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윤건호 작가] 아이들은 놀아주지 않아도 그저 같은 공간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 함께 놀이하고 있는 것이라 여긴다고 한다. 이것도 지혜로운 삶의 단면이 아닐까.
‘뜀박질과 인파의 대화, 그리고 웃음 소리가 들리는 전시장’
어쩌면 거슬리게 들리겠지만, 동시에 꿈처럼 이상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사근사근한 잔소리가 오가는 전시장은 더 인간적인 세상처럼 느껴질 테니까.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그림 앞에 아이들만 세워 놓고 사진을 찍어주는 것 만큼 무미건조하고 허무한 일도 없다고 본다. 함께하지 않는다면,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그저 그림에 불과하다. 같은 공간을 지나는 사람에게 부탁해 아이와 같이 사진 한장 찍는다면, 모두가 그 순간을 오래기억할 것이다. 그럴 가치가 있다.
어느 그림이든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나보다 빨리 지나치는 사람, 나와 같이 보는 사람, 나까지 사진에 담는 사람, 내 옆에서 떠드는 사람 등 여러 순간이 장면으로 스쳐 간다. 전시장에 혼자 적적하게 있는 것도 좋지만 너무 적적해지면 심심한 게 사람 마음이라, 북적이는 활기도 나쁘지 않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일정의 스트레스를 원하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전시가 완벽한 힐링의 순간일 필요는 없다. 함께 있는 사람의 생각을 듣고, 다른 시각을 발견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 눈앞을 가리며 지나가는 커플이 시선을 빼앗는 순간도, 캡션 앞에서 휴대폰을 쥔채 서성이는 스텝 때문에 멋쩍은 순간도, 뜀박질 하는 애들한테 잔소리하는 순간도 같이 하는 장면이다. 그런 모습들을 구경하며 노트를 끄적이며 미세한 웃음을 짓는 시간도 나쁘지 않다.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마감 시간에 쫓기며 촉박하게 보기도 하고,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끼어 감상하기도 하고. 놓쳤던 도슨트가 다음 타임으로 다시 나타날 때까지 과한 여유를 부리기도 하던 내 경험을 돌아보면, 아무래도 그런 “전시장의 모든 장면들과 같이 보라“가 좋은 대답인 것 같다. 급급한 감정, 애타는 순간, 의외의 보상… 그 모든 장면들에 녹아들어 같이 경험하면 내 안에 남는 작품은 분명히 생긴다.
마감 시간과 함께, 인파와 함께, 놓친 도슨트와 함께, 내 앞에서 뛰어노는 아이와 내 옆에서 앉아 쉬는 노부부와 함께. 타인에게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같이 하는 것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잠시 그렇게, 장면에 녹아들면 작품들이 외치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각박한 개인주의 세상에서 나를 위한 휴식을 찾기 위해 온 전시장에, 이렇게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니, 완전히 ‘럭키비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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