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독립운동 뛰어든 여성 광복군 영면⋯

13살 독립운동 뛰어든 여성 광복군 영면⋯

유머톡톡 2024-11-22 18:30:44 신고

13살 독립운동 뛰어든 여성 광복군 영면

 

 

고 오희옥 애국지사

서울현충원에 안장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마지막 여성 광복군 오희옥 애국지사가 20일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운명처럼 받아들여 목숨을 걸고 국가 존립을 위해 헌신했던 오 지사는 이날 오후 3시 30분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사회장 영결식을 거행한 후 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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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고 오희옥 애국지사 영결식에서 국방부 의장대가 영현을 운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오 지사는 1926년 독립유공자인 부친 오광선(독립장), 모친 정현숙(애족장)의 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명포수 출신인 오인수 의병장이다.

 

부친인 오광선 장군은 대한독립군단 중대장과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활약했다. 어머니 정 지사는 만주에서 독립군 비밀 연락 업무를 맡았으며 그 밑에서 자란 오 지사도 자연스럽게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고인은 13살이던 1939년 4월 중국 류저우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한 뒤 독립운동에 일생을 던졌다. 1941년 1월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될 때까지 일본군 정보수집, 공작원 모집, 한국군 위무 활동 등 항일활동에 몸담았고, 이후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1990년 오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생존 애국지사 중 유일한 여성이던 오 지사는 숙환으로 서울중앙보훈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지난 17일 별세했다. 당일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기념일인 순국선열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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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에 뛰어든 오희옥 애국지사님께서 순국선열의 날에 돌아가셨네. 

 

기사에도 잘 나와 있지만, 3대가 독립운동을 한 가문임. 한국독립운동사에서도 흔치 않다고 함.

 

할아버지는 개항기 의병항쟁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후 중국 동북 지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간 오인수 의병장,

 

아버지는 식민지기 중국 동북 지역에서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서로군정서, 한국독립군(총사령은 나중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사력인 한국광복군에서도 총사령을 지내는 지청천 장군)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했으며, 이후 중국 화중 지역에서 뤄양군관학교 한인특별반(당시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었던 김구 선생이 중국 국민당 정부 주석 장제스와의 회담에서 요청) 교관을 지내다가, 김구 선생의 지시에 따라 중국 화북 지역에 있는 베이징으로 파견되어 일본 관동군 참모장 암살을 준비하던 중 발각,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던 오광선 장군, 

 

어머니는 중국 동북 지역에서 남편의 무장투쟁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고, 중국 화중 지역에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피난(한인애국단원인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공원 폭탄 투척 의거와 중일전쟁)을 다니며 온갖 고생을 했던, 그러면서도 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과 그 산하 단체인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이어갔던 정현숙 선생임.

 

자녀인 희영·희옥·영걸 남매는 임시정부를 옹호한 광복진선(정식 명칭은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중국 화중 지역의 독립운동전선에서 광복진선은 김구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전선이었다면, 조선민족전선연맹, 약칭 민족전선은 김원봉이 중심이 된 좌익전선이었음) 계열 청년들이 만든 군사조직인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입해 선전 활동에 참여했고, 청년공작대가 광복군으로 편입되자 광복군의 일원으로서 일본군의 정보 수집 활동, 리전 활동, 선전 활동, 초모 활동(비밀리에 일본군 점령 지역으로 들어가 거점을 확보하고 그곳에 있는 한인 청년들을 포섭) 등을 이어갔음. 이들 남매는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의 비서나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음. 아버지가 베이징에서 체포된 후 주로 김구 선생과 이시영 선생의 도움을 받았다고 함. 

 

참고로 오광선 장군은 해방 이후 자신의 상관이었던 광복군 총사령 지청천 장군의 명령에 따라 광복군 국내지대장 자격으로 미군정 당국자를 만나 광복군을 정식 군대로 인정하고 입국시켜 달라고 담판을 짓기도 했으며, 지청천 장군이 우익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단을 조직하자 여기에 참여했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군에 입대해 육군 대령으로 임관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주지구위수사령관 등을 지내며 북한군과 싸웠음.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국군 정통성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분이기도 하지. 김홍일, 이준식, 최용덕 장군과 더불어서. 

 

정말 대단한 가족이다. 

 

오희옥 지사님께서 생전에 인터뷰하신 내용이 있는데,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한편, 부국강병을 강조하고, 남북통일을 열망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른 독립유공자 애국지사 분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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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희옥 지사님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건강 어떠신가요.

▶ 건강 그저 그래요. 약 먹고. 하하.


▷ 편찮으신 곳 특별히 없으시고요.

▶ 네.


▷ 올 겨울 많이 추웠는데 힘들지 않으셨어요.

▶ 네. 별로요. 난방 잘 켜지는 데는 좋아서.


