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스페인 남동부에 하루 새 한달치 폭우가 쏟아지면서 사망자가 1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러한 이례적인 폭우는 비단 스페인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지난 7월과 8월에 걸쳐 곳곳에서 홍수가 발생했다. 심지어 신장 남부에 위치한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열흘간 평년 대비 약 4배 많은 비가 쏟아져 홍수가 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괴물 허리케인 '헐린'과 '밀턴'이 잇따라 플로리다주를 비롯한 동부 내륙을 강타해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우리나라도 지난 7월 200년만의 폭우로 호남과 충청, 경북 지방이 초토화됐고, 북한은 압록강이 범람해 1천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 이상기후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가며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남기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스페인 발렌시아에 4시간 동안 300㎜ 폭우.. "지중해 기온 상승이 원인"
30일(이하 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발렌시아를 비롯한 남동부에 전날부터 폭우가 계속되면서 최소 95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스페인 기상청에 따르면 발렌시아에서 지난 20개월에 내린 비 보다 많은 양의 비가 8시간 동안 집중됐다. 발렌시아 서쪽 치바에선 밤사이 4시간여 만에 300㎜ 이상의 비가 내렸다. 이는 이 지역의 통상적인 10월 강수량(72㎜)의 4배를 훌쩍 넘는 양이다.
또한 폭우와 함께 토네이도가 발생하고 우박도 떨어져 피해를 더욱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비로 현재까지 발렌시아 지역에서 92명이 사망했고, 카스티야 라 만차(2명)와 남부 안달루시아(1명)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강이나 하천이 범람하면서 급류에 떠밀려 실종된 이도 상당수여서 사망자는 더욱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상학자들은 이번 폭우가 이 시기에 주로 나타나는 기후 현상인 '고타 프리아'(gota fria·차가운 물방울)와 연관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발생한 찬 공기가 지중해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와 만나 강력한 비구름을 형성하면서 폭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지중해 인근 국가들은 지난 8월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즉, 지구 기온 상승으로 지중해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해수면 공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 7월 200년만의 폭우.. 북한, 압록강 범람으로 1천명 사망
미국, 100년만의 괴물 토네이도.. 중국, 죽음의 사막에 홍수
기후변화로 인한 폭우와 태풍 등 자연재해는 올해 전 세계에 걸쳐 자주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7월 200년 만의 폭우로 호남과 충남, 경북 등 남부 지방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강원 등 중부 지방도 쑥대밭이 됐다. 경기도 파주에는 이틀동안 약 600㎜가 넘는 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졌으며, 전남 군산에서는 1시간 동안 131.7㎜가 내리며 기상관측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군산의 연 강수량(1천246㎜)의 10%가 넘는 비가 하루도 아닌 1시간에 내린 셈이다.
뿐만 아니라 7월과 8월에는 역대급 폭염이 이어져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가축 수십만 마리가 폐사하는 등 재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비슷한 시기 북한에도 많은 비가 내리며 압록강이 범람해 1천명 이상이 사망하는 홍수 피해가 발생했다. 압록강 주변의 거의 모든 마을이 물에 잠겨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고무 보트를 타고 홍수 현장을 시찰하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미국은 지난 9월 100년만의 괴물 허리케인 4등급 헐린과 5등급 밀턴이 플로리다주를 비롯한 중부와 동부 지역을 강타해 300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750억 달러(약 100조 원)라는 엄청난 재산피해를 안겼다.
일본 역시 극단적 이상기후를 겪고 있다. 평균적으로 10월 2일에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후지산에 이달 30일까지도 강설 예보가 없다. 일본 기상당국은 올여름부터 이어진 이상 고온 현상이 후지산 인근 야마나시현 고후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에서는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홍수가 발생했고, 9월 13호 태풍 버빙카가 상하이를 직격해 상당한 피해를 냈다. 하이난성에는 초대형 태풍인 11호 야기가 내습해 100만 가구가 정전사태를 빚는 등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대만은 현재 28년 만에 가장 강한 슈퍼 태풍 '콩레이'가 상륙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힐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대 풍속 초당 51m에 달하는 강풍을 동반한 채 이미 대만 전역에 최대 200mm의 비를 뿌렸다.
