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Laren x Bowers & Wilkins
맥라렌은 고성능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추구하면서 바워스앤윌킨스 오디오와 협업하고 있다. 바워스앤윌킨스는 삼성전자가 인수한 하만그룹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다.
Bentley x Naim
(위) 벤틀리의 상급 모델에 적용된 네임 오디오의 스피커 디자인. (아래) 벤틀리 플라잉 스퍼에는 하이파이 오디오 네임이 적용돼 있다.
프리미엄을 완성하는 하이엔드 카오디오
마이카. 나의 차.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자동차는, 이동의 자유와 더불어 마침내 내게도 독립된 해방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건 집에서 내 방을 갖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그 차원을 확장시킨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좁고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운 입체적인 사운드는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 푸른 하늘과 구름이 흘러가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드라이브하며 듣는 음악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그만이었다. 새로운 경험의 다음 단계가 대개 그렇듯 더 나은 품질을 찾는 수요가 생겨나고, 그와 함께 카오디오에 대한 관심과 갈증도 커졌다.
처음에 카오디오는 차내에서 AM 라디오를 듣는 것으로 출발했다. 1924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켈리 모터스가 차량용 라디오를 처음 설치한 것으로 알려진다. 단순한 라디오 수신기를 단 구성이지만 가격은 비쌌다. 1932년 독일에서는 블라우풍트 중·장파 라디오가 소형차 가격의 약 1/3 수준에 판매되었다. 자동차 전용 LP 플레이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6년 크라이슬러에 의해서였다. 컬럼비아 레이블에서 자동차 전용 7인치 디스크를 제작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후 1968년 필립스가 카세트 플레이어를 장착한 카오디오를 출시했다. CD 플레이어가 등장하기까지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1984년 파이오니어가 자동차용 CD 플레이어를 최초로 선보였다.
카오디오 매체가 발전하면서 사운드 시스템의 기술적 진화도 동반되었다. 어떤 제품이 발전하면 종착역은 하이엔드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유행한 카오디오 튜닝은 홈오디오의 스펙과 가격을 훌쩍 뛰어넘었으며 심한 경우, 찻값을 넘어서기도 했다. 자동차 메이커는 이러한 분위기를 간과하지 않았다. 일부 대형 메이커는 오디오 브랜드를 인수해서 인하우스 제조 시스템으로 편입해 품질과 효율성을 챙겼다. 신차 개발 과정에서 사운드 시스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품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같은 모델이라도 오디오 옵션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하이파이,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에 파트너십을 제안하며 차별화의 수준을 달리했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핵심 전략은 품질 수준의 확연한 차별화다. 소비자가 남들보다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갖는 것. 그 희소성이 커질수록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하이엔드 오디오에 집중하는 이유일 것이다. 당시 정체된 홈오디오 시장에 고심하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는 카오디오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나 날개를 단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JEEP X Mclntosh
(위) 고급 앰프 브랜드 매킨토시의 블루 아이즈 패널 디자인. (아래) 지프 체로키에 적용한 매킨토시 앰프는 지프 마니아들을 설레게 한다.
자동차와 오디오, 필생의 브랜드 협업
바워스앤윌킨스는 볼보 외에 애스턴 마틴, BMW, 맥라렌, 폴스타 등 여러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와 오디오 시스템을 협업하고 있다. 이들 브랜드 중에서 볼보가 먼저 연상되는 까닭은 시그너처로 자리 잡은 다이아몬드 트위터와 함께 적극적인 개발과 홍보 전략이 통한 때문으로 보인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깔끔한 패키징과 선명한 사운드를 추구하는 오디오 브랜드의 철학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점도 그런 효과를 더한다.
하만 그룹은 JBL과 마크 레빈슨을 인수하면서 렉서스의 프리미엄 라인업 음향 시스템에 먼저 손을 댔다. 렉서스는 특유의 정숙성을 무기로 마크 레빈슨 로고를 달고 품격을 높일 수 있었다. 달리면서 마크 레빈슨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이었다. 하만은 이들 브랜드 외에 뱅앤올룹슨과 바워스앤윌킨스, 인피니티, 레벨, 렉시콘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지금은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해 자회사로 두고 있다.
