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일보] 이현수 기자 = 지난 4월 3일 오전 전남 고흥군 한 마을 공중화장실 옆 공터에서 변사체가 발견됐다. 이 마을이 고향인 60대 A 씨였다.
비닐과 부직포 등으로 감싸져 있던 시신엔 혈흔이 낭자했고 흉기에 의한 자상도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강력 범죄가 발생하자 경찰은 공중화장실 인근 폐쇄회로(CC)TV를 하나씩 하나씩 분석해나갔다.
현장 주변 CCTV를 확보한 경찰은 A 씨가 유기되는 장면을 확보했고 마을 구간 CCTV에선 A 씨와 B 씨(54)가 한 술집에서 나오는 장면을 확인했다.
경찰은 B 씨에게 "전날 A 씨와 함께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B 씨는 "술에 취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은 B 씨의 차량과 이동 동선 등을 면밀히 추적한 끝에 시신 유기 피의자로 B 씨를 특정했다.
수사 결과 B 씨는 시신이 발견된 지 하루 전인 2일 오전 10시쯤 고향 선배인 A 씨와 만났다. 약 20년 만에 이뤄진 우연한 만남은 술자리로 이어졌다.
술기운은 말다툼을 불렀고, A 씨는 B 씨를 한차례 때렸다.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욕설을 들은 B 씨는 분노에 찼다. 그는 술에 취한 A 씨를 자신의 차에 태워 인적이 없는 공터로 향했다.
오후 9시~10시 30분 사이 도착한 공터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내 흉기로 살인 범행을 벌인 B 씨는 농막에 들러 은폐 도구들을 챙겼고 A 씨의 시신은 공중화장실 인근에 유기됐다.
살인, 사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 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술을 유지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 당시 입고 있던 의류를 세탁하는 등 범행을 은폐하려 한 것으로 볼 만한 정황이 있다. 구체적 경위를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피해자를 여러 차례 공격했다. 피해자가 과다출혈로 결국 사망했다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됐을 뿐만 아니라, 공터에 방치돼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된 피해자의 소식을 접한 피해자 유족들의 심정을 차마 짐작하기 어렵다"며 B 씨에게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을 맡은 광주고법 제1형사부도 최근 "원심의 양형은 무겁지 않다"며 B 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체유기 장소가 통행이 빈번한 공중화장실 앞 공터라는 점을 볼 때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을 적극 은폐하려 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면서도 "피고인이 후회·반성하며 피해자와 유족들에 용서를 빌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도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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