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귀리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식재료가 아니다. 곡류 중 유일하게 미국 〈TIME〉지 선정 10대 슈퍼푸드 중 하나로 꼽혔던 게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고, 건강 관련 기사나 TV 프로그램은 잊힐 만하면 또 한 번씩 귀리의 효능을 소개한다.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자면, 귀리는 여타 곡류에 비해 단백질, 식이섬유, 미네랄, 비타민, 필수아미노산 등 영양소가 두루 풍부하다. 베타글루칸 성분과 불포화지방산이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거나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도록 도우며, 장 건강이나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치매 예방이나 난청에도 효과가 있다는 등 최근까지도 계속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저희도 테스트를 하면서 새삼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다른 곡물들과 함께 검사를 해보면 대부분의 영양 측면에서 높은 군에 들어오고, 아베난쓰라마이드처럼 여타 곡물에 없는 유익한 성분들까지 있거든요.”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관 이유영 박사의 설명이다. 국립식량과학원 홈페이지에 그녀의 업무는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밭작물(귀리) 기능성 평가 및 부가가치 향상’. 국내에서 귀리라는 식품이 가진 잠재성과 가능성을 일찍부터 알아본 그녀가 10년 전 농촌진흥청에 총 과제를 제출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귀리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귀리가 핫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유영 박사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식품이 그렇듯이 트렌드라는 게 있긴 하죠. 귀리도 주기적으로 주목받고 있고요.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4년 전쯤까지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선식처럼 먹는 경향이 강했던 것 같아요. 최근 추이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완제품 수입이 계속 늘고 있다는 거고요. 귀리 완제품을 찾는 수요가 작년 대비 한 400% 정도씩 올랐어요. 그렇게 수입이 증가하는 만큼 국내 식품 산업계도 귀리 제품을 만들고 있을 테니 실제로는 더 성장했겠죠.” 귀리 가공 식품의 인기를 가장 선명히 확인할 수 있는 분야는 귀리 베이스 식물성 대체 우유, 즉 ‘오트밀크’다. 몇 년 전부터 대기업들이 국내에 오트밀크 제품을 출시해 왔고, 현재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나온 제품들까지 꽤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식품 회사들과 얘기를 해보면 다들 그래요. 귀리가 슈퍼푸드다, 몸에 좋다 하는 사실이 워낙 잘 알려져 있잖아요. 따로 선전을 하지 않아도 다들 건강한 식품이라고 인식을 하기 때문에, 그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해요.”
하지만 문제 역시 그 부분에서 온다. ‘어디에 좋은지는 잘 몰라도 아무튼 귀리가 좋다더라’는 인식. 이를 테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오트밀크 대부분의 귀리 함량이 10% 안팎이다. 단순히 곱하기로 계산해 ‘많이 마시면 되지’ 하기에는 오트밀크에 귀리 외에 어떤 첨가물들이 들어갔는지를 봐야 한다. 무엇보다 혈당을 빠르게 높인다. 익히 알려지다시피 귀리 자체는 현미의 19배에 달하는 섬유질로 지방 축적을 지연시켜주는 탁월한 다이어트 식품이다. 그런데 그게 액체나 가루 형태가 되는 순간 GI(특정 식품을 섭취했을 때 혈액 속 당 농도가 증가하는 속도를 수치로 나타내는 혈당지수)가 뛰어올라 백미밥을 우회하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오트밀크, 즉석 오트밀, 오트 쿠키, 전부 마찬가지다. 당연한 얘기지만 GI는 다이어트 중인 사람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식후에 혈당이 순간적으로 치솟았다 내려가는 ‘혈당 스파이크’는 성인병의 가능성과 직결될뿐더러 일상적으로 피로감, 두통, 브레인 포그, 졸림, 무기력감, 불안, 심장 두근거림 등의 증상을 낳는다. 초가공식품과 정제 곡물이 넘쳐나는 오늘날에는 사실상 무수한 현대인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이런 상태에 빠져 있다. “오트밀크는 결국 귀리를 갈아서 액체로 만든 것이라, 통귀리가 가지는 혈당 상승 지연 효과는 보기 어렵습니다. 영양적으로 접근했을 때는 액체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오트밀크보다는 차라리 단백질 함량이 높은 두유가 더 낫다고 볼 수 있고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의 설명이다. 일상적 생활습관이 삶의 질 전반과 노화에 끼치는 영향을 설파해 ‘저속노화쌤’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렌틸콩 40%, 귀리 20%, 현미 20%, 백미 20%의 비율로 짓는 그의 ‘저속노화밥’ 레시피로도 한동안 SNS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게 사실, 최초의 레시피는 렌틸콩 50%, 백미 50%였거든요. 그런데 렌틸콩과 백미를 줄이고 귀리와 현미를 넣어보니 풍미가 좀 더 살아나고 식감이 다채로워지더라고요. 열량 대비 포만감이 탁월하다는 점도 좋았고요. 이렇게 지은 밥은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과식이 되기 어렵거든요.” 귀리의 장점에 대해 말하던 그는 대뜸 ‘맛’을 언급했고, 귀리가 맛있냐는 툭 터놓은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네. 밥에 넣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나고 씹는 느낌도 좋습니다.”
