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호의 예술의 구석] 나의 노트는

[윤건호의 예술의 구석] 나의 노트는

문화매거진 2024-10-31 18:03:38 신고

▲ 나의 노트는 / 그림: 윤건호
▲ 나의 노트는 / 그림: 윤건호


[문화매거진=윤건호 작가] 메모하는 습관을 위해 이 노트 저 노트, 곳곳에 적어 놓고 그 노트가 어디 있었는지 까먹어버리는 나지만 그래도 항상 적고 본다. 회의를 하거나 사색을 하거나 전시를 보거나 일단 펜을 손에 쥐고 있다. 

아무래도 메모하는 습관보단 펜을 손에 쥐는 습관이 있는걸까?

번번이 그러면서도 메모하는 이유는 멋진 대사 한 줄을 쓴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부딪치면 이룰 수 있다 생각하더라도 준비 없인 불가능 한 것이 세상의 이치니까, 멋진 말 한 줄을 위해서 10줄의 메모가 그 준비물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좋은 글귀나 말은 메모하기 좋고, 어쩐 일인지 기억이 나는 꿈과 이해는 했는데 정확한 뜻은 모르겠는 단어나 재미있는 어투는 특히 좋아 바로 적어버린다. 글로 적고 그림으로 그리고 사진을 찍어 스크랩을 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되는대로 이것저것 메모하고 나면 마치 온종일 놀아 어질러진 레고블록들을 보는 듯하다.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블록들을 마구잡이로 흐트려 놓고 헤집어 놓은 것이… 참 지저분한 노트구만 싶고… 근데 ‘레고’는 비싸니까 오히려 좋다 싶다.

이 레고들은 내가 무슨 구상을 하고 어떻게 조립하느냐에 따라 용이 되기도 할 거고 성이 되기도 할 테다. 레고 블록이 많을수록 쏟아낼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왕창 쏟아내야 그 블록들이 어디에 필요한지 분별하기 쉬워진다. 

가치관을 보다 선명하게 쌓고 작업관을 보다 견고하게 끼우도록 ‘레고’가 필요하다.

나는 종종 사람들과 소통하고 이야기 나눌 때가 예술하는 순간으로 느껴진다고 말하곤 하는데, ‘레고’를 모으기 좋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말투는 곧, 나와 다른 접근법이기에 스스로의 한계를 범람하는 표현들을 맞이할 수 있다. 

삶이라는 공통분모를 말하고 전하는 표현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다니… 별별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스트레스가 있을 때도 있지만 펜을 쥐면 그마저도 노트 할 것들이다. 별별 사람들의 표현이 모이면 그게 별천지다. 참, 예술적인 순간이다. 

전시장에서 노트를 들고 돌아다니며 봤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명언이 있지만 아직도 특히 기억에 남는 글귀가 있다면 “난 넘어져도 괜찮아, 남들 보다 땅에 가까우니까”라는 로트렉의 한마디다. 그 한마디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떤 역경이, 낙관이, 표현이 그의 메모가 되었을까. 아득하다.

나의 표현을 명확하게 조립하고 단단하게 쌓을 ‘레고’, 나의 ‘메모’들을 오늘도 손바닥만한 노트에 끄적여 본다.

아 근데, 저번에 썼던 노트가 어디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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