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자사주 공개매수 이후 30일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카드를 내밀며 사태가 새 국면에 들어섰다. MBK파트너스의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이 예상되는 가운데, 당국의 개입도 가능성이 있기에 '지분율 역전'이란 당초 셈법이 맞아들지 의문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진행하는 유상증자에 기존 주주가 배제되었기에 일반 주주들의 피해와 반발도 우려된다.
고려아연은 이날 임시이사회를 열고 부의안건으로 일반공모 증자의 건을 의결했다. 총 모집주식은 373만2650주다. 이는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후 소각할 분량을 제외하면 발행주식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예정 발행가액은 67만원으로 산정했다. 이는 기준주가 95만6116원에 할인율 30%를 적용한 것이다.
이번 총 모집주식 중 20%는 자본시장법상 우리사주조합에 배정할 방침이다. 아울러 1인당 청약 한도는 3%인 11만1979주 내에서만 배정할 방침이다.
고려아연이 공시한 바에 따르면 이번 유상증자의 목적은 채무상환자금 용도다. 2조3000억원으로 조달분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외 시설자금 목적이 1350억원, 타법인 증권취득자금 목적이 658억원 가량이다.
◆ 최상의 시나리오대로라면 0.5%p 지분역전 가능한 고려아연
최윤범·고려아연측이나 MBK·영풍측 어디도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조기 기선제압을 했다고 보긴 어렵다. 다만 양측의 공개매수가 완료된 상태서 지분율은 MBK가 앞선다. 따라서 이번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은 지분희석으로 우위에 올라서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총 발행주식 수가 늘어나기에 MBK측 지분율은 기존 43.9%에서 36.4%까지 희석된다.
물론 이는 최윤범 회장측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40.4%에서 33.5%로 줄어든다. 그러나 우리사주조합이 이번 증자에서 74만6530주를 새로 쥐게 되므로, 이들의 지분율 3.4%는 최 회장으로 분류 가능하다. 따라서 고려아연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로 계산하자면 최윤범측 36.9% 대 MBK측 36.4%로 0.5%p 차이로 지분율을 역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1인당 청약 한도를 11만주 가량으로 제한했기에, MBK측이 아무리 자금이 많더라도 지분구도 역전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에 한 법조계 관계자는 "11만주 청약 한도가 미묘한 숫자"라며 "일반공모 방식을 결정하고도 경쟁자의 참여를 아슬아슬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에, 경영권 방어를 위한 유상증자라고 법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라고 말했다.
◆ 20년 전 현대엘리베이터-KCC 다시 회자
이번 유증 결정으로 20여년 전 경영분쟁 사건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03년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인 현정은 회장이 KCC로부터 경영권 방어를 위해 신주 1000만주를 유상증자하기로 결정한 건이다. 이에 KCC측은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했다.
당시 사법부는 해당 유상증자가 회사 경영을 위한 자금조달 목적이 아니라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기존 대주주와 현 이사회의 경영권 방어목적으로 이뤄졌다는 KCC의 소명이 충분하다며 유상증자를 중단시켰다. 특히 "경영권 방어가 일반주주에게 이익이 되면 예외적으로 기존주주의 신주인수권을 배제한 신주발행이 허용되지만 이번 신주발행은 그렇게 볼만한 사정이 없다"고 판단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법부가 이렇게 판단한 데에는 당시 신주발행 물량이 발행주식 총 수의 두 배에 달했고, 청약 한도가 고작 300주로 제한됐기에, 명확하게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은 판단의 경계서 '애매'하다. 현재 경영권 분쟁 상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분명하지만, 결정적이라고 말하기가 애매한 것이다.
◆ 경영권 방어 목적이면 유증 제동 가능성 높아
1인당 청약 한도 제한 외에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우선 공시상 고려아연이 유상증자의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채무상환과 관련한 부분이다.
기업이 유상증자로 채무를 상환하는 건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그 시점이 마침 경영권 분쟁으로 웃돈을 주고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발생한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다시 유상증자를 결정했다는 점이 논란이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진행 당시 이를 주주환원의 일환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는데, 경영을 잘 해서 잉여금이 쌓이거나 여력이 된다면 그때그때 주주들에게 환원했어야지, 경영권이 도전받는 상황에서야 이를 빌미로 내세우는 부분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공개매수를 진행한 자금은 빌린 돈이었고, 이를 갚기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한다는 비판이 더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유상증자를 위해 미래에셋증권이 지난 10월 14일부터 29일까지 기업실사를 진행했다는 점 역시 함께 공시되면서 파란이 커지고 있다. 10월 14일이라면 MBK측이 공개매수를 완료하는 시점이고, 최윤범측은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있었던 때다.
미래에셋증권이 실사를 시작한 14일이 월요일이기 때문에 최윤범측은 적어도 전주 금요일인 11일부터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 이는 금융 당국에 정정 공개매수신고서를 제출한 시점이다. 여기엔 재무구조 변경 계획이 없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애초부터 주주들 돈으로 대항 공개매수의 빚을 갚을 요량'이었다는 정서적 비판이 아니더라도, 당국이 허위 기재라고 볼 가능성도 농후하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공시에 금융감독원은 이튿날인 31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예고했다.
예상된 바대로 이날 오전 유상증자 공시 이후 고려아연 주가는 하한가로 직행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열띤 비판을 쏟아냈다. 한 투자시장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적대적 M&A로 인한 국내 산업생태계 교란과 공급망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이번 유상증자 결정 배경을 설명했는데, 투자시장과 자본시장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꼼수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려아연측은 오히려 "최근 MBK파트너스와 영풍의 적대적 M&A 시도와 상호간 공개매수로 유통물량이 크게 감소되면서 주가가 거래일 기준 18일 만에 100% 이상 급등하고, 지난 29일 종가 기준 154만 3000원까지 뛰는 등 변동성이 지나치게 심화하는 등 부작용이 상당하다"며 "이로 인해 상장폐지나 관리종목 지정으로 인한 투자자 피해 우려가 커지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상황인 바, 이번 일반공모증자를 통해 이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국민연금은 여전히 캐스팅보트, 국민 정서 고려할 수도
아울러 이번 유상증자가 가능할지 여부와 별개로, 투자시장이 약 4~5% 가량 지분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국민연금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국민연금은 9월 30일 기준 7.48%인 154만8609주를 들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고려아연 주식 보유를 '단순투자' 목적으로 변경했는데, 따라서 보고 의무가 발생하더라도 다음 분기 10일 이내 공시하면 된다. 따라서 최근 공개매수 상황에서 구체적 지분 정리 규모는 내년 1월에야 가시화된다.
다만 10월 들어 고려아연 주가가 폭등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이 운용사에 위탁한 3~4% 가량 지분은 상당 부분 정리됐을 거라고 시장은 추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총 주식 수 1%의 지분율이 아쉬운 현재 경쟁 구도를 감안하면, 내년 주총 표 대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국민연금만이 아니라, 그동안 범 고려아연 지분으로 분류할 수 있었던 여타 투자자 지분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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