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 4 필리그리 기법을 활용한 돌체앤가바나 2024 하이 주얼리 컬렉션. 2 쇼파드 금세공 아틀리에의 용융 작업. 5 리가토 공법으로 인그레이빙한 부첼라티 마크리 컬렉션 뱅글. 6 부첼라티 메종의 워크숍. 7 기요셰 에나멜 기법으로 완성한 파베르제 이어링. 8 수백 개의 골드 비즈가 반짝이는 반클리프 아펠 뻬를리 컬렉션 뱅글.
젬스톤의 희소성이나 캐럿, 전체적인 디자인과 세팅 방식 혹은 금의 중량까지 주얼리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은 다양하다. 브랜드마다 추구하는 스타일은 다르겠지만, 주얼러의 예술성과 장인 정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정교한 세공 기술을 언급하는 데 이견은 없을 듯하다. 섬세하게 조각하고 연마하고 직조한 골드는 화려한 유색석이나 빛나는 다이아몬드 없이도 충분히 장식적이고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젬스톤을 고정하기 위한 부재료가 아닌, 그 자체로 얼마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매끈하게 폴리싱했을 때 드러나는 골드의 광택도 매력적이지만 어떠한 세공 기술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특히 금의 무른 물성을 이용한 인그레이빙 기법은 표면에 독특한 텍스처와 패턴을 가미해 주얼리에 개성을 더한다. ‘금세공의 왕자’로 불리는 부첼라티는 다양한 인그레이빙 기술을 적용한 주얼리를 선보인다. 대표적인 기법은 마크리 컬렉션에서 확인할 수 있는 ‘리가토(Rigato)’ 기법. 여러 개의 가느다란 평행선을 반복적으로 새겨 실크를 연상시키는 텍스처를 완성한다. 1930년대부터 사용해온 ‘세그리나토(Segrinato)’ 기법도 주목할 만하다. ‘뷰린’이라는 공구를 이용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선이 촘촘하게 교차·중첩되도록 조각하는 방법으로, 마치 벨벳처럼 부드러운 광채를 만들어낸다. 주얼리의 테두리에는 조각하듯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모델라토(Modellato)’ 인그레이빙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9, 10 수작업으로 꼬고 이어 붙여 완성한 골드 체인이 돋보이는 피아제 소뜨와 워치. 11 세그리나토 인그레이빙 기법을 적용한 부첼라티 하이 주얼리 뱅글. 12 팰리스 데코 기법이 돋보이는 피아제 하이 주얼리 워치.
기요셰 패턴 역시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는 금세공 기법 중 하나다. 방사형 패턴을 새겨 햇살이 퍼지는 듯한 효과를 주는 등 반복적인 패턴을 통해 표면을 조각하는 기술로 반클리프 아펠 알함브라 컬렉션의 클로버 모티프나 파베르제의 에그 모티프 주얼리 등은 물론 시계 다이얼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피아제는 기요셰 기법에서 영감을 받아 1960년대에 ‘데코 팰리스(De´cor Palace)’ 기법을 선보였는데, 주로 시계의 브레이슬릿을 장식하는 데 사용된다. 조각칼의 날카로운 끝으로 표면에 깊이와 두께가 조금씩 다른 흠을 내 표현하는데, 각각의 장인이 자신만의 기술을 사용해 매번 다른 압력과 각도로 작업하기 때문에 완성된 데코 팰리스 장식은 저마다 고유한 매력을 지닌다. 이러한 인그레이빙은 효과는 쇼파드 디아망트 컬렉션 워치의 브레이슬릿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브레이슬릿 표면에 한땀한땀 새긴 장식적인 디테일이 주얼 워치의 화려함을 더욱 강조한다. 오데마 피게가 로열 오크 컬렉션에 사용하는 ‘프로스티드 골드’도 비슷한 예. 피렌체에서 기원한 오래된 주얼리 기술에서 영감 받은 정밀한 ‘해머’ 마감 기법으로 표면을 가공해 금 표면에 반짝이는 효과를 더했다. 프로스티드 골드는 유광 혹은 새틴 마감 처리한 표면의 질감과 대비를 이루며 독특한 미감을 완성한다.
가느다란 골드 체인을 만드는 데도 장인의 수많은 노하우와 정성이 들어간다. 금을 미세한 실처럼 뽑은 후 감아 만든 코일을 다시 한 줄 한 줄 정교하게 비틀거나 코일을 여러 개 겹쳐 꼬아서 완성한다. 트위스트 골드, 트위스티드 스레드 등 부르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통적 주얼러들은 이러한 오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돌체앤가바나는 올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금실 뽑기와 엮는 기술의 결정체인 ‘필리그리(Filigree)’ 기법으로 채웠다. 필리그리는 귀금속을 마치 천처럼 엮었다는 고대 신화 속 요정 자나스(Janas)로부터 전해오는 보석 제작 방식으로, 완전히 수작업으로만 이루어진다. 극도로 섬세한 세공 기술과 꽃 모티프, 그레인, 진귀한 보석 등의 장식 요소가 어우러져 전례 없이 화려한 컬렉션이 탄생한 것.
물론 이외에도 반복적으로 구멍을 뚫어 튈 같은 섬세한 표면을 연출하거나, 작은 골드 비즈를 촘촘히 나열해 보석 같은 반짝임을 더하거나, 아주 작은 유닛을 하나하나 직조하듯 엮어 메시처럼 표현하는 등 주얼리나 시계에 적용하는 금세공 방법은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런 디테일을 조금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본다면, 주얼리를 소장하는 기쁨이 한층 배가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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