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폐지·고관세 등 미국 車정책 전면 재수정…국내업계 대응 분주
현대차그룹, 현지투자·기여 강조해야…부품업계, 중국 빈자리 메꿀수도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5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국내 자동차업계도 초비상이 걸렸다.
미국은 글로벌 최대 자동차 시장인 동시에 국내산 자동차 수출 비중이 50%에 달하는 곳으로, 자동차 관련 정책이 대거 수정될 경우 한국 자동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퍼펙트 스톰' 격으로 막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 대중국 견제 강화(디커플링) 등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 호재보다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트럼프의 경제·통상 정책은 대부분 자국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만큼 국내 자동차 업계가 현지 생산과 중국산 대체 등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 車업계, 전기차 의무명령 폐지·고관세 등 '퍼펙트스톰' 직면
7일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자동차 산업과 관련한 트럼프의 공약은 크게 4가지로 정리된다.
▲ 전기차 의무명령 폐지 ▲ 화석연료 생산 확대 등 환경 정책 방향 재설정 ▲ IRA 폐지 ▲ 대(對) 중국 제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했던 친환경차 중심 자동차 관련 정책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트럼프 공약의 핵심인 셈이다.
이중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과 가장 연관이 있는 것은 전기차 의무 명령 폐지와 IRA 폐지, 대중국 제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다.
먼저 트럼프는 전기차를 의무화해 내연기관 차량 판매가 금지될 경우 자신의 지지기반인 자동차 제조업 분야에서 2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하며 취임 첫날 이 명령의 폐지를 약속했다.
전기차 의무화가 폐지될 경우 글로벌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전기차 확산 속도가 둔화할 수 있다. 그 결과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 중심의 시장 구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IRA는 미국에서 제조된 자동차에만 세제 혜택을 주는 법으로, 현대차·기아 등이 미국에 현지 전기차 공장을 짓는 촉발점이 됐다.
다만 IRA의 폐지 여부에는 의견이 갈린다.
IRA 혜택을 받기 위해 타국 업체들이 공장을 지었던 지역이 조지아·미시간·오하이오 등 이른바 쇠락한 공업지역인데 만약 IRA 폐지로 현지 공장 설립이 무효가 될 경우 현지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섣불리 폐지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 분석이다.
중국을 비롯한 타국에 대한 보편관세 문제는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가장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보편적 기본관세 10∼20%, 중국 수입품에는 60%를 관세로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미국 수출 비중이 49.9%인 국내 자동차 산업은 관세 부과 시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 현대차그룹, 현지투자 적극 어필해야…부품업계, 중국 대체 기회
이러한 트럼프 공약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경우를 대비해 국내 완성차 및 부품업계도 대응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글로벌 3위 완성차그룹인 현대차그룹으로는 미국 전략의 전면적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대선 전부터 태스크포스를 꾸려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트럼프가 전기차를 '녹색 사기'로 부르며 내연기관차 산업의 유지를 약속한 것은 미국 내 전기차 점유율 2위인 현대차그룹에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집권에 따른 전기차 수요 둔화를 예상하고 현대차그룹은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TMED-II'가 적용된 신차를 현지 출시하고, 미국 조지아주에 지은 전기차 전용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IRA와 관련해서는 HMGMA의 지난달부터 가동을 시작한 터라 폐지 시 파급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미국은 리스를 포함한 상업용 전기차의 경우 IRA의 북미 생산 조항과 관계없이 7천500달러의 세액 공제를 적용했다.
현대차는 이 리스 조항을 활용해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높였는데 만약 트럼프가 IRA 폐지 대신 이 조항을 없앨 경우 타격은 불가피하다.
중국 견제를 위한 보편 관세도 지난해 미국에서 165만대가 넘는 차량을 판매한 현대차그룹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트럼프가 자국 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만큼 현대차그룹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현지업체와 협력을 확대하는 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할 필요성이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미국에 74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 조지아 기아 공장에 이어 전기차 공장인 HMGMA도 설립했고, 지난 9월 미국 자동차업체 GM과 공동 개발·생산 등의 포괄적 협력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국내 부품업체에는 대대적인 관세로 미국 시장에서 후퇴할 중국 업체들을 대신해 그 공백을 메울 기회가 주어졌다는 평가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강남훈 회장은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 확대를 통한 고용과 경제 기여도를 트럼프 정부에 강조하고,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대상으로 한 접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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