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 호텔에 방문하면 종종 로비에 분위기를 주도하는 예술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정 작품이 아니라 아예 갤러리가 호텔 안에 있다면 어떨까? 조현화랑은 지난 5월, 예술과 대중 간의 소통을 촉진하고자 전통과 문화적 상징성을 가진 서울신라호텔에 조현화랑 서울을 열었다. 갤러리는 호텔 지하 1층 아케이드에 위치하고 있다. 조현화랑 관계자는 “외형적으로 큰 공간은 아니지만 도심 안에 위치해 관람객과 직접 소통을 하는, 적극적이며 확장성을 가진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이곳에서는 이배의 개인전 «Between»이 11월 10일까지 진행된다. 전시장 내부는 커다란 조각 두 개가 가득 채우고 있는데 각각 검은색과 흰색으로 제작된 높이 2m, 폭 2m70cm의 브론즈 조각이다. 이들은 갤러리 내부의 한쪽 벽면을 차지한 회화작품(〈붓질〉 시리즈)의 흑색 및 여백과 함께 밀도 높은 공간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기념비적인 규모의 설치작품이 바깥의 에너지를 내부로 끌어들이는 느낌이다. 원심력보다는 구심력이 작동하는 공간에 서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30년이 넘도록 숯의 표현 가능성을 탐구하며 동양의 수묵 정신을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여온 이배 작가는 현대미술은 태도나 과정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즉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태도가 필요한 붓질 작업은 과정의 산물이다. 노란빛의 전시장 창문에는 묘한 정서가 깃들어 있는데, 작가의 고향 청도에서 매년 정월대보름에 열리는 달집태우기의 달빛을 재현했다. 신라호텔 로비에서도 이배 작가의 2023년 〈붓질〉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먼저 로비에서 숯가루가 섞인 먹물로 그린 작품을 볼 것을 권한다. 아케이드에는 명품 브랜드 매장 사이에 조현화랑의 작품이 띄엄띄엄 설치되어 있다. 조현화랑이 개인전을 선보였던 키시오 스가, 클로드 비알라 등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근대미술의 요람으로 불리는 도시 대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갤러리가 있다. 리안갤러리는 컬렉터 출신 안혜령 대표가 2007년 대구, 2013년 서울 지점을 오픈한 이래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충실히 소개해왔다. 작년 가을에는 변화와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새로운 전진을 위해 대구와 서울, 두 갤러리 공간을 확장했다. 대구는 기존 건물 뒤편에 지상 4층 규모로 알루미늄 패널이 돋보이는 신관을 세웠다. 반면 창성동에 자리한 서울 지점은 리모델링을 거친 후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강소의 조각전을 증축 개관전으로 개최했다. 리안갤러리는 관람객에게 전시를 소개하는 역할을 넘어 다음 세대에게 예술을 향유하고 미술품을 소장하는 문화를 권유하는 종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자 한다. 현재 리안갤러리 서울에서는 김택상의 개인전 «Time Odyssey»가 10월 19일까지 진행된다. 작가는 단색화가들의 전통적인 기법을 계승하는 동시에 탐구자적 자세로 신작 〈플로우〉 시리즈를 내놓았다. 단색을 초월해 빛을 발현시키는 작업에 도달하고 있다. 우주의 오로라를 작품으로 포착한 듯 강렬한 이미지를 품은 캔버스에 몰입하게 만든다. 대형 작품이 전시된 1층을 지나면 색과 빛의 향연이 빚어낸 소우주가 어두운 지하 공간으로 이어진다. 마크 로스코의 숭고 미학이나 제임스 터렐이 빛과 공간을 탐구하는 작업을 떠올리게 하는 김택상의 예술 여정 역시 내면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감각의 여정이다. 무엇보다 본다는 것이 얼마나 감각적인 행위인지 새삼 깨닫게 만든다. 갤러리 전체를 관통하는 오디세이 이후에는 10월 29일부터 12월 20일까지 김춘수 작가의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김춘수는 붓이 아니라 손으로 그리는 청색의 단색화를 통해 깊은 심연을 창조하는 후기 단색화의 대표 작가이자 리안갤러리의 전속 작가다.
2012년 대구에서 개관한 우손갤러리가 10여 년의 관록을 밑거름 삼아 2024년 11월, 서울 성북동에서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고즈넉한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하듯 붉은 벽돌의 외벽을 지닌 우손갤러리 서울은 두 층으로 나뉜 구조에 로프트 형식의 내부 공간이 독특한 모양새다. 김은아 대표는 이번 확장을 이렇게 말했다. “서울 확장은 대구를 중심으로 지역 예술 커뮤니티와의 연결을 돈독히 하는 것과 더불어 물리적인 전시 공간을 좀 더 보유해 많은 작가를 동시에 선보이기 위함이었죠. 다채로운 복합 전시 프로그램을 제공함은 물론이고, ‘마스터’와 ‘이머징’이란 두 가지의 키워드를 가진 갤러리답게 국내와 세계 전역의 저명한 작가뿐만 아니라 신진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데 전념할 겁니다.” 더불어 “한국의 아트 시장이 글로벌로 성장해가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감추지 않았다. 우손갤러리 서울은 개관전으로 생명체의 유기적 형태에 천착해온 친환경적인 작가를 선택했다. 2023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개인전 «The Valley»로 화제를 모았던 프랑스 현대미술가 파브리스 이베르의 회화 및 설치 작업을 다채롭게 준비 중이다. 국내에서 첫선을 보이는 이베르의 개인전 «Life Goes On»은 서울과 대구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서울에서는 ‘Energy’, 대구에서는 ‘Imaginary’ 두 가지 주제로 두 공간에서 각각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작가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동시에 조망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업한 신작 30여 점을 포함해 5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할 예정. 자연과 인간이 하나된 모습을 인상적으로 제시하는 이베르의 예술관을 볼 수 있는 전시는 11월 28일부터 만나볼 수 있다.
전종혁은 프리랜스 에디터다. 청량한 가을을 벗삼아 서울 곳곳으로 전시 나들이를 떠났다. 느긋한 마음과 지칠 줄 모르는 발걸음, 기후동행카드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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