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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관광지인 일본. 지리적으로 가깝고 최근 엔화 약세로 제주도 못지 않게 자주 찾는 국가지만, 아쉽게도 많은 여행객들은 유명한 관광지만 방문하고 돌아온다. 그러다보니 여행 당시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기 어렵다. 그런 식상하고 겉핥기식 여행 말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곳들을 찾아가자고 제안하는 책이 있다.
20년 넘게 국회도서관에서 전문 사서로 근무한 박미향씨가 쓴 ’도쿄 모던 산책’(출판사 지에이북스)이다. 저자는 말한다. 여행지를 제대로 기억하려면 ‘기억기관’을 다녀와야 한다고. 기억기관이란 기록 보존소,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인류를 위한 집단적 기억의 수호자’ 역할을 수행해온 기관을 통칭하는 용어다.
저저가 근무한 국회도서관이야말로 주요 기억기관이다. 그곳에서 도서관 역할을 기획하고 관리해온 저자는 스스로를 ‘기억기관 칼럼니스트’라고 칭할 만큼 기억기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저자는 “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을 넘어, 그 사회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적 거점이 바로 기억기관”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도쿄 모던 산책’에서 가이드 역할을 맡아 도쿄의 기억기관 구석구석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도쿄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억기관을 소개하고, 에도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일본 문화를 깊이 있게 전달한다. 책에서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 문화적 체험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영감을 발견하게 된다.
책은 뻔한 관광지를 넘어 도쿄의 기억기관을 탐험하는 새로운 여행 경험을 제안하며, 독자에게 일본 문화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남기고, 새로 어떤 의미를 창조해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1부에서는 근대(modern)를 살펴보고 2부에서는 근세(early modern)로서의 에도를 다루며 가까운 과거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 방식을 택해 점차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공간적으로도 가까운 곳을 묶어 소개해 독자들이 효율적으로 방문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양한 그림과 사진, 아기자기한 지도가 읽는 재미에 보는 재미까지 더해주는 책이다. 또 세계사적인 사건과 지식문화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연표로 정리해 수록한 것도 돋보이는 부분이다.
국립국회도서관,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에도도쿄박물관 등 대표적인 기관부터 소세키산방기념관, 치히로미술관 같은 특색 있는 장소까지 다양한 기억기관을 방문하는 동안, 일본 문화와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이 자라나는 듯하다.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신중진 교수가 “단순한 여행 가이드를 넘어서 문화와 역사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문화예술 탐구서”라고 평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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