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패밀리 카 시장에 새 모델이 등장한 까닭이다. 중형 SUV는 이 시대 패밀리 카를 대표한다. 지금까지 중형 SUV 하면 떠오르는 모델은 명확했다. 르노 그랑 콜레오스와 KGM 액티언은 그 연상 작용에 균열을 일으키려 한다. 그럴 수 있을까?
패밀리 카의 조건이 뭘까.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우린 암묵적으로 인식한다. 네 명 혹은 그 이상이 여유롭게 앉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짐도 넉넉하게 실어야 한다. 여러 명과 넉넉함. 두 가지가 패밀리 카의 조건인 셈이다. 중형 SUV가 딱 부합한다. 몇 명과 뭘 하든 차 한 대로 해결할 수 있는 적정선. 그보다 작으면 아쉽고, 크면 패밀리 카를 넘어 기함의 영역이다. 어떤 점에서 패밀리 카는 지금 다수가 자동차에 기대하는 욕망의 총합인 셈이다. 시대에 따라 욕망은 커졌다. 패밀리 카로서 바라보는 자동차의 크기와 비례한다.국내 패밀리 카의 강자는 현대 싼타페와 기아 쏘나타다. 쏘렌토가 더 잘 팔리니 싼타페가 더 공간이 크니 해도, 둘의 점유율이 절대적이다. 올해 3분기까지 쏘렌토가 6만9549대, 싼타페가 5만7563대 팔렸다(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자료 기준). 국내 자동차 판매 순위로 봐도 1, 3위. 2위를 차지한 한국 특수 모델 기아 카니발을 빼면, 중형 SUV의 독주다. 패밀리 카로서 수많은 패밀리가 선택한 결과다.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둘의 독주가 바뀔 리 없다. 그럼에도 사는 입장에서 선택지가 더 많길 바랄 수밖에 없다. 어떤 산업이든 다양할수록 발전한다. 무엇보다 가격대의 다변화가 중요하다. 더 많은 사람이 패밀리 카의 넉넉함을 즐길 수 있으니까.
최근 그 변화가 생겼다. 국내 중형 SUV 시장에 새로운 선수 둘이 등장했다. 둘 다 패밀리 카로 쓰일 넉넉함을 갖췄다. 그러면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다. 3000만원대 패밀리 카로서 국내 중형 SUV에 변화를 일으킬 포부를 품었다. 르노 그랑 콜레오스와 KGM 액티언이 두 주인공이다. 우린 언제나 꼴찌의 반란을 기대한다. 반란 정도는 아니더라도 둘 다 반응이 좋다. 그랑 콜레오스는 지난 8월 판매를 시작해 9월까지 총 3945대가 팔렸다. 액티언은 2466대. 이후 판매를 예상할 누적 계약 대수도 높다. 그랑 콜레오스는 2만 대, 액티언은 1만3000대 수준. 그동안 사람들이 접근성 좋은 또 다른 패밀리 카를 기다려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랜만에 드라마를 기대할 차종이 생겼으니 두 차종을 모아봤다. 싸움을 붙이는 비교라기보다 성격을 알아보는 비교다.
“새로운 선수 둘이 등장했다.
둘 다 패밀리 카로 쓰일 넉넉함을 갖췄다.”
둥글거나 각지거나
그랑 콜레오스는 둥글다. 전체적으로 곡선으로 다듬었다. 르노 자동차가 지속해온 디자인이다. 덕분에 인상이 부드럽다. 심심하진 않다. 둥근 면에 날카로운 선을 가미해 다부진 느낌도 강조한다. 보닛 위로 튀어나온 선이라든가, 면의 끝을 날카롭게 벼린 선이라든가. 덕분에 빵빵한 근육질 차체로 보이기도 한다. 단정한데 근육질 몸매가 내비치는 남자. 르노가 그랑 콜레오스에 부여한 인상이다. 관리한 남자의 느낌이기에 멋도 부렸다. 시승차는 ‘에스프리 알핀’ 트림이다. 가장 멋부렸다는 뜻이다. 심지어 외장 색도 무광이다. 에어 인테이크와 그릴에 블루를 포인트로 칠했다. 르노의 고성능 모델, 알핀의 대표색이 블루다. 괴수의 비늘이 떠오르는 그릴 무늬도 평범하진 않다. 그래서 이상할까 싶지만, 커다란 차체의 심심함을 덜어낸다. 도발적인 장식이 있어도 기본적으로 단정한 까닭이다. 곡선과 날카로움, 약간의 장식이 그랑 콜레오스의 인상을 정립한다.반면 액티언은 각이 분명하다. 토레스가 그랬듯이, 토레스의 쿠페형인 액티언도 각이 주는 당당함이 있다. 사각형 SUV라면 정통 디자인을 떠올리지만, 몇몇 장식으로 미래적 인상도 부여한다. 대표적인 요소는 얇은 LED 주간주행등과 그 옆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무늬. 자세히 보면 건곤감리를 형상화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자세히 안 보면 잘 모른다. 리어램프도 건곤감리 무늬로 디자인했다. 액티언은 토레스보다 35mm 길고 20mm 넓다.