뱅앤올룹슨은 아우디, 제네시스, 벤틀리 등과 협업하고 있다. 벤틀리의 경우 컨티넨탈 GT, 뉴 플라잉 스퍼 모델에 뱅앤올룹슨 오디오를 장착한다. 그런데 벤틀리는 상급 모델에 네임(Naim) 오디오 시스템을 얹고 있다. 뱅앤올룹슨은 16개 스피커로 1500W를 컨트롤하며 네임 오디오는 20개 스피커에서 2200W를 컨트롤한다. 하이엔드 위의 하이엔드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하이파이 제조업체 네임 오디오는 2011년 프랑스 라우드 스피커 제조업체인 포칼과 합병해 그 위세를 드높였다. 네임 오디오는 앰프의 명가 매킨토시(Mclntosh)와 조합으로 환상적인 오디오 시스템을 구성하기도 한다. 블루아이즈 패널 디자인으로 상징되는 매킨토시는 지프 그랜드 체로키에 적용되어 마니아들을 설레게 한다.
하만에서도 프리미엄급인 렉시콘(LEXICON)은 2003년부터 롤스로이스 팬텀과 카오디오 협업을 해왔다. 하지만 제네시스가 렉시콘 오디오를 사용하면서 그 권위가 약화된 감이 없지 않다. 명품의 가치는 결국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갖는 것, 즉 희소성에 있기 때문이다. 부가티에서 폭스바겐, 기아 등 대중 브랜드로 그 영역을 확장한 다인오디오(Dynaudio)나 보스(BOSS) 역시 마찬가지다. 부메스터(Burmester)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AMG 라인, 포르쉐와 페라리 등에 카오디오를 공급하며 비교적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어느 분야든 명성과 비즈니스 모두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와 하이엔드 카오디오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 전기차 시대에 접어들며 그 협업 전략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VOLVO EX90 X Bowers & Wilkins
(위) 대시보드 상단의 바워스앤윌킨스의 원형 스피커는 볼보 상위 모델의 시그너처로 자리 잡았다. (아래) 몰입감을 더하는 프리미엄 오디오를 적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구매가치가 한결 높아졌다.
오디오만으로 자동차를 선택한다면?
자동차 성능이 비슷해지고 품질도 모두 일정한 수준 이상이라고 할 때 오디오는 선택의 이유 중 하나가 된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하이엔드 오디오에 집중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래서 오디오만으로 선택한다면 어떤 차를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 가능해진다.
나의 경우, 오디오 사운드는 달릴 때 소리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을 좋아한다. 주행 소음과 오디오 사운드가 부딪치면 그 또한 하나의 소음이 되기 때문이다. 내연기관 고성능 차는 가속 시 엔진 배기음이 그 자체로 사운드가 된다. 엔진 사운드를 즐기기 좋은 차에서는 오디오를 잠시 꺼두는 게 낫다. 반면 전기차는 오디오 사운드를 즐기기에 훨씬 좋은 환경이다.
그런 측면에서 얼마 전 미국 LA에서 만난 볼보 신형 전기차 EX90의 바워스앤윌킨스(Bowers & Wilkins) 오디오 시스템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차내 어느 좌석에 앉더라도 진정한 사운드 샤워를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발표 현장에 나온 바워스앤윌킨스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운드 샤워라니, 말만 들어도 사운드에 몸이 흠뻑 젖는 느낌이다. 이제는 볼보의 시그너처가 된 대시보드 상단의 원형 스피커(다이아몬드 트위터)를 포함해 25개의 하이파이 스피커가 실내 곳곳에 자리해 더 깊고 더 선명하며 더 정확한 사운드를 전달한다는 설명이다. 자신감의 배경은 헤드레스트에 통합된 스피커와 브랜드 최초로 도입한 돌비애트모스(DolbyAtmos) 시스템. 실제 캘리포니아 남부의 뜨거운 도로 위를 달리며 공간을 꽉 채우는 사운드에 몰입할 수 있었다. EX90은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 개념으로 모델 생애 주기 동안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약속한다. 영국 애비 로드 스튜디오와 협업해 튜닝한 애비 로드 스튜디오 모드도 그중 하나로 B&W 스피커가 탑재된 모든 EX90 오너에게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무료 제공할 예정이다. 이제는 CD 플레이어나 MP3가 없어도 전 세계 어디서나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최주식 시인, 자동차 칼럼니스트. 202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오토카코리아> 편집장이다. ‘월드 카 오브 더 이어’ 한국 심사위원이며 <20세기 자동차 열전> <도시에는 바다가 있네> <더 헤리티지 오브 더 슈퍼카> 등 여러 권의 편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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