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1억 부 팔린 만화책.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애니메이션. <주술회전>은 어떻게 2020년대 최고의 만화가 되었을까? <주술회전> 마지막 완결 단행본 발행을 앞두고, 편집자들과 독자를 찾아가 <주술회전>의 특별함에 대해 들었다.
“고죠 사토루는 평소에 안대를 한단 말입니다. 그 안에 보석 같은 눈망울이 있어요. 잘생겼죠.성격도 좋고요. 심지어 목소리까지 좋습니다.지금 만화 시장에서 고죠 사토루만 한 스타는 없어요.”
“<주술회전>에는 아주 특별한 무기가 있죠. 어떤 만화에서도 볼 수 없는 무기. 고죠 사토루.” 사진가 정승훈은 스스로 ‘심연의 오타쿠’라고 소개했다. 올해 불혹의 나이가 된 그는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만화를 놓은 적이 없다고 했다. <드래곤볼> <란마 1/2> <쿵후보이 친미>로 만화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고, 지금은 매주 한국과 일본에서 나오는 만화들을 실시간으로 챙겨 본다. 그는 넷플릭스 구독료보다 웹툰 구독과 만화책 구입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쓴다. 그런 정승훈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하나다. <주술회전>은 왜 인기일까? <주술회전>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평생 만화를 본 남자라면 내가 듣고 싶었던 답변을 들려줄 것 같았다.
“저는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 경우예요. <주술회전> 애니메이션이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던 무렵이었죠. 마지막 화 엔딩곡이 나오자마자 곧장 서점으로 갔습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했거든요.” <주술회전> 한국판 만화책은 서울미디어코믹스가 제작한다. 2018년 서울미디어코믹스는 일본 집영사와 <주술회전> 판권을 계약했다. 일반적으로 일본 출판사와의 판권 계약은 단행본 2권이 나왔을 때쯤 진행된다. 어찌 보면 도박인 셈이다. 일본에서 1위 하는 작품도 한국 독자에게 외면받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술회전>은 처음부터 인기를 끈 작품이 아니었고, 아쿠타미 게게의 첫 장편 연재작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울미디어코믹스는 신인 작가의 가능성을 보고 한국에 <주술회전>을 소개하기로 했다. 그렇게 단행본 10권이 나올 무렵, <주술회전> 애니메이션 1기가 방영됐다. 2020년 10월의 일이다.
잘되는 만화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스토리부터 작화, 굿즈, 대사, 연출, 결말까지. 하지만 정승훈은 <주술회전>의 성공 요인을 꼭 집어 ‘고죠 사토루’라고 말했다. 고죠 사토루는 누구인가. <주술회전>은 도쿄 도립 주술 고등전문학교에 갓 입학한 주인공 3인방이 주술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장기다. 고죠 사토루는 주인공 3인방의 1학년 담임 선생님이자, 세계관 최강의 실력자로 등장한다. “갭모에라고 하죠.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던 반전 매력으로 사람을 매혹시키는. 고죠 사토루는 평소에 안대를 한단 말입니다. 그 안에 보석 같은 눈망울이 있어요. 잘생겼죠. 성격도 좋고요. 심지어 목소리까지 좋습니다. 지금 만화 시장에서 고죠 사토루만 한 스타는 없어요. 고죠 사토루 팬이 생기면서 <주술회전> 팬도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21세기 연재를 시작한 작품 중 ‘ 1억 부 클럽’에 가입한 일본 만화는 단 여섯 작품뿐이다.그중 다섯 작품이 집영사를 통해 공개됐다.”
10,000,000부 클럽
업계의 시선으로 바라본 <주술회전> 평가는 어떨까? 현역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미디어코믹스를 찾았다. 글로벌콘텐츠팀 조미연 파트장은 현재 <주술회전> 한국판 제작을 맡고 있다. 그는 <주술회전>의 출판 업계 내 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서점 종합 베스트 1위 할 수 있는 작품. 보통 이렇게들 말하죠. 만화책 중에서도 종합 베스트에 올라가는 인기작은 많아요. 하지만 1위를 하는 작품은 아주 드뭅니다.” <주술회전>은 현시점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 김난도의 <트렌드 코리아>와 경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만화책인 셈이다.조미연 파트장을 만나기 일주일 전인 9월 30일. 일본 집영사는 <주간 소년 점프>를 통해 <주술회전> 마지막 화를 공개했다. 2018년부터 이어온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이로써 <주술회전>은 누적 판매량(전자판 포함) 1억 부를 돌파했다. 21세기 연재를 시작한 작품 중 ‘1억 부 클럽’에 가입한 일본 만화는 단 여섯 작품뿐이다. 그중 다섯 작품이 집영사를 통해 공개됐다. 그리고 그 다섯 작품 중 가장 최근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 <주술회전>이다. <주술회전>은 서점 밖에서도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올해 초 기네스 세계 기록은 ‘2023년 가장 수요가 많은 애니메이션 TV 쇼’로 <주술회전>을 선정했다. 2020년부터 3년 연속 해당 부문 1위를 차지한 <진격의 거인>을 제치고 달성한 기록이다.
조미연 파트장에게 물었다. ‘포스트 <주술회전>’이 될 작품이 있습니까? 인터뷰 내내 심사숙고하던 그였지만, 이 질문에는 단호하게 답했다. “없어요.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 같네요. 선뜻 ‘<주술회전> 좋아하면 이 작품도 좋아할 거야’ 하고 소개할 수 있는 만화가 없어요. 유일한 만화라는 뜻이죠.” 열혈 독자 정승훈의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주술회전>은 기본적으로 소년 만화예요. 성장과 시련, 고통과 극복, 도전과 열혈,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런데 막상 ‘장르가 뭘까?’ 생각해보면 복잡해집니다. 소년, 액션, 퇴마, 판타지, 학원 배틀, 능력자 배틀이 죄다 섞여 있거든요. 그 자체로 장르가 된 겁니다.”