게다가 쿠페형이라 전고를 낮춰, 실제보다 차체가 더욱 길게 느껴진다. 액티언 디자인의 장점은 분명하다. 쭉 뻗은 사각형 차체, 게다가 뒤로 갈수록 날렵해지는 쿠페형 디자인. 세부 요소가 좀 과하긴 해도, 실루엣은 분명 매력적이다. 예전 쌍용차의 향수를 현대적으로 맵시 있게 구현한 노력이 엿보인다. 디자인만으로 사전 예약 기록도 세웠으니까.
둘은 확연히 다른 인상으로 각기 구매자를 유혹한다. 그랑 콜레오스는 둥글게, 액티언은 각을 살려서. 인상이 달라도 크기는 비슷하다. 그랑 콜레오스가 40mm 길지만, 폭은 액티언이 30mm 넓다. 높이는 쿠페형인 만큼 액티언이 25mm 낮다. 제원상 차이는 크지 않아도, 보이는 느낌은 꽤 다르다. 그랑 콜레오스는 크게, 액티언은 길게 느껴진다. 공통점도 있다. 둘 다 패밀리 카로서 크기가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디지털로 상향평준화
최근 인테리어는 상향평준화됐다. 디지털 디스플레이 덕이다. 커다란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대시보드를 채우면, 일단 그럴듯해 보인다. 대중 브랜드와 고급 브랜드를 가르는 차이도 덕분에 줄었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최근에 나온 차가 가장 인테리어가 좋다. 같은 등급의 모델이라면 말이다. 예전에 르노는 수직형 디스플레이를 내세웠다. 처음에는 신선했다. 하지만 대세는 어느새 가로형 디스플레이로 바뀌었다.그랑 콜레오스는 그 대세를 따르는 걸 넘어 앞서기로 했다. 동승석 디스플레이를 달았다. 그러니까 대시보드에 디스플레이가 세 개다. 르노가 처음 적용한 건 아니다. 포르쉐가 신형 카이엔에 적용했다. 하지만 포르쉐는 고가 브랜드다. 르노는 대중 브랜드다. 그럼에도 적용했다. 신차를 가장 신차답게 보여주려는 각오가 엿보인다.
디스플레이만 그럴싸한 건 아니다. 프로그램도 신경 썼다. 티맵 오토와 음성인식 누구 오토를 쓸 수 있다. 볼보가 국내에 처음으로 적용해 차별화한 가치로 내세운 그 프로그램이다. 디스플레이의 터치 반응 속도나 폰트 역시 깔끔하다. 진보한 인포테인먼트를 지향하고, 그 노력이 전해진다. 그 외에 인테리어 요소 질감에도 신경 썼다. 버튼 플라스틱 재질을 가공하고, 눌리는 감각도 탄성이 좋다. 스티어링휠이나 기어 노브를 감싼 가죽 질감도 부드럽다. 특히 도어 트림에 적용한 스웨이드 질감은 대중 브랜드 이상의 만족감을 전한다. 물론 상위 트림인 에스프리 알핀에 한해서 그렇겠지만.
액티언도 예전 쌍용을 지워버린다. 계기반과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를 연결해 거대한 디스플레이를 얹었다. 덕분에 간결하고 쓸 수 있는 공간이 많다. 기어 노브도 앙증맞게 처리해 쾌적한 공간성을 강조했다. 거기에 고급스럽게 보이는 요소도 적용하려고 고심했다. 간결한 도어 트림에 무광 골드 가니시로 멋을 내고, 투톤으로 공간을 나눠 화사하다. 전반적으로 요즘 흐름을 충실히 좇으려고 노력했다.
둘 다 인테리어에 공들인 티가 난다. 둘의 차이는 세부적인 완성도에서 갈린다. 그랑 콜레오스가 소재 질감이나 배치, 전반적인 구성에서 빈틈이 적다. 액티언은 분명 첫인상은 화사한데, 꼼꼼하게 보면 빈틈이 눈에 띈다. 크고 투박한 스티어링휠이 전체 인테리어에서 겉돈다든가. 디스플레이 터치 반응성이 깔끔하지 않다든가. 플라스틱 소재에 공을 덜 들였다든가. 이해할 수 있다. 액티언은 가격대가 더 낮다. 접근성이 더 좋은 걸 감안해야 한다. 그럴 때 액티언의 인테리어는 호감도가 더 높아진다.
