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일상 속에서 커피는 이미 빼놓을 수 없는 국민 음료로 자리 잡았다. 거리마다 자리한 커피 전문점들은 점심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전통적인 식사 문화와의 연관성 속에서 더욱 흥미로운 의미를 가진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식사 후 음료는 숭늉이었고, 그 문화는 한국인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다.
숭늉은 식후 소화제로 자리 잡은 오랜 전통을 가진 음료다. 쌀밥을 짓고 남은 솥에 물을 부어 끓인 숭늉은 전분이 분해되면서 구수한 맛과 함께 소화에 도움을 주는 성분이 생긴다.
조선 시대의 여러 문헌에서도 한국인이 숭늉을 마셔야 식사가 끝난 것으로 여겼고, 숭늉을 마시지 않으면 밥을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한편,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고려를 방문했을 때 고려 사람들이 항상 숭늉을 휴대하며 마시는 모습을 신기하게 여겼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숭늉이 한국인의 식문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숭늉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소화제의 역할도 수행했다. 실제로 숭늉에는 소화에 좋은 성분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숭늉을 만들 때 밥의 전분이 분해되면서 포도당과 덱스트린이 생성되는데, 이들 성분이 구수한 맛을 더하면서도 소화에 도움을 준다. 또한, 에탄올이 함유되어 체내의 산성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어 소화가 어려운 음식을 먹었을 때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런 이유로 한국인들은 외국에 가서 숭늉을 구하지 못하면 소화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며, 이는 조선 시대의 여러 기행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 문인 김창업이 남긴 <연행일기>에는 청나라로 떠난 여정에서 숭늉을 마시지 못해 고생했던 기록이 담겨 있다. 그는 현지에서 미음을 마시고 나서야 위가 편해졌다고 회고하며, 숭늉의 부재로 인한 불편함을 상세히 적었다. 정조 시대에 중국을 방문한 서유문 역시 <무오연행록>에서 숭늉을 마시고 체기를 해소했던 경험을 적어놓았다. 이처럼 숭늉은 한국인의 일상에서 소화제와도 같은 역할을 해왔으며, 당시 사람들은 숭늉을 마셔야만 식사가 완성되는 것으로 여겼다.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에서는 숭늉과 같은 음료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인들은 쌀을 씻어낸 후 두 번이나 헹궈 끓이는 방식으로 밥을 지었고, 숭늉을 버리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이는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문화로 보였고, 반대로 중국인들에게는 숭늉을 항상 마시는 한국인이 이색적으로 보였다.
오늘날의 커피 문화도 숭늉 문화와 흥미로운 연결점을 갖는다. 커피 원두에서 추출한 물과 밥솥에서 추출한 숭늉 모두가 구수한 향과 소화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한국인이 일본인이나 중국인보다 커피를 더 자주, 많이 즐기는 것 또한 숭늉 문화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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