만화책을 보는 즐거움 중에는 만화책 컬렉션을 만들어가는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 발행된 <주술회전>은 <주술회전 0(외전): 눈부신 어둠>부터 < 주술회전 27: 바보 서바이버!!>까지 총 28권이다. 조미연 파트장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권이 있냐고 물었다. “가장 잘 팔리는 건 4권이에요. 커버 주인공이 고죠 사토루니까요. 저는 9권부터 16권까지를 좋아합니다. ‘회옥-옥절-시부야 사변’으로 이어지는 애니메이션 2기에 해당하는 내용인데요.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예요. 본격적으로 작화와 스토리가 아주 깊이 들어가는 구간입니다.” 일본 현지에서 최신판은 지난 10월 4일 출판된 28권이다. 보통 일본에서 단행본이 나오면 국내 서점에 판매되기까지는 최소 두 달이 걸린다.
“<주술회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나갑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죽어요.그중 메카마루의 마지막 시퀀스는 가장 ‘소년 만화다운’ 죽음이었어요.”
좋은 죽음이었다
<주술회전> 28권이 일본에서 발매되던 날. 서울문화사 지하 강당에서는 한 중년 남자가 마이크를 잡고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단정한 용모와 헤어스타일을 한 채 사각 뿔테 안경을 걸치고 있었다. 여기에 단호하면서도 정확한 말씨까지. 직장인 만화에서 볼 법한 모습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헤이시 요시히사. 만화팬이라면 귀에 익숙할 이름이다. 만화 <바쿠만>에 나왔던 그 헤이시 요시히사다. <바쿠만>은 두 주인공 소년이 만화 업계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국내에서는 <데스노트>로 유명한 오바 츠구미(스토리), 오바타 타케시(작화)의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헤이시 요시히사는 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제 집영사에 입사해 <주간 소년 점프> <소년 점프플러스> 편집장을 거쳐 현재 상무로 재직 중이다.헤이시 요시히사 상무의 강연은 질의응답으로 마무리됐다. 어김없이 고죠 사토루의 죽음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캐릭터의 죽음은 작품 속에서 아주 강력한 효과를 지닌다. 하지만 고죠 사토루의 죽음은 꼭 필요했을까? 작가는 처음부터 고죠 사토루의 죽음을 염두에 뒀을까? 헤이시 상무가 답했다. “작가님께 직접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도 미리 정해두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독자들의 의견도 고려하셨을 테고요. 작가마다 다르지만, 처음부터 분명하게 캐릭터의 죽음을 생각하고 설정하는 분들이 계세요. 편집자가 작가에게 ‘이 캐릭터는 좀 더 멋지게 극적으로 죽는 게 좋지 않아요?’ 하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주술회전> 팬들 사이에서 고죠 사토루의 죽음에 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아쿠타미 게게 작가가 특정 캐릭터를 죽인 것을 후회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금자탑처럼 쌓아온 캐릭터를 한순간에 죽여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주술회전>은 캐릭터가 지닌 개성과 힘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작품이다. <주술회전>에서는 조연 캐릭터라 할지라도 저마다 품고 있는 트라우마와 사연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만큼 작품 분위기가 어두워질 수는 있지만, 독자들이 각 캐릭터에 몰입하고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더한다.
인기 만화가 되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인기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아질수록 독자에게는 그 만화를 볼 이유가 늘어나니까. 앞서 인터뷰를 나눴던 정승훈은 내내 고죠 사토루를 언급했지만, 정작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다른 이름을 꼽았다. “두 명이 생각나네요. 얼티밋 메카마루와 나나미 켄토. 메카마루는 <주술회전>에서 유일하게 소년 만화의 클리셰를 보여준 캐릭터예요. 사랑을 고백하거든요. <주술회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나갑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죽어요. 그중 메카마루의 마지막 시퀀스는 가장 ‘소년 만화다운’ 죽음이었어요. 클리셰여서 좋았습니다. 나나미 켄토도 만화답게 죽었죠. 고죠 사토루의 죽음이 주인공들의 성장에 발판이 되었느냐? 그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나미 켄토는 불씨를 남긴 남자였습니다.”
이번 기사를 쓰며 <주술회전>을 읽는 내내 헤이시 요시히사 상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맴돌았다. “일본에서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우정’ ‘노력’ ‘승리’.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주간 소년 점프>의 슬로건이라는 거죠.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독자들이 보고 싶은 만화를 만드는 겁니다. 독자 앙케트를 진행하는 이유죠. 독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만화를 만들다 보니 ‘우정’ ‘노력’ ‘승리’ 세 가지가 남게 된 겁니다.” <주술회전> 단행본은 30권으로 마무리된다. 오는 12월 25일 일본에서 마지막 29권과 30권이 동시 발매될 예정이다. <주술회전>이 연재되는 지난 6년 동안 고죠 사토루를 비롯한 수많은 주술사들이 죽음을 맞았다. 아직 결말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길 바란다. 모두 좋은 죽음이었다고.
2024년 11월호
Editor : 주현욱 | Photographer : 신동훈
<저작권자(c) (주)서울문화사, 출처: 아레나 옴므 플러스> (주)서울문화사 무단 전재·복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