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해방촌 오거리에 등장해 1년간 실험적 전시를 선보이던 상히읗은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후 지난 여름 새 출발을 알렸다. 대표 지혜진은 그때나 지금이나 전시의 당위성을 묻는 질문 앞에 반복적으로 멈춰선다.
상히읗의 전신은 3년 전 큐레이터 컬렉티브로 시작한 동명의 프로젝트였다. 모두 이름에 ‘ㅎ’이 들어가고, 소위 말하는 메가 갤러리에서 일하고 있고, 전시 기획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는 친구들과 시작한 일이었다. 딱 1년만 공간을 빌려 우리가 하고 싶은 전시를 해보기로 하고 덜컥 건물부터 계약한 것이다. 그렇게 공간을 얻게 된 1년 동안 주변 눈치 보지 않고 퍼포먼스, 스크리닝, 오픈콜 전시 등 그야말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했다.
그때와 지금, 어떤 점이 다른가? 지금은 혼자 운영하고 있다는 점만 달라졌을 뿐 방향은 같다. 석사 때 전시사(Exhibition Histories)를 공부하며 전시로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포괄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때의 배움이 지금 상히읗을 운영하는 기조 같은 것이 되었다. 왜 지금 이 작가의 전시를 열어야 하는지, 대중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와 같은 물음들은 2021년부터 지금까지 상히읗의 모든 프로그램을 관통한다.
국제갤러리와 타데우스 로팍 같은 갤러리에서 일해본 경험이 지금 상히읗을 운영하는 데는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작가와의 협업 과정이나 갤러리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지만 덩치가 큰 만큼 유연하고 빠른 판단은 어려운 환경이었다. 작가와 직접 소통하며 일하거나 내가 원하는 기획을 구현해보기에는 제약이 많았던 것이다. 상히읗이 규모는 훨씬 작지만 내가 좋다고 믿는 예술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어 좋다.
갤러리스트로서 자신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갤러리로 출근할 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친화력 좋고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지혜진 그대로 일한다는 뜻인데, 갤러리스트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분명한 강점이 되더라. 이상적인 갤러리스트는 관람객을 고객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큐레이터가 관람객에게 작가를 소개하는 역할이라면, 갤러리스트는 더 나아가 설득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설득을 통해 누군가 나를 믿고 작품을 구매했을 때. 그 짜릿함이 이 일을 계속하고 싶게 만든다.
작가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점은 무엇인가? 단순히 하나의 작품이 좋아서 같이 전시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전시는 결국 아카이빙되어 남기 때문에 당장은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상히읗의 기록으로 남았을 때 의미가 있을지를 보는 편이다.
갤러리스트에게 안목과 직감만큼이나 중요한 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자신의 감각에 다시금 확신을 얻게 된 순간이 있다면. 최근 도쿄의 캄앤펑크 갤러리와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같은 시기에 상히읗이 선정한 한국 작가를 캄앤펑크에서, 반대로 캄앤펑크에서 선정한 일본 작가를 상히읗에서 전시한 것이다. 미술이 전달하는 정서 혹은 메시지는 언어와 문화, 국경을 뛰어넘는 것임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 기획이었다. 예술을 매개로 한다면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공감과 이해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고영진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또래 갤러리스트들을 만난 뒤 실린더, 상히읗, 샤워, 오브의 10년 뒤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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