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7개월 만에 오재원 그림자서 벗어났지만 큰 상처 남아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가 약 7개월 만에 '오재원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상처는 깊다.
두산은 2024년 KBO리그 정규시즌을 4위로 마친 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t wiz에 패해 쓸쓸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두산이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표를 받은 가장 큰 원인은 합쳐서 13승에 그친 외국인 투수들의 집단 부진이었다.
좀 더 들여다보면 '오재원 사태'도 두산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KBO는 4일 상벌위원회를 열고 향정신성 약물을 대리 처방 받아 오재원에게 전달한 김민혁, 김인태, 박계범, 박지훈, 안승한, 이승진, 장승현, 제환유 등 두산 선수 8명에게 사회봉사 80시간 처분을 내렸다.
상벌위 결과는 5일에 공개됐다.
전 두산 선수 오재원은 필로폰 등 마약을 상습 투약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2021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86회에 걸쳐 전현직 야구선수 등 14명에게 의료용 마약류인 스틸녹스와 자낙스 2천365정을 처방받게 한 뒤 수수한 혐의도 밝혀졌다.
검찰은 오재원이 야구계 선배의 지위를 이용해 20대 초중반의 어린 후배나 1∼2군을 오가는 선수 등 팀 내에서 입지가 불안정한 선수에게 수면제를 처방받아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파악했다.
일부 후배들에게 욕설과 협박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두산 구단은 오재원 문제가 불거진 3월 말께 자체 조사를 진행해 관련 사실을 파악했으며 '소속 선수 8명이 수면제를 대리 처방받아 오재원에게 건넨 사실'을 4월 초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신고했다.
오재원의 대리처방 문제는 상습 마약 투약 혐의, 필로폰 수수에 이어 세 번째로 기소된 '범죄'였다.
대리처방 기소가 다른 범죄보다 늦어지면서, KBO와 두산도 대리처방에 연루된 선수들의 징계 수위를 정하지 못했다.
두산은 경찰 조사를 받은 선수들을 경기에 투입했다가 쏟아질 비판을 우려해 5월 1일 이후에는 대리처방에 연루된 선수 8명을 모두 1군과 2군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다.
8명 중에는 외야수 김인태, 포수 장승현과 안승한, 내야수 박계범, 우타 대타 자원 김민혁 등 1군에서 힘을 보탤만한 선수가 절반 이상이었다.
박계범(24경기), 김인태(10경기), 장승현(9경기), 김민혁(5경기), 안승한(4경기) 등은 시즌 초에만 1군에서 잠시 뛰었다.
이들을 활용하지 못하면서 두산의 야수 전력층이 크게 얇아졌다.
2007년 두산에 입단한 오재원은 2022년까지 16시즌 동안 한 팀에서만 뛰며 1군 1천570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7, 64홈런, 521타점, 678득점, 289도루를 올렸다.
두산이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시즌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3번 우승(2015, 2016, 2019년)하는 동안 오재원은 핵심 내야수로 뛰었다.
2015년과 2019년에는 '우승 완장'을 차고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기록상으로 아주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두산 구단은 '원클럽맨' 오재원을 위해 2022년 10월 8일 성대한 은퇴식을 열었다.
현역 시절, 다소 과격한 행동으로 다른 구단 선수와 충돌한 적이 있는 오재원은 은퇴 후에는 부적절한 언행으로 더 자주 구설에 올랐다.
은퇴 뒤에 입방아에 오른 오재원을 두산 구단은 '이미 팀을 떠난 은퇴 선수'라고 거리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오재원이 은퇴하기 전에 후배들을 강요해 대리 처방을 받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두산 구단은 팀 운영의 치명타를 맞았다.
2024년 두산 성적에도 오재원은 악영향을 끼쳤다.
KBO는 "선수들이 선배 선수의 강압과 협박에 의한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 구단의 조치로 시즌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점,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수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출장 정지가 아닌 사회봉사 제재를 결정했다.
하지만, 7개월 동안 오재원에게 시달린 두산 선수들, 더 오랜 시간 오재원의 협박에 떨어야 했던 후배들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독버섯' 오재원을 선수단과 분리하지 못한 두산 구단도 올해 아픈 대가를 치렀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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