“혹시 귀리를 맛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세이오트 신지혜 디렉터와 처음 이야기를 나눴을 때 던졌던 질문도 그런 식이었다.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대부분이 오트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더라고요. ‘종이 박스 젖은 맛’이라거나 오트밀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사실 한국인들에게 쉬운 식재료는 아닌 거예요. 제가 하는 건 생각보다 쉽게, 맛있게 오트를 즐길 수 있다는 걸 전하는 거고요.” 오트 전문 카페인 세이오트에서 처음 맛본 것은 하룻밤 동안 불려둔 오트 위에 베리류 과일들을 얹은 베리차이 오버나이트와 뭉근하게 끓여낸 크리미 포리지였다. 신지혜 디렉터가 끊임없이 연구해 만든 오트 메뉴들은 실제로 꽤 맛있었다. 다만 식감이 걸렸다. 오버나이트 오트의 ‘마분지’ 같은 질감은 그래도 독특하다 여길 수도 있었으나 포리지는 목에서 잘 넘어가질 않았다. 딱 밥 같은 온도와 형태, 밥과 죽의 중간 정도 되는 점도인데, 왜 그리도 생소했을까? “오히려 그래서 처음 드시는 분들은 어색해 하는 것 같아요. 죽처럼 느껴지는 구석이 있는데 결국 다르니까. 우리한테는 죽이라고 하면 보통 쌀과 ‘세이버리(간이 있는)’한 식재료를 같이 넣고 끓이는 형태잖아요. 그런데 뿌연 액체랑 같이 끓였는데 세이버리하지 않고 달콤하니까 낯선 거죠.” 내 주문의 내용을 내심 걱정하는 듯 보였던 신지혜 디렉터는 식사가 끝나갈 때쯤 주문하지 않은 음료를 한 잔 서비스로 내놓았다. 직접 만든 라벤더 시럽을 가미한 오트밀크라고 했다. 그 직관적으로 향긋하고 고소한 맛의 음료를 들이켜보니, 어째서 유독 오트밀크가 그렇게 인기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세이오트는 정확히 말해 ‘오트바’라기보다 ‘프렌들리 오트바’예요. 강요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음식들이 대부분 단순한 레시피를 갖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여기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식으로 여기지 말고, 집에서도 해 드시라고. 저희는 레시피 그냥 다 알려드리거든요.”
특정 식재료의 유행에는 늘 명암이 있다. ‘건강’과 관련된 트렌드는 특히 그렇다. 오래 비건 생활을 했던 신지혜 디렉터는 그에 공감하는 부분이 크다고 했다. 성분은 엉망인 것에다 건강 관련 용어를 포장지처럼 붙여서 내는, ‘괘씸하리만치’ 기만적인 제품이 정말 많다고 말이다. 다만 그녀가 오트밀크 같은 가공품에 가진 생각은 꽤 긍정적인 축이라고도 했다. “저희 매장에서도 너무 압착이 많이 되고 분쇄가 많이 된, 당 수치가 오르는 형태의 귀리 제품은 최대한 안 쓰려고 하고 있어요. 하지만 시중 판매되는 오트밀크의 업적도 있죠. 매장에서 느끼기에, 일단 사람들의 인식을 많이 바꿔 놓았어요. 예전에는 오트 하면 ‘비싸다’ ‘수입품이다’ ‘어렵다’ 이런 이미지가 있었거든요. 그 장벽을 확 낮춰 놨죠. R&D에 투자를 많이 해서 좀 더 좋은 제품을 내려고 노력하는 곳도 많고요.” 국립식량과학원 이유영 박사 역시 더 나은 귀리 음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들을 짚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트 함량이 10%면 나쁜 제품인가요?”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귀리는 고려시대에 몽골을 통해 처음 국내에 들어왔다. 다만 남겨진 식문화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고 이제 새롭게 꽃피기 시작하는 것이다. 국내의 귀리 재배 단지도 점점 늘고 있고, 현재 종자용 수입 귀리의 40% 정도 분량을 국내산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거기에서도 과제는 생겨난다. 유럽권에서 흔히 겉귀리를 재배하는 것과 달리 국내를 비롯해 아시아권에서는 쌀귀리를 재배하고 있다. 둘은 영양과 맛에서 꽤 차이를 보인다. 새로운 레시피와 활용법이 필요할 정도로. “테스트하고, 연구개발을 하고, 좋은 성분을 뽑아내고, 그런 게 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죠. 귀리가 몸에 좋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게 자리 잡으려면 물리지 않고 잘 먹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거기에 다양한 형태의 귀리 제품이 나오는 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요.” 이유영 박사가 설명했다. 귀리는 건강하다.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긴 한데, 아무튼 순혈주의처럼 통귀리만 강요할 계제는 아니다. 각자의 입맛에 잘 맞는 형태로 먹다가 욕심이 난다면 건강을 챙기는 형태로 이동하는 게 영리한 방향일 수 있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생소한 음식이니까 말이다. 어머니께 연락해 오트 요거트의 레시피를 갈지 않는 쪽으로 수정해보라고 조언했다가 “그런데 그게 별로면 그냥 지금처럼 드시라”고 사족을 달았던 건, 결국 그런 이유다. →
Copyright ⓒ 에스콰이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