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어즈앤스포츠=김도하 기자] 남자의 종목인 스누커의 성역이 무너졌다. 또한, 당구는 핸디캡 없이 여자 선수가 남자 선수를 이길 수 있는 스포츠라는 사실이 또 한 번 입증됐다.
한국시간으로 18일 영국 레스터에서 열린 '2024 월드스누커투어 UK 챔피언십' 예선 2라운드에서 중국의 여자 스누커 선수 바이위루(21·여자 세계랭킹 4위)가 남자 프로 스누커 선수인 제이미 존스(잉글랜드)를 프레임스코어 6-4로 제압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스누커는 당구 종목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 선수 실력 차가 크다. 따라서 여자 선수가 남자 선수에게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종목이다.
더군다나 월드스누커 투어(WST)는 세계 최정상의 선수들이 뛰는 무대여서 각 나라에서 웬만큼 친다는 정상급 남자 선수들조차도 투어 자격을 따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중국의 2003년생의 어린 여자 선수가 WST 투어에서 월드챔피언십 8강 진출자를 꺾는 이변 중의 이변이 연출되면서 WST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바이위루는 올해 3월에 열린 '2024 WWS(월드 우먼스 스누커) 챔피언십' 결승에서 여자 세계랭킹 1위 밍 눗차룻(태국)을 6-5로 꺾고 세계챔피언에 오르며 남자 투어인 WST 출전권을 따냈다.
지난 7월에 중국에서 열린 '시안 그랑프리 예선전'에 첫 출전을 시작으로 이번 대회 전까지 9차례 WST에 도전했지만, 남자 선수를 이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1승도 올리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바이위루는 여자 대회에서는 여전히 강세를 이어가며 다시 정상에 올랐다. 지난 9월 열린 'UK 우먼스 챔피언십' 준결승에서 눗차룻, 결승에서 유럽 최강자인 리앤느 에반스(영국·랭킹 3위)를 차례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바이위루는 지난 17일에 열린 이번 대회 첫 경기에서 마침내 WST 투어 첫 승리를 기록했다. 올 시즌 큐스쿨 통과자인 파라크 아자이브(파키스탄)에게 6-4로 승리한 것.
이 경기에서 바이위루는 프레임스코어 1-3으로 지고 있다가 5프레임부터 내리 4승을 거두며 5-3으로 역전했고, 9프레임을 0:72로 내준 뒤 10프레임에서 73 하이브레이크를 기록하며 75:1로 승리를 거두고 WST 경력에 첫 승리를 기록했다.
이어 이날 이번 대회 두 번째 경기에서는 제이미 존스에게 2-3으로 끌려가다가 6프레임부터 3연승을 달려 5-3으로 역전한 뒤 9프레임을 31:68로 내주고 10프레임을 75:36으로 따내며 두 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었다.
WST 랭킹 54위인 존스는 올해 열린 월드챔피언십 최종예선에서 닐 로버트슨(호주)을 탈락시키며 본선에 올라간 선수다. 지난 2012년 월드챔피언십에서는 16강에서 숀 머피(영국)를 10-8로 꺾고 8강에 진출한 바 있다.
그 외 스코티시 오픈과 호주 오픈, 폴헌터 클래식 등 굵직한 대회에서 준결승에 네 차례 진출한 36세의 베테랑 선수여서 21세의 어린 여자 선수에게 공식 투어에서 패한 충격이 더 커졌다.
지난 2014년 3쿠션 당구월드컵 '클롬펜하우어 돌풍'
바이위루, '女3쿠션 원톱' 클롬펜하우어의 길 갈까
월드스누커 투어(WST)는 연간 200억원의 상금을 걸고 126명의 선수가 영국과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돌며 20여 차례 투어를 벌이는 당구 종목 최대 규모의 프로 투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구 종목에서 WST 외에는 억대의 우승상금을 주는 투어가 없었고, 글자 그대로 당구선수에게는 '꿈의 무대'였다.
그러다가 지난 2019년에 한국에서 캐롬 3쿠션 프로당구(PBA) 투어가 출범한 뒤 지난해에는 WST를 운영하는 영국의 매치룸스포츠가 포켓볼 종목의 프로 투어를 정식 출범하면서 당구 3대 종목이 모두 프로 투어를 완성했다.
여자 스누커의 경우 선수가 다른 종목처럼 많지 않고, '월드 우먼스 스누커 투어(WWS)'도 규모가 크지 않다.
스누커가 당구 종목 중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아서 저변이 확대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선수 수 증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약점이다.
과거에 3쿠션도 같은 이유로 여자 선수가 사실상 전무했는데, 2000년대 중후반에 한국으로 전파되면서 저변이 확장돼 선수 수가 크게 늘어났다.
이번 바이위루의 활약을 계기로 스누커 역시 여자 선수들의 활약이 주목을 받게 될 전망이다.
과거 LPBA 투어가 생기기 이전에 지금과 비슷한 일이 먼저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일어나 "여자 선수도 남자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바 있다.
지난 2014년에 한국에서 열린 '구리 3쿠션 당구월드컵'에 출전한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네덜란드)는 역사상 최초로 남자 선수들을 꺾고 본선 32강에 진출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시에 클롬펜하우어는 현재 PBA에서 투어 챔피언에 오른 마민껌(NH농협카드)과 PBA 투어를 뛰고 있는 사바시 불루트(튀르키예) 등을 꺾고 예선 3라운드와 최종예선을 통과한 뒤 본선 32강에서 '3쿠션 사대천왕' 토브욘 블롬달(스웨덴)과 승부를 벌였다.
32강에서 블롬달에게 12이닝 만에 20:40으로 져 탈락하기는 했지만, 이 경기 역시 애버리지 1.666의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클롬펜하우어는 이후 여자 세계선수권을 5차례나 우승하며 세계 무대를 독식했다.
남자 선수와 대등한 승부를 벌인 바이위루 역시 앞으로 여자 스누커 무대에서 절대적인 강자로 입지를 굳힐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여자 스누커 선수들의 실력 향상과 저변 확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바이위루는 19일에 랭킹 44위의 스캇 도널드슨(스코틀랜드)과 이번 대회 예선 3라운드 경기를 치른다.
(사진=WST/WW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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