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조성일 기자] 온 나라, 아니 전 세계를 들썩거리게 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그 순간, 솔직히 난 현실감이 없었다. 아침에 출근 준비하며 으레 켜놓은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무너진 성수대교’를 보던 그 느낌과 너무도 비슷했다. 왜 저 다리는 가운데가 텅 비었을까.
내가 현실감을 가진 건 아내가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여서였다. ‘다리가 무너졌다’고 다급하게 현장에서 리포트 하는 기자의 격앙된 목소리가 나의 무의식을 깨웠던 거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도 내게 현실감 있게 다가온 건 작품 비판을 가장한 ‘역사(광주민주화운동) 왜곡’이라는 지적을 들으면서다. 하기야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되레 역사를 왜곡하는 웃픈 블랙코미디였지만.
여기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얘기를 하려고 글을 시작하자마자 몸통도 없이 길게 뱀다리부터 단 건 아니다. 한강의 작품 《소년이 온다》에서 내게 가장 깊게 각인된 한 낱말의 의미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114쪽)
소설 속에서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있던 김진수라는 작중 인물이 도청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이유를 밝히는 장면이다.
도대체 ‘양심’이 뭐길래 작가는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는 현실에서도 김진수를 다시 도청으로 돌아가게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거’라고 썼을까.
내가 섬뜩했던 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양심이라는 작품 속 액면 그대로의 표현을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게 양심이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내게 가장 무서운 걸 꼽으라면 당연히 ‘죽음’이라고 했을 거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게 있을까 싶다. 작가의 이 문장은 내게 아직 세상 덜 살았다며 다시 성찰해 보라는 경고처럼 느꼈다. 양심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알은 채 하느냐고.
‘양심’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라고 풀이한다. 아마 그 지향성은 그른 것보다 옳은 거, 악보다는 선이 아닌가 싶다.
영어의 양심 ‘conscience’의 의미도 우리 사전의 풀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conscience’는 라틴어 ‘함께 나누다’는 ‘con’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라는 ‘scientia’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굳이 해석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걸 함께 나누다’가 될 거다. 나눌 만큼의 가치 있는 거(앎)라면 당연히 그른 거보다 옳은 것일 테고, 악보다는 선이어야 한다는 당위가 생긴다.
다만 누구와 나누는 것인가가 문제다. 아마도 자기 자신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관용적으로 쓰는 ‘양심’을 다른 사람의 걸로 생각하는가. 아니다. ‘내 양심’이나 ‘네 양심’이라는 표현에서 그 양심의 주체는 모두 본인이다. 그러므로 양심은 나 스스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선택한 옳은 거나 선한 거라고 할 수 있다.
양심이라는 말은 함부로 꺼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네 같은 장삼이사도 함부로 팔면 결코 안 되는 게 양심이다. 그렇게 배웠다. 양심은 우리의 최소한의 도덕적 장치이다. 그래서 내 말이 옳다고 핏대 올리다가도 ‘양심’을 걸 수 있느냐는 말에 움찔한다.
요즘엔 양심 따윈 개에게나 줘버린 사람들이 즐비하긴 하다. 텔레비전에 버젓이 중계되는 걸 알면서도 양심에 비추어 한 점 부끄럼 없느냐는 질문을 받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인사들이 많지 않은가. 특히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가책을 전혀 느끼지도 않고 뻔뻔스럽게 거짓말 해대는 풍경을 보노라면 서글픔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더 가관인 건 그렇게 양심을 팔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거다. 뱉은 말이 곧바로 거짓말임이 들통나도 바로 잡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말만 옳다며 박박 우긴다. 사람들이 기막혀하며 큰 소리로 웃거나 놀려도 상관 하지 않는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자기 허물을 스스로 인정하고 고칠 줄 알기 때문이다. 그 허물을 알게 하고 고치게 만드는 힘이 바로 ‘양심’이다. 양심은 우리 사회가 ‘동물의 왕국’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가치이다.
나는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김진수가 한 말,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게 ‘양심’이란 말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잃어버린 양심을 되찾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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