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숙 한국거래소 기업밸류업지원부장이 최근 홍콩에서 열린 투자설명회에서 한 말이다. 현재 한국거래소와 금융당국은 상장폐지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코스닥이 주요 증시 중 수익률 최저를 기록할 만큼 경쟁력이 약화한 상황에서 대출 이자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증시 활력을 저해하며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정책 마련이 늦어지면서 목표했던 연내 시행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코스닥이 활력을 잃고 올 들어 내내 부진을 이어가는데다 자본금만 까먹고 있는 한계 기업들이 자본잠식 해소를 위해 무상감자에 나서는 일이 증가하며 투자자들 손해만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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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종목 열에 하나는 감자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관리종목에 지정된 코스닥 상장사(스팩 제외)는 39곳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올해 감자를 결정한 상장사는 퀀타피아(078940), 올리패스(244460), 디딤이앤에프(217620), 에이디칩스(054630) 등 총 5곳으로 12.8%에 해당한다.
퀀타피아는 지난해 12월 회계처리기준 위반 행위로 인한 증권선물위원회의 검찰 고발 등으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되면서 올해 1월 23일 관리종목에 지정됐다.
이후 올해 9월 퀀타피아는 비율 52.31%의 감자를 결정했다.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보통주 3주당 1주로 무상병합하고 기타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보통주 2주당 1주로 무상병합하는 차등감자 방식이다. 자본금은 265억원에서 126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올리패스는 자본잠식률 50% 이상 등을 이유로 지난 3월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이후 지난 10월 올리패스는 결손 보전에 의한 재무구조 개선을 이유로 10대 1 무상감자에 나섰다. 이에 자본금도 203억원에서 20억원으로 감소했다.
이외 디딤이앤에프, 에이디칩스 등이 상장폐지사유 발생을 이유로 지난 4월 관리종목에 지정됐고 각각 무상감자에 나섰다.
이기환 인하대학교 금융투자학과 교수는 “금융당국이 한계기업 퇴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발 벗고 나서지 않다 보니 거래소도 눈치 보는 모양새”라며 “한계기업 퇴출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고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올려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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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곳 상장한 사이 퇴출은 19곳
상장폐지 절차 간소화 작업이 지지부진한 사이 국내 증시에서는 한계기업이 쌓이면서 손해는 투자자만 떠안게 됐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 폐지한 기업은 총 19개사(총 36개, 스팩합병 상장폐지 11개·스팩합병 실패 상장폐지 6개 제외)로 집계됐다. 반면 올해 신규 상장한 기업은 일반 기업 37개사, 기술특례기업 36개사로 총 73개사(총 104개, 스팩 31개 제외)다.
자본잠식, 횡령배임 등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상장사는 거래소로부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를 받아 개선 기간을 부여받을 수 있고,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와 개선기간 중에는 주권매매거래가 정지된다.
코스피 상장사는 최장 4년의 개선 기간을 부여받을 수 있으며 코스닥 상장사는 총 3번의 심사를 받는다. 게다가 상장폐지 절차와 기간마저 길어서 증시자금이 불필요하게 오래 묶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8월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자료만 봐도 상장사 평균 거래정지 기간은 438일, 1년 이상 거래정지가 된 기업도 50개사로 파악됐다. 현재 시장 전체로 따지면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해 거래정지 상태에 놓인 상장사가 100곳(스팩 제외 코스닥 73개)에 달하는데 시가총액은 10조원을 넘어선다.
문제는 장기간 심사 후 통상 상장폐지 되는 경우가 많고, 정리매매 기간에 거래가 재개되더라도 주식가치가 크게 떨어져 피해가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 된다는 점이다. 결국 1년 넘는 희망 고문으로 손해만 늘어나는 셈이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계기업 퇴출 요건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절차에 대한 효율화가 더 중요한 문제”라며 “또 한계기업 퇴출에는 애초에 자격을 갖춘 기업을 상장시켜야 한다는 인식도 깔렸다. 퇴출과 함께 장기적으로 시장 진입 장벽도 함께 높이는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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