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는 주인공의 활약이 유독 돋보이는 요즘. ‘조금은 이상하고 흠과 빈틈 많은’ 네 명의 매력 넘치는 해결사를 소개한다. 이들 모두 지키고자 하는 신념과 선의 앞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몸을 내던진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사제, 변호사, 검사, 판사… 네 명의 캐릭터는 사법 체계의 테두리 안에서 혹은 주변부에서 갈고 닦은 필살기를 발휘하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사건을 해결하고 악을 처단하는 모습은 통쾌하지만 “이게 맞아?”하고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돌발행동을 일삼는다. 이들은 엉뚱하며 허당끼 넘치고, 때로는 얄미운 모습까지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 한없이 강한 슈퍼 히어로나 가까이 다가가기에 너무 먼 위인전 속 인물과 완전히 다르다. 인간적 매력에 푹 빠진 시청자들은 어느새 이들 편에 서서 무한 응원을 보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SBS 〈지옥에서 온 판사〉의 강빛나
겉모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외제차를 타는 (하지만 알박기 재개발 빌라에 사는) 최연소 판사다. 실은 생을 마감한 인간 강빛나에게 빙의된, 지옥에서 죄인을 심판하는 살인 악마 판사 유스티티아다. 악마로서의 본능을 드러낼 때 눈동자가 보라색으로 변한다. 유스티아는 인간 세계에 내려와 살인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 죄인 20명을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벌을 받는다. 그는 강빛나의 몸을 빌려 허술한 법망을 이용해 죄인을 풀어준 뒤, 죄인 앞에 나타나 잔혹한 고통을 느끼게 하고 지옥으로 보낸다. 낙인이 새겨진 인두 도장과 결합한 검이 주 무기다. 교제 폭력, 아동학대, 일가족 살해를 저지르고도 뉘우치지 않는 범인들을 단죄하는 통쾌한 복수를 대신 한다. 피도 눈물도 없이 보이는 악마 판사가 꿀떡 앞에서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열혈 형사 한다온(김재영)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모습은 사랑스럽고 지극히 인간적이다.
필살기: 감시 능력, 손 대지 않고 뭐든 파괴하는 안력, 사이코메트리
TVING 〈좋거나 나쁜 동재〉의 서동재
드라마 〈비밀의 숲〉의 스핀오프 격인 드라마는 매번 승진에서 밀린 서동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제 잘난 맛에 살던 검사 서동재는 안 본 사이 무척 쭈굴해졌다. 스폰서 검사라는 낙인으로 청주지검으로 내려간 그는 부장검사 승진에 목을 매지만 매번 미끄러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분노하는 모습은 지질하지만 안쓰럽다. 전작들이 얄밉기만한 ‘느그(너희) 동재’에서 ‘우리 동재’가 되는 성장기였다면 이번엔 불쌍한 동재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과거를 뉘우치며 배후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우연히 맡은 사건이 마약 조직과 연루된 ‘큰 건’이라는 사실에 서동재는 가슴이 뛴다. 물론 그의 동기는 입신양명이라는 세속적 목표에 있기에 황시목 검사(조승우)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 미지수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게 되면서도 애잔함과 동질감을 느끼게 해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능글능글한 매력은 여전하다.
필살기: 현란한 처세술, 갑질, 능청스러운 말빨, 재빠른 태세전환
SBS 〈열혈사제〉 1, 2의 김해일
일단 주먹부터 나가고 보는 행동파 신부. 범죄자 앞에서 이성과 자제력을 잃고 힘이 엄청 강해진다. ‘사제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난폭해진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 평소에는 상상 할 수 없이 이성적이고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다. 하지만 술에 취하면 만두를 한입 가득 넣고 응석을 부리는 이상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과거 국정원 특수 요원이었던 그는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다. 국정원을 나간 후에도 아이들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충격으로 술에 찌든 채 방황하던 중에 목숨을 구해준 가브리엘 신부를 만나 정식 가톨릭 사제가 된 비밀스러운 과거를 가졌다. 김해일의 트레이드 마크는 사제복 위에 걸쳐 입는 블랙 더플 롱 코트로 싸울 때 유독 멋지게 펄럭인다. 늘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구대영 형사(김성균)와의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필살기: 잠금장치 풀기, 긴 다리를 활용한 각종 발차기, 맨손 격투술, 러시아어
넷플릭스 〈지옥〉 1, 2의 민혜진
소도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사이비 종교 단체 새진리회가 덩치를 키워갈 때부터 피해자들을 변호하고 알리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4년 전 새진리회와의 싸움으로 이마에서 눈까지 이어진 큰 흉터가 생겼다. 강인하고 정의로우나 한없이 이상적이거나 혼자 겉도는 인물은 아니다. 두려움과 죄책감에 빠져 고뇌하는 면모가 그를 답답한 민폐 캐릭터로 남지 않게 만든다. 체력이 좋고 매우 민첩하다. 나긋한 목소리와 차분한 성격과 달리 카체이싱도 수준급이다. 앞차를 들이받고 룸미러를 뽑아 엑셀을 고정시킨 후 유리창과 앞차 뒷유리를 깨 다른 차로 들어가는 현란한 기술을 보여준다. 위급 상황에선 몸을 던져 쓰레기 봉투더미 위로 과감히 뛰어내리기도 한다. 〈지옥〉 시리즈의 등장인물이 저마다의 지옥에서 허우적거릴 때, 민혜진만이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쓴다. 그와 같은 ‘뜨거운’ 변호사가 많아지길 내심 바라게 된다.
필살기: 트라이앵글 초크(레슬링 기술), 삼단봉 휘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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