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제약 산업 정보 서비스 업체 사이트라인(Citeline)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1월 기준 전 세계 약물 R&D 파이프라인의 14.2%를 차지했다. 제약 R&D 점유율 글로벌 순위에서 한국은 영국을 밀어내고 3위에 올랐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파이프라인 1만1200개를 보유한 미국 기업과 6098개를 보유한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3233개를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이번에 4위로 밀려난 영국(3156개)과는 불과 77개 차이였다,
독일(2479개), 캐나다(2387개), 오스트레일리아(2372개), 프랑스(2372개) 등이 뒤를 이었다. 이어 스페인(2259개), 일본(2041개) 등이 파이프라인 숫자 2000개 이상으로 10위권 내에 들었다.
한국이 점유율 순위에서 한 단계 올라선 것은 지난해 파이프라인 2917개로 4위를 기록했던 것에 비해 파이프라인 숫자가 11%가량 늘어난 결과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지만, 최근 공격적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며 "(R&D 점유율 3위는)이 같은 노력이 성과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희귀의약품 파이프라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은 스위스의 노바티스였다. 노바티스는 희귀의약품 파이프라인이 118개로 전체 파이프라인 중 희귀의약품 비율이 53.6%였다.
2위는 미국의 화이자로 파이프라인 112개로 희귀의약품 비율은 40.1%였다. 이어 BMS(110개), 로슈(102개), 사노피(85개) 순이었다.
희귀의약품 파이프라인 상위 20개 기업의 평균 희귀의약품 비율은 38.78%였다. 국가별로는 순위권 내에 미국 기업 8곳으로 가장 많았고, 이 뒤를 일본(4곳), 스위스(2곳), 영국(2곳), 중국(2곳), 프랑스(1곳), 독일(1곳)이 이었다.
희귀의약품 파이프라인 보유 기업 순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세계 파이프라인 보유 국가 순위에서는 10위에 그쳤던 일본 기업이 희귀의약품 부문에서는 약진했다는 것이다. 국가 순위에서는 19위에 머물렀던 스위스를 포함해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영국(4위), 프랑스(9위), 독일(6위) 기업이 모두 20위 내에 이름을 올린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사는 한 곳도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희귀의약품 파이프라인은 전 세계 신약 파이프라인의 79%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3위 파이프라인 보유국인 한국 기업이 점유율 순위가 더 낮은 국가의 기업보다도 희귀의약품 파이프라인 보유 숫자가 부족한 것은 국내 기업이 희귀의약품에 크게 투자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런 미진한 투자는 결과로도 드러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품목허가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품목허가 된 희귀의약품 16개 가운데 국내 기업 제품은 찾을 수 없다. 이번 달 컨설팅 회사 사이넥스가 헬신 파마슈티컬스를 대리해 허가받은 피부 T세포 림프종 치료제 '레다가겔'을 포함한 16개 품목 모두 수입 의약품이다. 관련 절차를 국내 컨설팅 업체에 위탁한 레다가겔을 제외하면 모두 자사 한국 법인을 통해 수입 절차를 거쳤다.
지난해에는 한독, GC녹십자, JW중외제약 등이 희귀의약품에 대한 품목허가를 받았으나, 이중 해당 제약사가 개발한 오리지널 의약품은 하나도 없다. 모두 국내 판권을 획득한 도입 상품이거나 제너릭 제품이다.
이는 국내 제약바이오사가 주로 제너릭이나 바이오시밀러 등 이른바 '복제약'이나 '개량신약'에 치중해 R&D 자원을 투자한 결과로 보인다. 현재 희귀의약품 개발에 나선 국내 업체 역시 한미약품, GC녹십자, 유한양행 등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국내 굴지의 제약사인 한미약품과 GC녹십자도 파브리병 치료제 'LA-GLA'를 공동 개발 중인 상황이다.
희귀약은 미충족 수요가 높지만, 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시간이 크면서도 유병율이 낮아 수익성이 보장되지 못했다. 2020년대 들어서야 각국 인센티브 제도가 활성화되며 막 떠오르기 시작한 영역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Evaluate Pharma)에 따르면 전세계 희귀의약품 시장규모는 올해 기준으로 1850억달러(약 256조188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2028년에는 약 2700억달러(약 373조89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에서는 최근 희귀의약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이 희귀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김효인 국가신약개발사업단 연구원은 "지난 5년간 FDA의 희귀의약품 지정률은 50%를 상회했으며, 특히 지난해 승인 신약의 60%는 희귀의약품이었을 정도로 희귀의약품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면서 "비록 성장률이 둔화된다고 할지라도 이는 기존 대비 상대적인 결과일 뿐이며, 전체 처방약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희귀의약품 시장 또한 계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지은, 최윤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국내 제약사들은 합성의약품 분야에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부분적인 성공을 경험했고, 펙수클루(국산신약 34호)나 엔블로(국산신약 36호), 세노바메이트(2019년 FDA 허가) 등 일부 의약품은 이미 계열 내 최고(Best-in-Class) 신약으로 인정받았다"면서 "하지만 바이오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아 희귀의약품 분야를 전략적으로 공략하여 바이오헬스 분야를 선도하는 시장선도자(First Mover)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기존의 희귀의약품 개발지원 정책을 면밀히 검토하고 대승적인 관점에서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미국의 임상 비용 세액 공제 혜택과 같은 과감한 지원도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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