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책을 파는 공간을 넘어서...

[특별기고] 책을 파는 공간을 넘어서...

독서신문 2024-10-30 16:00:00 신고

장미영_북스타그래머로 활동 중
/서점 MD근무(2015~2023)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을 넘어서, 각자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매일 책을 손에 쥐고 새로운 독자를 맞이하는 책방지기의 시선에서 본 세상은 그 어떤 거대한 도서관보다도 깊고 다채롭습니다. 책을 통해 수많은 삶을 만나고, 독자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도 함께 엮어가는 이 여정은 말 그대로 '책 속의 여행' 이자 '사람 속의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한 권의 책을 고르고 읽는 행위는 작은 우주를 만나는 일입니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 안에 쌓여 있는 책들이 온 우주처럼 펼쳐집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찾아온 행성, 즉 책을 찾고 있습니다. 서점의 역할은 그 행성을 안내하는 안내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 책방지기들은 단순히 책을 권하는 것 이상의 고민을 합니다. 고객님들의 필요와 취향을 고려해 그들의 인생에 의미 있는 책을 추천하려 애를 씁니다. 이 과정에서 손님들과 깊이 있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최근 어떤 책이 마음에 들었나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는 서로의 경험을 나눕니다. 때로는 그런 대화가 책보다도 더 오랜 여운을 남기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여운을 되새겨보려 합니다.

70대 할머니께서 서점에 찾아와 한 권의 소설을 물으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오래전에 잃어버린 책을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몇 장면을 설명했지만, 제목도, 저자도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여러 권을 추천해 드리며 함께 책 속에서 추억을 찾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정확한 책을 찾을 순 없었지만, 그날 할머니는 추천받은 다른 책을 집어 들며 말끝을 맺었습니다. “이 책이 그 책은 아닐테지만, 읽으면 언젠가 기억이 돌아올 것 같아요.”

오랜 기간 동안 같은 책을 매주 찾아오던 독자분도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그 책을 사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그 책을 사지 않고도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읽는 것이 즐거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매주 책방에 앉아 책 한 페이지씩을 음미하며 읽으시다가 어느 날, 그 책을 전부 읽으시고는 저에게 “이 책이 본인을 많이 바꿔 놓으셨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순간들을 통해 책의 가치가 단순히 지식 전달의 도구를 넘어 사람의 삶과 기억을 잇는 끈임을 깨닫게 됩니다. 책은 독자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말을 걸고, 때로는 잃어버린 기억을 끌어내기도 합니다. 책방지기로서 그 기억의 연결고리가 되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고르는 손길, 진열대 앞에서 머뭇거리는 시선,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의 작은 미소까지 서점은 그 모든 순간의 축적입니다. 이렇듯 서점에서 책을 다룬다는 것은 독자에게 맞는 책을 찾고, 그 책이 독자의 마음에 가닿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때로는 독자 스스로도 어떤 책을 원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이나 대화 속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은 한 여성이 조용히 서점에 들어와 주저하며 서가 앞에 서 있다 문득 “요즘 좀 힘이 들어서요, 마음이 가벼워지는 책을 찾고 있는데… 어떤 게 좋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에게 위로가 될 책을 생각하며 책장 구석에 있던 에세이 한 권을 건넸습니다. “이 책은 마음을 가볍게 하면서도 깊은 위안을 줄 거예요.”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책을 받아 들며 돌아갔습니다. 몇 주 후, 그녀가 다시 서점에 찾아와 말했습니다. “그 책 덕분에 많이 위로를 받았어요. 덕분에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 졌어요.”

비 오는 어느 날은 한 남학생이 어색하게 서점 문을 열고 처음 서점에 온 듯 쭈뼛거리는 순수했던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저, 이거… 추천받아서 왔어요.” 그가 내민 책 제목은 고전 문학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독서 과제로 나온 책이었습니다. 책을 들고 고민하는 그의 표정이 떠오릅니다. 책을 억지로 읽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지만, 그에게 책을 흥미롭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처음 읽기엔 조금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이 부분부터 읽어보면 더 재밌게 다가올 거예요. 혹시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와서 물어봐도 돼요.” 몇 주 후, 그는 다시 찾아와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다른 고전 책도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책이 의무에서 기쁨으로 변하는 순간을 본 것이었습니다.

책을 다루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바로 이런 소소한 대화와 작은 변화들이 쌓이는 시간들입니다. 어떤 날은 그들에게 책을 추천하지만, 또 어떤 날은 그들의 이야기가 새로운 책을 소개받기도 합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독자들과 나눈 작은 대화들 속에서 발견한 인생의 조언이나, 서로 공감하며 웃었던 순간들이 저에게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경험에서 깨달은 책이란 단지 활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점 문을 나서는 손님들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각자가 책 한 권을 들고나가는 것이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수많은 이야기가 섞인 작은 우주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렇듯 책과 사람, 그 만남이 이루어지는 숨 쉬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일하며 몸소 느끼게 된 건 사람마다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새로 나온 베스트셀러를 찾아오고, 또 다른 이는 오래전 절판된 책을 찾습니다. 하지만 이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서점은 그들에게 마음의 휴식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책을 고르고, 책장을 넘기는 동안만큼은 복잡한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들은 지금도 어느 서점에서 각자의 우주를 찾고 있습니다. 그 우주가 어떤 책이든, 책방지기의 역할은 책이 사람에게 주는 힘, 그것을 찾는 여정을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책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마음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이 모여진 서점은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작은 다리이며, 작은 우주를 만나는 공간입니다. 그 우주 안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같은 목표, 즉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책은 하나의 세계를 품고 있고, 그 세계는 독자와 만나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책방지기는 오늘도 동네 곳곳에 위치한 서점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저마다 사연에 울고 웃으며, 그들에게 조용히 하나의 세계를 연결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점의 창으로 보는 세상" 은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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