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제징용 해법·사도광산 등재 후속조치에서 모두 '진정성 부재'
"물컵 반 채우면 일본이 나머지 채울 것" 막연한 기대만…외교전략은 부재 지적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한일관계가 윤석열 정부의 결단으로 과거사 문제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듯했지만, 결국 또다시 역사 문제로 삐그덕거리는 모습이다.
한국은 강제징용 해법부터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번번이 한발짝 양보하며 일본이 화답하길 기대했지만, 일본의 후속 조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양국 관계는 다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됐다.
여러 고비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와 이에 대응하는 한미일 협력 강화 분위기 속에 앞으로 나아가던 한일관계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 추도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국 불협화음이 불거졌다.
24일 열리는 추도식은 일본이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목적을 위해 투표권을 쥔 한국에 약속한 핵심 조치 중 하나지만, 일본이 정부 참석자와 추도사 등을 두고 막판까지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한국의 '보이콧'으로 이어졌다.
행사 이틀 전 정부 대표로 발표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다는 게 드러나 논란이 커졌고, 해당 인물이 낭독할 추도사에 조선인 노동자를 제대로 기리는 내용이 들어갈지도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추도식 초청 대상인 한국 유가족의 참석 비용을 한국 외교부가 부담하고 추도식 공식 명칭(사도광산 추도식)에 추모 대상이 빠진 데서 이미 일본의 진정성이 결여된 '맹탕 추도식'에 대한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계기마다 선제적으로 양보했지만, 일본은 내내 진정성이 부족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번 일을 두고 외교가에서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은 사도광산 유산 등재를 위해 공언한 또 다른 조치로 광산 인근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안에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를 마련했지만, 강제 노역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없어 논란이 있었다.
지난 2015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일본이 약속했던 후속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는 한국은 이번엔 등재 전 전시시설 마련이라는 '선조치'를 받은 점을 성과로 내세웠지만 '진정성'까지는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한일관계가 본격적으로 복원된 계기였던 한국 정부의 선제적인 강제징용 해법 역시 일본의 호응 없이 힘겹게 '연명'하고 있다.
한일관계는 2018년 10월 강제징용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후 악화했지만, 정부가 지난해 3월 배상금을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대신 지급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하면서 해빙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재단은 애초 한일 기업 등의 기부금으로 판결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승소를 확정한 피해자가 계속 나오는 데도 일본 기업이 전혀 참여하지 않으면서 기금이 거의 고갈된 상태다.
해법 발표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은 "물컵에 비유하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지만, 물잔이 거의 말라가는 지경인 것이다.
결국 한국이 먼저 양보하면 일본이 화답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만 있었을 뿐 이를 끌어낼 면밀한 외교 전략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일로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부족이 재확인되면서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협력 강화를 모색하던 한일관계에는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일관계 강화의 촉매제였던 한미일 협력이 예전과 같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이어서 파장이 더 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일관계가 진전될 수 있었던 건 한국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일본이 호응했어야 되는건 당연한데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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