▷ 다행이네요. 삼일절이 어느새 99주년를 맞았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 벌써 세월은 무상하다고 자꾸 흘러가는데 벌써 삼일절이 다가왔네요.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 조부 때부터 온 가족이 독립운동을 하셨는데요. 어릴 때 할아버지 부모님 독립운동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 할아버지께서는 1905년 을사늑약 조약을 할 때 그 때부터 벌써 의병활동을 했고요. 아주 활도 잘 쏘시고 명사수예요. 그래서 그때 정철화 의병장과 함께 한 후에 할아버지는 중군장을 맡아서 양지, 죽산, 안성 등지에서 일본군 헌병 경찰주재소를 습격했어요. 우리 아버지도 중국 북경 만주에 가서 김구 선생님 만나기도 했고 거기서 몰래몰래 왔다 갔다 했죠. 우리 어머니는 산에 있는 나무를 전부 다 베어서 농토를 만든 여장부입니다.


▷ 10살 어린 나이에 공작대에 입대하셨는데 여기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어요?

▶ 그 때는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 우리가 가입했어요. 언니도 가입하고 나도 가입하고. 거기서 중국 청년단 같이 하고 한국 청년단이 합세해서 극장을 얻어서 공연을 했어요. 여러 가지로 춤, 연극, 기술 여러 가지. 중국 사람하고 같이 해서 그렇게 만든 돈을 중국 청년들 반 주고, 우리 청년들 반 가지고 공작비로 쓰려고. 그래서 우리는 가두선전 나팔 같이 만들어서 가두선전도 하고, 때로는 편지도 전달하고 받아오기도 하고.


▷ 편지 전달하시는 업무 무섭거나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 무서운 마음은 들었죠. 그래도 일본놈들이 점령을 했지만 몰래 다닌 것이죠.


▷ 1945년에 해방 소식 듣고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 그 때까지도 우리는 학교 다니면서 제가 그때 광복군에 입대했는데. 해방이 되어서 최전방에 광복군 제1지대, 제2지대, 3지대. 언니는 제3지대로 희망을 해서 갔어요. 집에 들리지도 않고, 만주에 가서 어버지를 모셔오겠다고. 해방 후에 10년 만에 아버지를 만났어요. 해방 후에 와서 아버지는 감옥에 계시다가 나오시고.


▷ 고향 얘기도 여쭤보고 싶은데요. 공무원들하고 시민들이 돈을 모아서 여생을 고향에서 지내시라고 집을 지어드렸습니다. 마음이 기쁘신가요?

▶ 네. 기쁘죠.


▷ 삼일절 바로 입주하시는 겁니까?

▶ 아니죠. 금방 입주는 안 되죠.


▷ 아직 입주는 조금 시간이 더 걸리시는 것이고요.

▶ 네.


▷ 집은 마음에 드세요?

▶ 들어요. 아주 열심히들 해주셨는데.


▷ 얼마 만에 고향에서 지내시게 되시는 거죠?

▶ 31살에 결혼하고 올라와서 92살에 가니까 61년 만에 간 거예요. 거기에 있던 선배나 집안 다 돌아가시고 지금은 손자와 후배들이 남아서...


▷ 고향집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 젊은 애들 국가에 대한 애착심, 우리가 나라가 없어서 그동안 얼마나 설움을 받고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경험한 일들을.


▷ 일본이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자꾸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한테 한마디 좀 해주세요.

▶ 일본놈들이 아주 아직도 자기네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주 정말 미워요. 또 TV 보면 아베가 그 전에 자기 할아버지 조상 때부터 높은 일을 하고 손자도 거기서 자라서 물을 들였나 봐요.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잖아요. 아주 보기가 싫어요. TV만 봐도 저놈의 아베. 아직도 마음을 잘 못하는구나. 그리고 우리나라 위안부 그 사람들 막 끌고 가고 30명 총살을 시켰다고 하니 죽일 놈들이야. 자기네 잘못을 다 반성하고 우리나라한테 사죄를 해야 돼. 독도가 무슨 저희 땅이야. 옛날 사백 몇 년 전에 우리 땅인 게 역사적으로 다 나와있는데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그러고.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안 돼. 아직도 우리가 일본을 경계하고 우리나라 군대 다 강하게 만들어야 해요. 남북 통일이 되어야 우리나라도 이웃에서 얕보지 못해요.


▷ 힘들게 나라를 찾았는데 남북 분단된 현실이 가슴 아프신 거죠.

▶ 그럼요. 지금 아직도 그래서 일본놈들도 아직 우리 얕보는 거야.


▷ 끝으로 후손들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 국민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 조금만 큰 소리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도 아주 굉장히 머리가 좋아요. 우리나라 형편에서 단결심이 강하고, 하여튼 이웃에 약하게 보이지 않고, 강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지켜야 된다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되겠죠.


▷ 지금까지 3대째 독립운동을 해오신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오늘 인터뷰 고맙습니다.

▶ 네,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윤경빈, 김우전, 김유길, 오희옥 지사님 등 훌륭한 어른들께서 우리 후손들을 믿고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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