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귀한 야생의 풍경을 찰나의 순간 세심하게 포착해내는 건 어떤 느낌일까.
불꽃 같은 줄무늬를 뽐내며 뛰어오르는 호랑이나, 가로등 불빛에 빛나는 너구리 같은 동물이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 살짝 뛰어오르는 작은 벌레가 숲속 통나무 아래 자리한 균류 자실체를 향해 기어가는 모습 등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톡토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작은 절지동물은 길이가 고작 2mm에 불과한 생명체로, 다리는 총 6개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톡토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뒤로 공중제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두루두루 서식하는 톡토기는 사실 환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박테리아,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을 먹이로 삼는 이들은 유기물 분해를 도와 토양의 품질을 개선한다.
독일에 사는 알렉시스 팅커-사발라스(17)는 베를린 외곽의 숲이 우거진 지역에서 톡토기가 점균류의 자실체를 향해 기어가는 놀라운 모습을 포착해냈다.
‘죽은 나무 밑 삶(Life Under Dead Wood)’이라고 이름 붙인 해당 작품은 올해 영국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야생생물 사진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적재적소, 적시에 포착’
팅커-사발라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언제나 내 마음속에 그려오던 모습이었다. 균류와 톡토기를 한 화면 안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적재적속에서 적시에 포착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마저도 너무 작아서 더욱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주 가까이 다가가 빠르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팅커-사발라스는 톡토기는 가만히 오래 있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팅커-사발라스는 서로 다른 초점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 36장을 합성하는 ‘포커스 스태킹’이라는 기법을 통해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 따르면 올해 ‘청소년 야생생물 사진 대회’에는 전 세계에서 4000여 점이 넘는 기록적인 수의 작품이 출품됐다고 한다. 이 대회는 10세 이하, 11~14세, 15~17세 등 총 3개 부문으로 나눠 심사한다.
그리고 각 부문의 우승자는 자동으로 대상 격인 ‘올해의 청소년 야생생물 사진작가’ 후보가 된다.
11~14세 부문
먼저 11~14세 부문의 수상작은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파르함 푸라흐마드(14)가 촬영한 ‘저녁 식사(An Evening Meal)’이다.
쿠퍼매가 다람쥐를 먹고 있는 모습을 포착한 푸르흐마드는 대도시 외곽에 사는 멋진 야생동물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큰 감동을 주는 사진이라고 자평했다.
푸르흐마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진을 통해 사람들이 우리 가까이 있는 자연에 눈을 뜰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10세 이하 부문
다음으로 10세 이하 부문에서는 스페인 출신 알베르토 로만 고메즈(8)가 촬영한 ‘새처럼 자유롭게(Free as a Bird)’가 선정됐다.
무거운 쇠사슬 옆에 앉은 검은딱새를 포착한 고메즈는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고 동식물과 이들의 서식지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고메즈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래야 이들도 존중받고, 보살핌받으며, 훼손되거나 멸종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한편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올해의 야생생물 사진작가’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폴린 로버트는 전 세계 청소년 사진작가들의 재능과 기술을 선보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로버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차세대 야생생물 사진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자신 주변의 자연을 되돌아보고 주목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저 단순한 사진 대회가 아니라는 게 런던 자연사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이렇게 출품된 사진은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연구자들에게도 전달된다. 이들은 사진을 살펴보고 생물종을 판별하며, 이를 통해 서식지 파괴 문제, 생물이나 이들이 사는 환경이 처한 문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로버트는 “물론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과 같은 더 광범위한 글로벌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자연을 더 잘 이해하기
‘청소년 야생생물 사진 대회’는 전 세계 누구나 참가비 없이 참가할 수 있다.
로버트는 “아울러 꼭 전문 카메라로 촬영할 사진일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으로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라면서 “또한 심사위원단은 사진 제작 시 사용한 기술을 바탕으로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올해 대상 수상자인 팅커-사발라스는 특히 야생생물 사진에 관심이 있는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고 했다.
그는 야생생물을 담은 사진, 특히 접사 사진은 시민들의 자연에 대한 이해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 곤충, 거미 및 작은 생물들이 존재하는지, 이들이 생태계, 심지어 도시에서도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팅커-사발라스는 “야생생물 사진은 이러한 생물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이해하고 배울 수 있도록 도울 멋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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