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용어부터가 부정적이다. 한자로 어리석을 ‘치’와 어리석을 ‘매’를 쓴다. 용어에서부터 환자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치매는 대뇌 신경 세포의 손상으로 지능, 의지, 기억 따위를 상실하는 병으로 정신 이상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상태와 다르다. 치매 초기에는 일반적인 대화와 생활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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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힘은 실로 크다. 언어가 대중의 인식과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가혹한 인식은 치매 당사자의 존엄성 상실은 물론 조기 진단과 치료를 방해한다. 그 뿐만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판단으로 이어져 가족과 개인이 고립감과 수치심을 경험하고 공개적으로 환자의 상태에 대해 논의하거나 해결하는 것을 꺼리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치매에 걸린 많은 사람은 추가적인 정서적 부담에 직면하게 되고 이는 치료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치매 노인도 여느 노인과 마찬가지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자신이 선택한 곳, 익숙한 지역사회 안에서 존엄성을 유지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보장돼야 한다. 이를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이하 AIP)라고 하는데, 이를 위해 치매에 대한 인식 재고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2004년 치매라는 단어가 지닌 부정적 의미와 사회적 낙인을 줄이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인지장애를 의미하는 ‘인지증’(認知症)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용어를 ‘치매’에서 ‘인지증’으로 바꾼 이후 사회적, 심리적으로 여러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경험했다. 치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크게 높아졌고 공개적인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 크게 향상됐다. 사회적 낙인이 줄어들면서 치료받기도 편안해졌다. 그 결과 환자 가족과 간병인은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치매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조기 진단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치매 관련 교육 및 서비스에 나서는 지역사회가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로 2011년부터 정신분열증을 ‘조현병’(調絃病)으로 순화해 사용하고 있다. 정신분열증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줄이기 위한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조현(調絃)은 한국 전통문화에서 유래했으며 ‘악기의 현을 조율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 용어의 기본 개념은 조율되지 않은 도구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조화를 잃을 수 있지만 적절한 관리와 치료를 통해 균형을 다시 조정하거나 조율할 수 있는 상태로 정신분열증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질병에 대한 보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견해를 담아 치유와 회복 가능한 질병으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용어 변경은 단순한 언어적 수정에 그치지 않는다. 보다 큰 틀에서의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의미한다. 이제 치매라는 용어도 보다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꿀 때가 됐다. 한국사회는 내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용어 변경을 더는 늦출 수 없는 이유다. 모든 국민이 치매를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아닌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으로 포용하는 태도를 갖출 때 치매 노인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 치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다.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에 정책 입안자를 비롯해 의료 및 돌봄제공자, 그리고 일반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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