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관념과 싸우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새로운 생각의 물길을 트는 일이나 다름없다.
한국 전통 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한국 전통만의 핵심적 미감은 무엇인가?
자연스러움. 병산서원만 가봐도 우리의 미감이 어떤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덤벙주초(자연석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초석)와 구불거리는 기둥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내 작업은 전통의 재해석보다는 전통에 시대성을 부여하는 일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전통을 이어가는 역할은 장인이 하는 것이고, 디자이너인 나는 전통을 소재로 자유롭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소 즐겨 사용하는 소재인 플라스틱을 향한 세상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세상에 나쁜 소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시대에 플라스틱이 나쁜 소재의 상징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에 더 끌렸다. 전통이 진부하다는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처럼 플라스틱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다. 종이 빨대를 보자. 비닐로 코팅되어 재활용도 안 되는 것을 환경을 위한다며 사용하지 않았나. 플라스틱이 5백 년 동안 썩지 않는다면, 5백 년 동안 대대로 물려주며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면 된다. 우리가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살 수 없다면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름다움과 기능, 무엇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디자인 작업에서 그 둘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점을 고민하나?
나는 한국에서는 조각도부터 직접 만들어 나무로 그릇을 만드는 지극히 수공예적인 교육을 받았고, 덴마크에서는 논리적이고 객관성을 중시하는 디자인 교육을 받았다. 그간의 경험상 모든 것을 담아 낸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본다. 조각이지만 앉을 수 있는 (안락함은 배제된) 작품처럼 무엇이 중요한지를 우선 파악하고 그 외의 것은 최소한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디파인 서울의 특별전에서는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작업인 소반(Soban)과 자리(Jari)가 어우러질 예정이라고 들었다.
넓고 개방된 공간에서 전시할 기회는 흔치 않다. 그래서 설치되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나도 궁금하다. 보는 전시가 아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내 작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 나는 ‘세상에 나쁜 소재는 없다. 나쁜 사용 방법만이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그에 걸맞게 플라스틱이라는 소재의 새로운 쓰임을 보여주고, 관람객이 비단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직접 사용하면서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전시 기간에 많은 관람객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어떤 공간에서 가구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 중요한 것들이 있을 텐데, 이번 전시 공간인 Y173에서 관람객이 어떤 점을 느끼길 바라나?
이번 전시는 개별 가구보다는 설치 작업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하나의 객체로 보여지는 게 아니라 공간 전체가 이미지로 보이도록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에서 작품이 힘을 가지려면 작품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함께 있어야 한다.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눈여겨보는 소재나 전통의 요소가 있다면?
전통의 요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현대의 기술에 관심이 더 많다. 3D 프린팅 기술도 빠르게 발달하고 있고, 그 덕분에 이전에 구현하지 못하던 규모의 작업도 가능하다. 조선시대에 가구를 나무로만 만든 것은 나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날에도 다양한 소재와 기술을 배제한 채 나무만 고집하는 것이 옳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것이 플라스틱으로 이번 전시를 꾸민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