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으로의 빠른 불법 입국'을 주선하는 베트남 브로커를 만나다

'영국으로의 빠른 불법 입국'을 주선하는 베트남 브로커를 만나다

BBC News 코리아 2024-10-30 11:23:00 신고

3줄요약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금발 머리의 베트남 남성
BBC
이주민으로 위장한 취재 기자가 소형 선박을 타고 영국으로 갈 수 있도록 주선해 준 베트남 범죄 조직원을 찾았다

프랑스 북부 해안선 근처의 울창한 숲속에서 베트남 출신 인간 밀수업자가 잠시 주저하는 듯 급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BBC 취재진 중 몇 주간 이주민으로 위장해 잠복 취재 중이었던 이에게 손짓하며 “같이 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빨리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버려진 듯한 철길이 있었다.

잠시 뒤, 그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큰 키에 염색한 밝은 금발인 이 남성은 마치 놀란 여우처럼 급히 돌아서더니 좁은 길을 따라 숲속으로 사라졌다.

올해 초, 베트남은 소형 선박을 타고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이민자들의 최다 출신 국가로 갑자기 떠올랐다. 지난해 통틀어 1306명이었으나, 올해 상반기에만 2248명으로 급증한 것이다.

베트남 인간 밀수업자 및 이민자, 프랑스 경찰, 검찰, 자선단체와 이야기하며 BBC가 조사한 결과, 베트남 이민자들은 더 빠르고 간소화된 ‘정예’ 소형 선박 밀입국을 위해 평상시보다 2배 정도 더 비싼 돈을 치르고 있었다.

올해 영불해협에서의 사망자 수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BBC 취재진은 베트남 인간 밀수 조직에 침투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현재 영국에 유럽으로 가려는 이민자들을 위해 서류를 위조해주는 숙련된 밀수꾼을 만나봤다.

아울러 취재진 중 1명은 베트남 이민자로 위장한 뒤 전화와 문자 등을 통해 프랑스 덩케르크 인근 숲에서 활동하는 밀수 조직을 만나고자 노력했다.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밀입국시키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박(Bac)'이라고 소개한 밀수업자는 "소형 선박 서비스는 2600파운드(약460만원)이다. 당신이 영국에 도착한 뒤 돈을 내면 된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다른 정보원들에게서 들은 금액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취재진은 박이 영국에 기반을 둔 조직의 지도부이자, 숲속으로 사라진 금발 남성(‘토니’)의 보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박은 유럽에서 영국으로 가는 여정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며 많은 이주민들이 우선 베트남에서 헝가리로 향한다고 했다. 헝가리는 합법적인 취업 비자를 비교적 쉽게 취득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종종 위조된 서류가 동원되기도 한다.

그 뒤 이주민들은 프랑스 파리까지 이동한 뒤 덩케르크로 향한다는 설명이다.

이후 보낸 문자에서 박은 “토니가 (덩케르크) 역에서 당신을 데리러 올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베트남 이민자들은 인신매매 조직 네트워크의 취약한 타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범죄 그룹은 이주민들에게 빚을 지우고 대마초 농장이나 영국 내 다른 사업체에서 노동하며 빚을 갚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취재진이 최근 덩케르크와 칼레 주변의 캠프촌을 여러 번 방문한 결과, 베트남 출신 범죄 조직과 이주민들은 다른 (국가 출신의) 조직 및 이주민들과는 별개로 활동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덩케르크의 이주민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인 ‘살람’의 자원봉사자인 클레어 밀로 또한 “그들(베트남인)은 외부와 접촉도 거의 없고 다른 조직보다도 훨씬 더 비밀스럽다. 우리도 그들을 거의 보지 못한다”고 했다.

프랑스 해안의 캠프촌
BBC
영국으로 건너기 전 이주민들이 잠시 모이는 프랑스 해안의 캠프촌

다른 자선 단체의 자원봉사자는 최근 스포츠용품 체인점인 '데카트론'의 덩케르크 지점에서 베트남인 약 30명이 구명조끼를 구입하는 보기 드문 모습을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조직은 그저 다른 이들과 거리를 둘뿐만 아니라, 베트남 이주민들은 캠프촌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여러 아프리카 및 중동 출신 이주민들은 프랑스 해안의 열악한 환경에서 몇 주 혹은 몇 달씩 머물기도 한다. 일부는 소형 배에 탈 만한 돈이 없어 밀입국 조직에서 일하며 돈을 벌기도 한다. 아울러 프랑스 경찰에 의해 해안가에서 잡히는 사례가 빈번하기에 최종적으로 영불 해협을 건너기까지 여러 번 시도하기도 한다.

최근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이라크, 이란, 시리아, 에리트레아 등에서 온 이민자 가족 수십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이들은 자선단체가 매일 식사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 모여 있었다. 진흙탕에 보슬보슬 비도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피크닉 테이블에 둘러앉아 게임을 하고 있고, 다친 팔을 치료받고자 이곳을 찾은 남성도 있었다.

몇몇 부모들은 전날 밤 선박이 해협을 건너려다 뒤집어져 생후 4개월 된 쿠르드족 아기가 익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야기해줬다. 그러나 해협 횡단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한편 이곳에서 베트남인은 보이지 않았다. 베트남 밀수업자들은 날씨 상황이 이미 좋아져 해협을 건너갈 날짜가 임박해졌을 때만 고객들을 프랑스 북부의 캠프촌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보인다.

BBC 잠입 취재 기자는 베트남 출신 인간 밀수업자를 만나봤다

BBC는 올해 초 덩케르크 근처 베트남 이주민 캠프촌 한 곳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베트남 이주민들을 처음 접하게 됐다.

