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가 조명한 현대 무용가 안은미의 세계

구찌가 조명한 현대 무용가 안은미의 세계

바자 2024-10-23 11:36:45 신고

구찌가 한국 문화예술 거장 4인을 조명하는 캠페인 및 사진전 〈두 개의 이야기: 한국 문화를 빛낸 거장들을 조명하며〉를 공개했다. 이번 전시는 구찌가 사진가 김용호의 시선으로 개념미술가 김수자, 영화감독 박찬욱, 현대무용가 안은미,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 한국적 정체성을 세계에 알린 예술가들의 문화적 배경을 탐구한 프로젝트다.

그중 첫 번째로 현대무용가 안은미를 만나 사진 속 이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파격·도발·실험 등의 단어로 안은미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그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니까. “안은미가 없었다면 한국 현대무용계가 얼마나 심심했을까”라는 말이 나오는 건 과장이 아니다. 안은미는 ‘21세기의 피나 바우슈’라는 수식어를 얻을 만큼 지난 35년간 장르와 형식, 관행, 서양과 비서양의 이분법적 가치를 깨뜨리는 무대를 선보였다. 전국 할머니들의 막춤을 기록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세계 50여 개국에 초청받으며 국내외 관객을 사로잡았고,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신춘향〉은 유럽 순회공연으로 이어졌다. 올해는 이탈리아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 재단의 초청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 무인도인 산 자코모에서 굿판 같은 춤판을 벌였다.

늘 범상치 않은 행보를 보인 그가 장난감 같은 왕관, 커다란 귀고리 등으로 존재감을 내세우며 카메라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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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특정 브랜드와 협업한다는 게 이례적이다.

A 브랜드와 진행한 프로젝트가 처음이다. 옛날에도 광고 제안이 있긴 했는데 막상 내가 어울리기 쉬운 이미지가 아니였는지 불발됐다. 이번엔 브랜드 행사지만 예술가들을 조명하자는 메시지고, 나도 어느 정도 좀 자격이 되지 않나 싶었다. 지금이 아니었다면 안 했을지도 모른다.


Q 구찌와 특별한 접점이 있었나?

A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가 한국 문화를 알리고 접점을 찾으려 우리나라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한다고 했을 때부터 아티스트로서 재밌다고 느꼈다. 물건만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문화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구나 싶어 신선하게 여겨졌다. 더구나 함께하는 다른 세 분이 장르는 다르지만 자신의 시대를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모이기 쉽지 않은데, 사진이라는 기록도 남길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Q 촬영은 어땠나?

A 얼굴을 대놓고 찍은 적이 없어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누가 하라니까 한 것이지, 스스로 나서서 찍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내가 의외로 강제로 하라는 거 잘한다. 다행히 결과물도 굉장히 마음에 든다. 평생 내보이고 싶었던 에너지가 보이는 것 같다.


Q 그 에너지가 무엇인가?

A 속세의 인간이 아닌 얼굴. 천상을 오가는 만인의 연인이랄까.(웃음) 사진에 찍힌 주름이나 눈빛도 마음에 쏙 들었다. 주름은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흔적인데 잘 표현됐다. 또 내 나이에는 시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눈에 힘이 있는 그런 에너지가 보여야 하는데 사진을 보니 스스로 ‘뭔가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Q 인물이 눈빛이라면, 지금 한국 문화예술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지?

A 생명력이다. 쉽게 1등이 될 수 없는 지형적 조건, 그럼에도 왕이 되고 싶은 들끓는 욕망이다. 결정적일 땐 뭉치지만 대개는 개인으로 튀고 싶어 하는 에너지 말이다. 그 고유한 기질이 인터넷이라는 문명을 통해 제대로 발현됐다.


Q 초상의 작품명이 ’도망치는 미친년’이다.

A 내가 지은 건 아니고, 오래전 임근준 미술평론가가 나에 관해 쓴 글의 제목이다. 물론 내가 미친년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웃음) 여기서는 나라는 게 아니라, 내 작품 속 근대 여성의 운명을 대변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 시대를 지나는 동안 살기 위해 진짜 나를 숨긴 채 계속 얼굴을 바꾸고 계속 어디론가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여인의 삶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내 이미지도 비슷할 거 같다. 어딘가로 쫓아가다 숨고 달아나는, 숨 가쁜 작가로서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Q 사회적 함의를 담은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가령 억압된 시대 속 어르신들의 막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취지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무대에 올렸다. 그렇다면 현재 작품으로 남겨야 할 시대의 몸짓은 무엇인가?

A ‘몸을 열어라’다. 예전에는 노동을 하든 잔치를 하든 일상에서 자기의 움직임을 스스로 찾아갔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와 시스템 속에서 남이 주는, 우리 삶과 괴리된 몸짓을 하고 산다. 척추는 무거워지고 머리는 복잡해진다. 그래서 예전엔 수업할 때 뭘 따라 해보라고 했는데 이젠 ‘스스로를 찾아라’, ‘몸에 집중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성공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몸을 통해 좀 더 자기 자신에게 깊이 집중하고 건강해져야 한다.


Q 남의 시선에 벗어나 자신을 단단히 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남들이 안 좋아하게, 안주하지 않는다”고 했던 인터뷰도 생각나는데, 다름의 철학은 무엇인가?

A 작품을 안 좋아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나를 좋아하는 목적으로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스스로 이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 남의 시선과 다르더라도 살아내야 한다. 후배들한테도 맨날 누가 널 좋아하는지 생각하기 전에 네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가 정확해야 한다고, 싫다면 ‘그냥 싫어하세요’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받기보다 내가 주면 된다.


Q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춤은 어떤 의미인가?

A 내게 춤은 몸이 지닌 에너지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확장하는가의 문제다. 멋있는 동작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우주가 작동하는 에너지의 힘, 생명력을 표현하는 게 춤이다. 그 생명력을 주고받는 몸짓이 돼야 하고,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나 역시 혼자 추는 솔리스트도 잘하지만 함께하는 춤이 훨씬 즐겁다.


Q 시각장애인이나 왜소증을 앓는 이들과 무대를 꾸민 것도 같은 이유인가?

A 맞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저마다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옳다, 그르다의 기준을 떠나 춤추는 인간으로서는 모두 동일하다. 그리고 사회가 몸을 되게 값어치 없는 거로 만들어놨지만 춤을 출 때 인간의 뇌는 다르게 작동한다. 자기를 표현하면서 남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고 사고도 훨씬 유연해진다.


Q 앞으로 추구하는 안은미만의 파격과 실험은 무엇인가?

A 베니스에서 공연에 쓸 1만 개 넘는 나무 인형 조각을 만들었던 걸 계기로 미술관 지원 프로그램에 작가로 초대를 받았다. 이것 말고도 앞으로 열어야 할 세계가 많다. 영화 한 편을 만들고 싶기도 하고, 패션 숍을 해야 할 것도 같고. 하지만 이 모든 건 다른 장르가 아니라, 그저 춤을 다른 물질로 바꿔 추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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