기후변화로 인명·재산피해 속출.. 한국, 11년간 기후변화 피해액 16조원
"기후변화로 전세계 GDP 19% 감소"
이처럼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입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1년 동안 16조 원에 가까운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기후솔루션이 발간한 '기후의 역습'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에서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액은 약 4조1,000억 원, 복구액은 약 11조8,000억 원으로 총경제피해액은 약 15조9,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기후위기란 태풍, 호우, 한파, 폭염, 산불, 하천 범람 등을 의미한다.
인명피해도 적지 않아서 같은 기간 기후재난으로 인해 총 341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폭염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193명(56.6%)으로 비중이 가장 컸다. 이어 호우 102명(29.9%), 태풍 40명(11.7%) 등 순서였다.
보고서는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야기한 폭염의 경우 경제피해액은 합계 43억 원으로 크지 않았으나 이는 폭염이 자연재난에 포함된 2018년부터 집계된 결과로 폭염 피해는 과소평가됐을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 3분기 자연재해 경제손실이 1~6월 상반기(931억6000만 위안)보다 2배를 훨씬 넘는 2300억 위안(약 44조4600억원)에 달했다.
올해 1~9월 자연재해 피해자는 8402만7000명을 기록했다. 사망자와 실종자도 836명에 달했디. 같은 기간 중국 자연재해 손실액은 3232억 위안으로 전년 동기(3083억 위안) 보다 약 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후변화는 농작물 등 먹거리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계은행(WB)은 2020년 보고서를 통해 현재 기후변화 상태가 지속되면 2030년까지 약 1억 3000만명이 빈곤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가 상승도 피하기 어렵다. 기후변화로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먹거리 물가가 오르는 이른바 '기후플레이션'(클라이밋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다.
국내의 경우 최근 배추가 한 포기에 1만원에 육박해 '금배추'라고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봄철 서리 피해 등 기상재해로 생산량이 급감한 사과와 배도 가격이 작년의 두배로 치솟기도 했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은 올해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고 그 여파로 아라비카 커피 가격은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올리브유는 세계 최대 생산국 스페인 가뭄 때문에 지난해 글로벌 가격이 치솟았다.
녹색전환연구소 "기후대응에 연간 130조 이상 써야"
국가인권위 "기후변화는 인권의 문제.. 정부와 기업 적극적인 역할 필요"
이처럼 기후위기는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지난 2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실과 나라살림연구소, LAB2050과 함께 주최한 세미나에서 "기후대응에 연간 130조 원 이상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025년 예산안에서 기후변화 대응 예산이 1.3%삭감(488억 원)된 데 반해 원자력 관련 예산이 18.1%(1842억 원) 증액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 선임연구원은 기후재정 혁신과제로 △2050 탄소중립 재원확보 △탈탄소 기후세법개정안 △녹색예산 기후재정개혁 △기후국제조세협의 4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얼마를 써야 하는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GDP의 5%, 공공부문의 30% 부담이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를 환산하면 2030년까지 연간 130조 원, 공공부문 투자는 40조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선임연구원은 "정부의 재정계획은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며 "각 부문별 투자목표, 투자수준, 조달계획을 명기한 기후재정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1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아시아태평양 국가인권기구 포럼(APF), 주한유럽연합 대표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OHCHR), 유엔 난민기구 한국 대표부와 공동으로 '기후변화와 인권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기후변화가 유발할 사회·경제적 변화와 인권 침해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다.
안창호 국가인원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개회사를 통해 "개인의 생명·건강권을 해치는 기후변화는 인권의 문제"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기후변화와 인권, 기업의 책임을 발표한 신유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인권위의 권고를 반영해 금융위가 기업 활동이 인권에 끼치는 영향을 선별적으로 공시하도록 한 것처럼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의 정책 개선을 권고해 기후 위기를 인권 차원에서 극복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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