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맞았지만, 향후 국정 전망에 어두운 분위기가 깔리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어느 정도 해소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지난 대국민 담화에서 난국을 타개할 만한 승부수는 없었다.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친윤(친윤석열)'과 '친한(친한동훈)'으로 나눠진 계파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 사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제2의 국정 농단'으로의 전개를 염두에 둔 듯 대정부 투쟁의 보폭을 넓혀 8년 만에 장외에서 촛불을 들었다.
국내 정치 전문가 8인은 윤석열 정부의 전반기 국정 성적을 10점 만점 중 평균 2.25점으로 매겼다. 10%대로 내려앉은 대통령 지지율이 방증하듯이 다수의 전문가는 인터뷰 내내 "정부가 잘한 게 없다"는 뉘앙스의 냉랭한 반응을 쏟아냈다. 또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가 퇴행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며 근본적인 쇄신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아주경제가 10일 정치 컨설턴트·정치외교학 교수·정치 평론가 등 8명에게 윤석열 정부 전반기 평가를 요청한 결과 3명은 0점대를 부여했고, 가장 후한 점수는 5점이었다. 최고점을 준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6점이 과락인데, 그에도 못 미치는 점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노력은 하고 있지만, 국민이 체감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그나마도 낙제 수준의 평가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전문가들은 국정 난맥상이 장기화하는 이유로 '김 여사 리스크', '국민·국회와의 소통 부재', '사실상 4대 개혁 실패' 등을 지적했다.
특히 김 여사 관련 문제에 취임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최근 불거진 '명태균 사태'에서도 거짓말 해명 논란 등이 이어지면서 국민 눈높이에 동떨어진 행보가 지속되고 있다는 일침이다. 윤석열 정부 핵심 정책인 4대 개혁의 당위성은 일부 인정할 부분이 있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데 이어 야당과의 대화를 무시하는 '일방통행적' 방식이 패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집권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한 윤 대통령의 후반기 키포인트는 결국 '변화·쇄신'의 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야당의 네거티브 공세가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제 식구 지키기'에 급급했던 리더십을 반복할 경우 정권 유지에 빨간불이 들어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한 해명에서 사용한 언어, 단어, 문장들도 국민들에게 와닿지 않는 내용이었다"며 "지지율 반등을 생각할 게 아니라 하락을 걱정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국정 운영에 반전이 될 수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7일 대국민 담화·기자회견에 대해 전문가들은 "형식적인 사과는 있었으나, 내용이 부실했다"며 혹평을 내놨다. 지난 8월 국정 브리핑 이후 70일 만에 진행한 공개 회견이자 질의응답 시간만 125분으로 역대 최장이었으나, 적절치 못한 해명과 함께 재발 방지에 대한 구체적 설득이 부재했다는 분석이다.
장 소장은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맞지 않는 해명으로 정권에 더 부담이 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사과는 했으나 이유가 불분명했고, 구체적 재발 방지책이 결여됐다"며 "전체적으로 보면 윤 대통령이 주관적 인식에 기반한 해명을 했다"고 지적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시작하자마자 고개 숙여 사과한 것은 인상적이었으나, '가짜뉴스', '악마화'를 거론하며 국민 여론을 호도했다"고 평가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기대감이 사라진 담화였다"며 "자기도 뭘 사과하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향후 정부 성패를 가를 요인으로는 차기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행보가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한 대표가 그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불사하고 국민 눈높이를 강조한 만큼 쇄신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최 평론가는 "여당이 '친윤(친윤석열)'과 '반윤(반윤석열)'으로 갈라져 권력 투쟁을 할 것"이라며 "미래 권력인 한 대표 측이 힘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면초가에 처한 대통령이 돌파를 시도하면서 격한 정쟁에 휘말릴 것이다. 친한계는 (민주당의 요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상황"이라고 예측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 대표가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가 관건"이라며 "확실한 메시지를 던지지 않으면 내년쯤 입지가 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어느덧 10%대까지 떨어진 지지율 반등을 위해선 의료·연금·노동·교육 등 '4대 개혁'에 대한 보다 상세적인 로드맵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박 평론가는 "4대 개혁에 대한 지난 과정을 얘기하지 말고 앞으로 개혁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반해 엄 교수는 "4대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비전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야당을 비롯해 이해관계 집단들과 소통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황 평론가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결국 정책의 수혜자는 국민"이라며 "국민 동의를 얻어가며 완급을 조절해야 했는데, '우격다짐' 식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갔다"고 진단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정 운영 방식 전환과 인적 쇄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다수 전문가는 야당 측이 제기하는 탄핵, 임기 단축 개헌, 자진 하야 등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신 교수는 "탄핵은 대통령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고, 여당이 대통령 등을 돌렸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임기 단축 개헌에 대해서도 "헌법 128조를 보면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거나 중임제 개헌을 할 때에는 그 당시 대통령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는데, 이를 부칙조항에 넣어서 개헌하자는 건 탄핵보다 더 어렵다"고 주장했다.
최 소장 역시 "기본적으로 탄핵이든 임기 단축 개헌이든 모든 헌정 중단을 위한 활동은 진보가 아닌 보수가 움직여 줘야 가능하다"면서 "야권 일각에서 임기 단축 개헌이 탄핵보다 쉽다고 이야기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번 인터뷰에는 박상병 정치평론가(4점),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3점),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 교수(0점),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3점),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2점),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0점), 최요한 정치평론가(0.5점), 황태순 정치평론가(5점) 등이 응했다. 괄호 안 숫자는 윤석열 대통령 전반기 국정 운영에 대한 평점(10점 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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