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소설 왕자의난29] 왕자구의 '구질구질한 대북사업'에 왕회장은 불만

[다큐소설 왕자의난29] 왕자구의 '구질구질한 대북사업'에 왕회장은 불만

헤럴드포스트 2024-11-07 04: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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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패러디 삽화=최로엡

 

 동생인 왕자헌 회장의 첫 승리

 왕자들인 두 형제 회장은 서로 대북사업 접근 방법부터 달랐다.

형인 왕자구 회장 측은 차식정 전무를 앞세워 화차 임가공 사업을 추진했다. 반면 동생인 왕자헌 회장 측은 간신치 회장을 앞세워 금강산 관광 사업을 추진했다. 두 형제 회장 간 전초전은 ‘화차 임가공 사업 vs 금강산 관광 사업’의 경쟁 구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대북사업은 왕자구 회장이 선점했다. 그는 아버지가 흐뭇해할 만한 성과도 올렸다. 북한 측과 빠르게 사업을 진척시켰다. 차식정 전무는 처음에 조선족 등을 통해 북한 측과 접촉했다. 그는 1997년 북한을 방문해 화차 임가공 및 북한 내 컨테이너 독점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또 선박 수리사업 및 고선박 해체사업 의향서도 체결했다. 이에 앞서 그는 1996년 7월 30일에도 이도용 전무 (휸다이정공)와 함께 북한을 방문해 사전협의를 했다.

 이런 행보를 보면 왕자구 회장이 얼마나 대북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차식정 전무는 김일영 사장과 달리 이른바 ‘왕당파’ 가 아니었 다. 왕자구 회장 쪽 사람이었다. 따라서 대북사업을 추진할 때 그는 왕자구 회장에게만 직보했다. 김일영 사장이 왕회장에게 먼저 보고한 것과 달랐다.

 그런데 왕회장은 왕자구 회장 쪽의 성공적인 대북사업 추진에 아무 말이 없었다. 추진상황을 보고만 받고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 실제로 왕자구 회장 측은 북한에서 철도차량 4대를 임가공해 들여왔었다.

 이와관련 차후 휸다이그룹 대북 송금과 비자금 사건 검찰 조사에서 간신치 회장의 증언이다.

 “왕회장님의 첫 방북(1989년)을 시작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했으나 보잘 것 없이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왕자구 회장 측에서 차식정 전무를 앞세워 겨우 화차 임가공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를 불만스럽게 생각한 왕회장님이 1998년 초에 이르러 왕자헌 회장에게 대북사업을 맡기게 됐다.”

 여기에서 간신치 회장의 말을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왕자구 회장 측에서 …… 겨우 화차 임가공사업을 …… 이를 불만스럽게 생각한 왕회장님이 …… 왕자헌 회장에게 대북사업을 맡기게 됐다.”

 왕자헌 회장 측이 형인 왕자구 회장 측의 대북사업 성과를 폄하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왕회장은 이 때부터 왕자헌 회장과 간신치 회장의 말만 듣고 전적으로 신뢰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왕회장의 마음이 변한 시점으로 사실상 휸다이그룹 후계구도가 바뀐 분수령이 됐던 것이다. 

[다큐소설 왕자의난30]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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