탄탄함과 느긋함 사이
그랑 콜레오스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다. 1.5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에 전기모터 두 개를 더했다. 합산 최고출력은 245마력. 동급 하이브리드 최고출력이라고 강조한다. 출력의 아쉬움은 전혀 없다. 급가속하지 않고 지그시 가속페달을 밟아도 굼뜬 기색이 없다. 속도를 올려붙일 때도 꾸준히 이어간다. 일상에서 풍족하다고 느낄 출력이다. 자랑할 만하다. 출력보다 더 인상적인 건 정숙성이다. 시동 걸 때나 출발할 때 전기모터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처음 시동 걸었을 때 고요해서 시동이 안 걸린 줄 알았을 정도다. 덕분에 조용하고 민첩하게 첫발을 뗀다. 저속에서 전기 모드 사용 빈도도 높다. 평상시 주행할 때도 엔진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지 않는 이상 엔진음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도 힘들다. 정숙하고 알뜰하다는 뜻이다. 하이브리드는 다들 조용하지만, 그랑 콜레오스는 그 수준 이상으로 정숙성을 구현한다. 패밀리 카에서 정숙성은 출력 이상의 가치가 있다.반면 하체는 꽤 조여놓았다. 잘 닦인 길에서 속도를 높일 때 탄탄한 주행 감각을 드러낸다. 노면 상태를 뭉개지 않고 운전자에게 전하는 성향도 좋다. 하지만 울퉁불퉁한 길이나 규칙적인 요철을 만나면 한계를 드러낸다. 단발적인 충격은 짧게 전하고 상쇄하는 데 반해 충격이 규칙적으로 이어지면 소화하지 못하고 뱉어낸다. 하체 감각이 선명하달까.
액티언은 1.5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으로 움직인다. 이 큰 차를 1.5리터가 감당할 수 있으려나. 이런 우려는 금세 사라진다. 엔진 다운사이징 기술은 그동안 일취월장했다. 운전 성향이 부드럽다면 만족할 만한 적당한 출력이다.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28.6kg·m. 숫자로 봐도 준수한 출력이다. 오히려 초반에는 숫자 이상으로 민첩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속도는 꾸준히 올려붙이지만, 갑자기 힘이 필요할 때 굼뜬 모습을 보인다. 실내에 엔진음도 꽤 적나라하게 들어온다. 치솟는 엔진음에 비해 가속이 더딘 느낌도 든다. 그 부조화. 하지만 괜찮다. 패밀리 카는 기본적으로 부드럽게 운전하잖나. 부조화를 느낄 정도로 밀어붙이는 상황과 맞닥뜨릴 일이 적다. 그럼에도 실내에 들리는 엔진음이 대체로 크다. 진동도 약간 있다. 이런 점이 정통 SUV다운 맛이라고 느낄 수도 있으려나.
하체는 예전 SUV 느낌이 짙다. 기본적으로 부드럽다. 특히 움직일 때 차체 바운스가 넘실거린다. 롤링이나 피칭보다 바운스. 이게 불쾌하다기보다 예전 SUV의 너른 품이 떠오른다. 요즘 SUV는 이런저런 움직임을 다잡으려고 노력한다. 도심형 SUV가 기준이 됐다. 액티언은 쿠페형이라 외모는 도회적이지만, 움직임은 오프로드를 고려한 느긋함이 있다. 정통 SUV답다고 좋아할 사람, 분명 있다.
가격과 성격 차이
그랑 콜레오스는 3495만원부터 시작한다. 액티언의 시작가는 더 낮은 3395만원. 둘의 차이는 100만원이지만, 그것만 볼 순 없다. 상위 트림 가격대를 보면 그랑 콜레오스가 훨씬 높다. 옵션까지 얹으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액티언은 다 해도 4000만원을 넘지 않지만, 그랑 콜레오스는 4500만원 이상이다. 그런 점에서 그랑 콜레오스와 액티언은 온전한 일대일 비교가 힘들다. 아무래도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첨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더한 만큼 그랑 콜레오스 가격대가 높다. 중요한 건 둘의 정확한 비교가 아니다. 두 차종이 패밀리 카를 선택할 다양한 가격대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아래쪽으로. 취향에 따라, 상황에 따라 선택할 여지가 생긴다. 더 많은 사람에게 패밀리 카의 넉넉함을 전파할 영향력을 발휘한다.그래도 비교했으니 결론이 필요하다. 그랑 콜레오스는 신차다운 요소를 적극 강조한다. 디지털 기술도 적극 도입했다. 패밀리 카 중에 가장 젊은 느낌이다. 그러면서 가격 경쟁력도 있다. 액티언보다 가격이 높지만, 싼타페나 쏘렌토보다 낮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나 실내 구성 고려하면 이득 본 기분이다. 알찬 구성과 보다 낮은 가격으로 난공불락 성을 공격한다. 액티언은 일단 접근성이 가장 좋다. 오직 접근성 하나만으로 강력한 무기를 품었다. 그렇다고 구성이 부족하지도 않다. 있을 건 다 있고, 신경 쓸 건 다 신경 썼다. 한 세대 전 모델처럼 오래된 느낌도 아니다. 토레스에서 이어온 각을 살린 SUV의 감흥도 여전하다. 외모는 더 다듬었고, 쿠페형으로 멋도 부렸다. 무엇보다 정통 SUV다운 움직임을 고수한다. 누군가에겐 예전 SUV처럼 낯설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움직임이다. 접근성과 더불어 성격도 분명하다. 싸서 사기보다 좋아서 살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건 비교가 아니다.
두 차종이 패밀리 카를 선택할 다양한 가격대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2024년 11월호
Editor : 김종훈 | Photographer :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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