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김중필의 핵심 브레인, 임영숙
군사 정부의 민정 이양 방침에 따라 1963년 10월 15일에 제5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 되었다. 공화당 후보로 나선 박종희가 전 대통령이었던 윤보선 후보를 15만표의 근소한 차이로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박종희를 후보로 낸 공화당은 엄청난 선거 자금을 살포했으나 야당은 극심한 자금난에 허덕였다. 거기에 더하여 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야당 후보가 난립하여 도저히 야당은 애초에 이길수 없는 환경이었다. 김중필의 막후 최측근인 부여 박선생과 임영숙 여사가 김중필의 초청으로 성북동 에 있는 대원각 요정으로 갔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김중필이 기억하는 임영숙의 첫 인상은 눈매가 초롱초롱한 단아한 여성이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 해졌습니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박 선생님 덕분에 이번 선거 잘 치렀습니다. 허허허”
“저보다도 여기 임 여사가 많은 힘이 되었지요.”
“오랜만입니다. 박 선생님께서 임 회장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허허”
“이렇게 영웅호걸을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부장님!”
“허허, 중정을 나온 지도 꽤 되었는데 아직도 그렇게 불러 주십니다.”
“아,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이제 위원장님이라고 호칭을 바꿔야겠네요.”
옆에서 박 선생이 거든다.
“그렇지요, 이제는 민주공화당의 창당 위원장이시니까.”
“그러면 위원장님도 저에 대한 호칭을 바꿔주세요. 제가 위원장님보다 4살이나 어 리니까 그냥 임 회장이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하하, 역시 여장부야. 그렇게 하지. 지금부터.”
“오라버니로 모시겠습니다.”
“허허허”
“이번의 공은 임 회장에게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동양화학 아이디어가 멋지게 들어맞았습니다.”
1962년 1월 김중필은 공화당의 사전 조직인 동양화학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이 작 전은 5·16 쿠데타가 일어난지 3개월 만인 1961년 8월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공화당의 사전조직은 박종희의 재가를 얻어 만들어졌다. 김중필은 공화당을 창당하기 위한 연구팀을 만들어 예비역 중장이었던 최영두에게 책임을 맡기고 각 대학에서 교수들을 차출하도록 하였다. 이들은 연구실의 이름을 '동양화학 주식회사'로 위장하고 종로 2가 뒷골목 제일 전당포 2층과 3층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어 김중필은 재건당을 조직하여, 민정에 군출신들이 참여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당 준비에 착수한 것이다. 정치활동 금지법에 묶여 있었던 야당 정치인들은 사전 정당 조직이라며 반발하였으나 쿠데타 세력들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박종희와 김중필은 이승만 정권의 실세이자 대한민국 초대 내무부 장관을 지냈던 윤치영과 상공부 장관이었던 임영신을 영입하고, 자유당 출신 인사들과 법조인인 정구영을 포함한 유명한 학계 인사들을 교섭하여 1963년 2월 26일 민주공화당을 창당하였다. 공화당이 창당되자 재건당은 1개월 만에 해산하였다. 임 회장이 말문을 먼저 열었다. “평소 장면 총리를 미워하는 윤치영을 영입하면 여운홍 등을 끌어들이기가 쉬울 겁니다. 그러면 공화당 창당에 도움이 되겠지요.”
“아니, 임 회장은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는 거야?”
부여 박 선생이 옆에서 거든다.
“임 회장의 정보망은 중정 못지않을 겁니다. 500년 보부상단의 비밀조직의 수장입 니다.”
“아, 어쩐지…”
“과찬입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조그만 사조직입니다. 괜한 말씀을 하시네요, 박 선생님께서. 호호호.”
걸걸한 성품의 김중필은 임 회장의 단아함과 범접할 수 없는 묘한 매력에 빠져 들 었다. 방대한 정보 조직을 가지고 있는 임 회장을 자기편으로 확실히 끌어 들이기 로 마음먹었다. 이 결심으로 김중필은 두 차례의 국무총리와 9번의 국회의원이라는 최고의 경력을 만들 수 있었다. 박종희의 핵심 브레인이 김중필이라면 박선생과 임영숙은 철저하게 숨겨진 김중필의 평생 동지이자 핵심 브레인이었다. 국회의원이 된 김중필은 육사 동기인 김형국이 중정부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임 회장을 소개하였다.
“자네에게 임 회장을 소개하는 것이 참으로 내키지 않지만…”
“왜 이러나, 천하의 김중필이 뜸을 다 들이고. 하하하.”
“영전을 축하합니다. 임영숙입니다.”
“이 친구 말을 들으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오늘 이렇게 보니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이 방에 임 회장님이 들어오는 순간 알았습니다.”
“허허, 이 친구가 선을 너무 넘네.”
“아니, 이 사람이. 하하하”
“이번에 내가 부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도 순전히 임 회장 덕분이지.”
“아니, 제가 뭘한 것이 있다고 이러십니까?”
“내 후원회장이 되어 주고 조직 지원까지 해주었는데 어찌 내가 그 공을 잊겠는 가!”
“과찬입니다.”
“대단하네, 자네가 부럽네. 하하하. 나도 중정에서 나가면 국회의원 출마를 해야 하니 임 회장님이 저를 좀 도와주세요.”
“미력하지만 때가 되면 당연히 힘을 보태겠습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이보게 JP, 자네도 고마우이.”
김형국은 본래 과묵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남산 멧돼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임영숙 앞에서는 말이 많아지고 자리에 있는 동안 미소가 떠나질 않았 다. 아가씨들이 들어오기 전에 임영숙은 김형국에게 넌지시 제안한다.
“박종희 의장님께서 대통령 후보로서 이번에 정견 방송을 하실 때, 이런 말씀을 국민에게 하시면 어떨까요?”
“어떤?”
“개인과 개인의 대결이 아니라 민족적 이념을 망각한 가식의 자유민주주의와 강력 한 민족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의 사상 대결로 몰고 가는 것은 어떨까 요?”
“오호, 이념의 대결이라! 이거 정말 절묘합니다. 의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대 단합니다!”
김형국 부장은 임영숙의 지략에 감탄하면서 두 손으로 임 회장의 술잔에 손수 따랐 다. 이렇게 해서 임영숙은 또다시 대한민국의 중앙정보부를 장악하는 한 걸음을 내 딛게 되었다. 아가씨들이 들어오자, 임영숙은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피 한다. 그때 김형국의 파트너로 들어온 눈에 띄게 하얀 피부의 아가씨가 스쳐지나 가며 은밀하게 임영숙에게 인사를 건넨다. 대원각을 나오자, 영숙은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준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비서는 20대 중반의 날렵하면서도 강한 인상의 청하라는 여성으로 검도에 능한 야쿠자 출신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임영숙에게 충성하며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는 경호원이자 최측근이다.
“부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음…”
“그쪽 조직을 완전히 흡수했다는 연락입니다.”
“우리 애들은 다치지 않았고?”
“다들 무사하다고 합니다.”
“모레 내려가자. 오랜만에 해운대 바람이나 맞아보자.”
“네, 마마!”
청하는 마마가 외동아들 생각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에 자신도 행복했다. 청하도 동 생이 보고 싶었다. 자신을 무척이나 따르는 마마의 아들을 친동생 이상으로 아낀다. “엄마!”
와락 안기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영숙은 아들의 등을 쓰다듬는다.
[팩션소설'블러핑'47]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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