이들이 설치한 캠프는 다른 이주민 캠프촌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조직적인 모습이었다. 같은 종류의 텐트들이 일렬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으며, 몇몇 사람들은 튀긴 마늘, 양파, 베트남 향신료를 넣은 맛있고 제대로 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덩케르크에서 벌어지는 불법 이민과의 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마틸드 포텔 경찰청장은 "베트남인들은 매우 조직적이고, 단합도 잘되고, 캠프촌에서 함께 지낸다. 꽤 대단하다"면서 "베트남인들은 해안가에 도착하면 수일 내에 횡단하곤 한다. 이들은 다른 이주민들보다도 돈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사실 베트남 조직이 통제하는 건 소형 선박 횡단 자체가 아니다. 이 분야는 소수의 이라크 쿠르드 불법 조직이 점령하고 있다. 대신 이들은 접근성과 타이밍을 협상한다.

현재 영국에 살며 베트남인들의 불법 횡단을 알선하는 탄은 “베트남인들은 (횡단) 자체를 손댈 수 없다. 우리는 (쿠르드 조직에) 고객을 데려다줄 뿐”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탄은 인터뷰에서 돈을 조금 더 얹어주면 베트남 이민자들이 소형 선박에 먼저 탈 수 있다고 했다.

상대적 비용은 분명하지만, 안전성은 모호하다. 올해 첫 9개월 동안 영불해협을 건너다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이주민 수십 명 중 베트남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0월에는 베트남 이민자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올해는 특히 소형 선박으로 해협을 건너다 숨지는 이민자들이 가장 많은 해이다.

베트남인들은 추가 비용을 지불해 덜 붐비는 배에 올라탈 수 있기에, 침몰 가능성은 적어질 수 있다. 그러나 취재진은 이 정보를 완전히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베트남 업자들은 날씨가 좋지 않을 때 고객을 배에 태우는 데 주의한다는 점이다.

잠입 취재 기자가 박에게 받은 문자에는 캠프로 이동하는 법과 도착하기 가장 좋은 날 등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이 담겨 있었다.

박은 문자로 “소형 선박 운영 서비스는 날씨에 달려 있다. 파도가 작은 날이 좋다. 그리고 안전해야 한다 … 이번 주 초 날씨가 좋았고 많은 배들이 떠났다 … (덩케르크에) 내일 정도 도착하면 좋을 것 같다. 목요일 아침 (해협 횡단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달 초 덩케르크 인근 숲속에 자리한 별개의 캠프촌 2곳에서 청년 두 명을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새로운 삶을 찾아 베트남을 떠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놀랍도록 거의 똑같았다.

베트남에서 돈을 빌려 작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친지와 사채업자에게 돈을 더 빌려 밀수업자에게 건넬 돈을 마련해 영국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투(26)는 지나가는 새끼 고양이를 쓰다듬어 “베트남에서의 삶은 힘들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가게를 개업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빚을 갚을 수 없었기에 돈을 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것이 (불법임을) 알고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8900만원 정도의 빚을 진 상태다. 집도 팔았지만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뒤에 있던 텐트에서 닭 두 마리가 나타났다. 근처 나무에 거울이 걸려 있고, 한편에 마련된 천막 아래에는 휴대전화 충전을 위한 플러그 콘센트가 있었다.

베트남 이주자들
BBC
취재진이 만난 베트남 이주자들은 영국에서 일하며 빚을 갚고 싶다고 했다

27세의 또 다른 청년은 중국을 거쳐 유럽에 오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걷기도 하고, 트럭을 탈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름 밝히기를 원치 않았던 그는 "영국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그곳에서의 삶이 훨씬 낫고, 돈을 벌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 사람들은 인신매매의 피해자일까. 이는 불분명하다. 우리가 만난 모든 베트남 이주민들은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만약 이들이 유럽까지 오는 경비를 내고 빚을 갚고자 영국 내 밀수 조직에서 일하게 됐다면 이들은 인신매매 당한 게 맞다.

한편 취재진은 금발의 베트남 밀수업자인 토니가 숲에서 나올 수 있도록 유인하고자 했다. 토니의 조직원들(다른 조직처럼 아마도 무장한 상태일 것이다)이 우리에게 덜 위협이 될 수 있는 곳으로 나와 이야기를 해보고자 했다.

이 수익성이 좋고 때로는 사람이 죽어가는 범죄 산업에 어떻게 뛰어들게 됐는지 토니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토니는 자신의 ‘영역’을 떠나길 싫어했고, 고객으로 위장한 기자가 자신을 따라 숲으로 따라가기 거부하자 조바심을 드러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왜 거기서 꾸물대는 거예요? 저 길을 따라가라니까요. 빨리 움직여요! 당장!" 토니가 명령했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공터에는 새소리만 울려 퍼졌다.

토니는 격분하며 "이런 멍청한 … 거기 멍하게 서서 경찰에 잡히려고 그러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내 등을 돌리더니 숲 속으로 사라졌다.

위장한 동료가 진짜 이민자였다면 아마 토니를 따라갔을 것이다.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일단 캠프촌에 들어온 이주민은 밀수업자들에게 수백달러를 지불하지 않으면 나갈 수도 없다고 한다.

베트남 조직이 영국으로 가는 빠르고 안전한 ‘정예’ 경로를 약속할지 모르나, 현실은 그보다 더 어둡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협이 뒤따르고 성공하리라 보장할 수 없는 범죄 산업이다.

추가 보도: 캐시 롱, 레아 구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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