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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대한민국 최초 천만 관객 돌파 영화의 극본을 쓴 작가와 그래미 어워즈 수상에 빛나는 브로드웨이 스타 작곡가가 새로운 창작 뮤지컬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개막을 앞둔 ‘스윙데이즈_암호명A’(이하 ‘스윙데이즈’)의 김희재 작가와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이목을 끄는 ‘스윙데이즈’는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故) 유일한 박사가 일제 치하의 1945년,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OSS(미국 CIA 전신)가 비밀리에 준비한 냅코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야기를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냅코 프로젝트는 최정예 한국인 요원들을 투입해 일본의 기밀을 수집하고 거점을 확보하려고 했던 작전이다. 애국심 강한 한국인 19명이 참여했던 이 프로젝트는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물거품이 됐고 유일한 박사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흐른 뒤에야 그가 암호명 ‘A’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실이 밝혀졌다.
‘스윙데이즈’는 “냅코 프로젝트를 세상에 널리 알리겠다”는 김희재 작가의 열망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공동제작사인 스토리 개발 전문업체 올댓 스토리의 대표이기도 한 김희재 작가는 11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진행한 라운드 인터뷰에서 “냅코 프로젝트를 접한 계기는 유한양행의 독립운동 콘텐츠 제작을 도우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SNS와 유튜브에 배포할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진심을 다해 독립운동에 임한 유일한 박사의 이야기를 보다 완성도 높은 콘텐츠로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실미도’, ‘공공의 적 2’, ‘국화꽃 향기’, ‘누구나 비밀은 있다’ 등의 극본을 쓴 김희재 작가가 뮤지컬 작가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영화로 갔다면 극본 작업이 훨씬 쉬웠을 것”이라고 웃어 보인 뒤 “1~2년에 한 번씩 관객과 다시 만나며 오랜 세월 동안 회자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영화가 아닌 뮤지컬 장르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도전기를 돌아보면서는 “영화와 문법이 달라 애를 먹었다”며 “많은 사건을 집어넣는 걸 선호하는 작가인데 사건이 아닌 노래로 갈등과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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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김희재 작가에게 제이슨 하울랜드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뷰티풀 : 더 캐롤킹 뮤지컬’의 편곡자로 그래미 어워즈에서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제이슨 하울랜드는 ‘마타하리’,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웃는 남자’ 등 다수의 K뮤지컬에 편곡자로 참여한 친한파 작곡가다.
인터뷰에 동석한 제이슨 하울랜드는 “창작 환경과 배우들이 가창력이 좋아서 한국 뮤지컬 작업을 선호한다”면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인간미가 느껴질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노력했고 작품 분위기에 맞춰 ‘미션 임파서블’과 ‘007 시리즈’ 음악 톤도 참고했다”고 말했다.
김희재 작가는 “제이슨 하울랜드의 음악을 듣자마자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러브콜을 보냈다”며 “클래시컬하면서도 도발적인 스타일의 음악이 현 시대에 화두를 던지는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협업 계기를 설명했다.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이다. 뮤지컬 ‘그날들’, ‘모래시계’ 등을 제작한 인사이트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3년여에 걸쳐 초연을 준비했다. 연출은 ‘마리퀴리’로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연출상을 받은 김태형, 음악감독은 ‘레미제라블’, ‘맘마미아’, ‘영웅’, ‘레베카’ 등의 김문정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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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재 작가는 “화려한 볼거리가 많은 뮤지컬이다. 무대 전환도 많고 아주 독특한 캐릭터도 등장한다”며 “쇼적인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위해 아낌없이 제작비를 투입했다”고 강조했다.
냅코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한 ‘스윙데이즈’는 언뜻 김일성 암살을 목적으로 창설됐다가 해체된 684부대를 소재로 다룬 김희재 작가의 대표작 ‘실미도’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한 물음에 김희재 작가는 “미완의 프로젝트를 다룬다는 점과 꼭짓점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은 같지만 흐름은 확실히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프로젝트보다 인간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 또한 특징”이라고 짚었다.
‘실미도’와 ‘한반도’에 이어 한반도 정세와 연관된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지점. 관련 물음에 김희재 작가는 “딜레마에 빠진 인물들이 하나의 길을 택해서 나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그런 이야기가 극대화되려면 아무래도 거대 담론을 펼쳐내야 한다. 아무래도 저한테는 꽃보다 총을 들고 하는 서사가 더 편하다”고 덧붙이며 미소 지었다.
‘스윙데이즈’는 개막 후 내년 2월 9일까지 공연한다. 작품에는 유준상·신성록·민우혁(유일형 역), 고훈정·이창용·김건우(야스오 역), 정상훈·하도권·김승용(황만용 역), 김려원·전나영·이아름솔(베로니카 역), 장현성·성기윤(곤도 역), 최현주·이지숙(호메리 역) 등이 출연한다.
김희재 작가는 “사랑과 헌신이 버겁게 느껴지는 무한경쟁 시대에 사랑과 헌신이 잘못된 게 아니며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고리타분하지 않게 던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관심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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