은 불공평한 상황에 놓인 셈”이라며 “동덕여대를 ‘여대’라는 이유로 선택한 이들도 있을 텐데 이런 변화는 최소 4~5년 전부터 협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는 다른 여자대학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덕성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한양여대 등은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철회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연대 의사를 밝혔다.
한편 동덕여대 학생들은 일부 반여성주의 단체와 누리꾼들에게 '폭도'로 규정되며 공격과 혐오 발언을 받고 있다. 학교 기물에 래커칠을 하는 등 시설을 파손시키며 강의실 건물을 무단 점거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기획연구위원은 시위를 폭력적으로 보는 시각에 반박했다.
그는 “한국의 학원 민주화 투쟁 역사를 보면, 지금의 동덕여대 시위는 폭력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학교 기물 파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시위의 본질을 왜곡하는 자본주의적 논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물 훼손을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파업권을 무시하는 관점”이라며 “학생들이 자율성과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총학생회장도 자신들의 투쟁을 폭력 시위로 보는 관점에 대해 “학생들이 왜 이런 방식으로까지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본질을 봐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여대의 존재,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필요성'
“여성들에게 법적, 제도적인 기회는 다 열렸는데 무슨 이유로 여자 대학이 필요한가? 라고 물어볼 수 있어요. 그런데 공식적으로 기회는 열렸지만 그것이 결과적인 평등으로 가진 않았어요.”
장필화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기회의 평등이 곧 결과의 평등으로 펼쳐지지 못했으며, 여전히 통계적으로 여성 차별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정치 및 경제계에서 여성들의 아이디어, 니즈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며 “여성들이 어떤 그 비판을 의식하지 않고도 그들의 생각과 니즈, 관점을 사회적 목소리로 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정성'도 여대의 필요성 중 하나로 꼽혔다.
김 소장은 "온라인 상에서의 여성 혐오 발화, 화장실 불법 촬영, 성폭력 및 여성 살해 사건 등으로 인해 여성들이 느끼는 안전 감각은 매우 높아졌다"며 “불안전을 느끼는 여성들이 문제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불안전함을 가져오는 사회적 요소들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도 여전히 존재하는 여성 차별을 언급하며, 여대가 차별과 혐오로부터 안전한 논의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총학생회장은 "현재 여성 인권이 완전히 보장된 상태라고 할 수는 없다"며 "여성들이 불평등과 혐오에서 벗어나 마음껏 교육을 받고, 자유롭게 성평등을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현재 우리 대학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권김 위원은 여대가 “안전한 공간을 넘어,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온 해방과 평등의 공간”으로 재의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리더십을 키우는 방법, 그리고 여성들이 현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이 여대의 학문적 가치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4년제 여대는 이화·숙명·성신·동덕·덕성·서울·광주여대 7곳 뿐이다. 상명여대는 상명대로, 부산여대는 신라대로 이름을 바꾸며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성심여대는 가톨릭대와, 효성여대는 대구가톨릭대와 통합돼 남녀공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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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대에서 배운 것'
“공학을 다닐 때는 여학생들이 ‘여학생 휴게실’에서나 누워있었는데, 이화여대는 누울 수 있는 곳이라면 여자들도 어디에나 누워있는 거예요. (웃음)”
권김 위원은 공학을 다닐 때 자신이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남녀공학에서는 늘 수위 아저씨나 교수님, 남학생들로부터 여학생들에게 부당한 언행을 듣는 일이 많았다며, 예를들면 “밤늦게 공부를 마친 후 집에 가면 수위 아저씨가 ‘여자가 이렇게 늦게 나가면 안 된다’며, ‘남자친구가 오게 하라’는 식의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또한 “수업 시간에 군대 이야기를 하면서 여학생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루거나, 여학생들이 나중에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일이 많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여대에서의 경험을 통해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자율적으로 생활하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여대는 안전한 공간을 넘어, 여성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동덕여대 졸업생 강 씨도 “여대를 다니며 리더로서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웠다”며 “여대가 내게 사회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줬다”고 전했다. 그리고 “후배들도 여대에서 리더십을 경험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신감을 배웠으면 좋겠다”며 공학 전환에 반대했다.
김선혜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여대에서 재학 중인 학생들이 ‘여’대생이 아니라 단순히 ‘대학생’으로 여겨지는 환경에서, 많은 자율성과 새로운 책임감을 학습하고 훈련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갖게 된다”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탐구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대가 '여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한편 여대가 과연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동덕여대 정문 앞에서 근조 화환과 시위 대자보를 바라보던 경희대 22학번 김정훈(가명) 씨와 고려대 24학번 이경진(가명) 씨는 시대 변화에 따른 여대 존립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여대가 과거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현대에는 남녀 간 교육 기회의 격차가 거의 사라졌다"며 "여대의 필요성은 과거만큼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공군사관학교가 여성 조종사를 선발하는 등 점점 교육의 평등이 실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씨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여대가 여성 안전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여성들이 남성 범죄로 인해 압박을 받는다는 이유로 여대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남성과의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0대 남성 최현필(가명) 씨는 여대가 현재 젠더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날의 여대는 남녀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특수한 구조만이 남았다"며 "특정 성별만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성별에 따라 다른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거나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여대가 남성과 여성 간의 협력보다는 분리를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상호 이해와 공감을 방해한다"며 "특히 취업 시장 등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보다 오히려 이를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리천장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지 깨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젠더 갈등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 간의 문제를 넘어, 세대, 경제적 계층, 그리고 교육 수준 등 다양한 요인이 얽힌 복합적 문제"라며 "여대는 이런 복잡한 갈등 구조 속에서 특정 성별만을 위한 울타리를 제공하기보다 더 포괄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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