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일 대기자의 인사이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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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NEWS 2024-09-24 07:05:37 신고

3줄요약

[CEONEWS=조성일 기자] 반드시 물러서지 않겠다며 끝까지 저주하듯 폭우를 퍼붓던 하늘이 능청스럽다. 유난히 파란 도화지 위에 뭉게뭉게 구름까지 그려놓고선 들판까지 노랗게 물들이려고 한다. 지난여름이 몸과 마음에 할퀸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늑장 피운 가을을 반긴다.

나는 오늘도 산책을 나선다. 5시에 일어나 두어 시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 7시면 어김없이 그제도 어제도 걸었던 그 길로 접어드는 습관이다.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면면은 매일 다르다. 어제 비슷한 시간에 산책길에 함께 들어섰던 사람 대신 오늘은 강아지를 앞세운 노부부가 저만치 앞서간다.

나는 나의 이 같은 아침 루틴을 칸트식이라고 스스로 여긴다. 독일 철학자 칸트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차 한 잔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오전 7시부터 11까지 강의하고, 오후 1시까지 글을 썼다. 오후 한두 시에 점심을 먹으며 사람을 만났고, 30분 뒤 한 시간 동안 강변을 산책했다. 그리고 귀가하여 10시까지 책 읽고 글 썼다고 한다. 칸트는 이걸 40년을 한결같이 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하게 흉내를 낸다. 8시쯤 집으로 와서 샤워하고 잠시 쉬다 10시에 아점, 아니 고급스럽게 브런치를 먹고, 11시부터 글방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러고 오후 5시까지만 일을 한다. 저녁 먹을 시간이기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절대 야근(?)을 하지 않는다. 직장생활 할 때 싫을 만큼 야근했던 경험 때문에 세운 원칙이다. 나는 이걸 이제 5년째 실천하고 있다. 칸트만큼 오랫동안 따라 하기는 글렀지만 그래도 할 때까지 해볼란다.

얘기가 빗나갔다. 천천히 걷기, 즉 산책이 주제인데 느닷없이 칸트가 등장했다. 그래, 이번 칼럼의 주제는 주제가 없는 게 주제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횡설수설해 볼란다. 그래도 이정표는 봐야 사고를 막을 있을 터이니, 그 정도로만 하고 늘 가던 길을 걷는다.

나는 아침마다 산책하면서 늘 마주하는 게 있다. 북한산이다. 내가 사는 동네의 야트막한 산책길을 늘 북한산이 지켜보고 있다. 오늘은 정말 깨끗하게 손끝에 잡힐 듯 가깝고 선명하게 보인다.

최근 나는 페이스북에 이 다양한 변주의 북한산 사진을 포스팅한 적이 있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스폿에 가서 찍으면 북한산 모습은 영락없는 독도다. 독도가 지금 우리 사회의 핫이슈 아닌가. 나는 그 스폿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모습을 독도에 비유하곤 했다. 흐릿하면 혹시 일본에게 빼앗기는 건 아닌지, 선명하면 그럼 그렇지 우리 땅이지 한다.

내가 산책하면서 북한산을 제대로 바라본 게 언제부터인가 생각해 봤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솔직히 말해 올해가 아닌가 싶다. 아마도 늘 그 자리에 서서 사방을 휙 둘러보긴 하지만 그냥 훑어보는 거였고, 무엇을 봤는지조차 기억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독도 얘기가 많이 나올 즈음이었을 거다. 무심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찍힌 사진을 확인하다 독도를 봤던 거다. 그날 이후 난 매일 그 자리에 멈춰서서 북한산을 바라본다. 늘 사진을 찍는 건 아니다. 가끔 찍는다. 그러다 문득 365일 매일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북한산을 찍으면 어떨까 싶다.

예전에 궁리출판사 이갑수 대표가 매 순간 변하는 인왕산을 사진으로 중계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매일매일 인왕산을 찍어 낸 책 인왕산 일기가 떠올랐다.

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 일은 해보고 싶다는 희망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괘념치 않을 용기와 성실이 필요하다. 나도 한 성실한다고 자부하는데 이걸 과연 해낼 만큼인가.

일단 그 꿈은 보류다. 언젠가 다시 끄집어내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보류다. 다만 오늘부터 매일 아침 북한산을 제대로 바라보아야겠다. 어제와 다른 감상을 새기고, 내일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예상해 본다.

이 횡설수설을 마치며 북한산에 얽힌 이야기 한 토막도 풀어놓아야겠다. 북한산 정상 백운대에 가면 최남선이 쓰고 정재용이 읽었다는 암각을 만날 수 있다. 정재용은 삼일운동 당시 탑골공원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분이다. 이렇듯 북한산은 우리의 역사를 품고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오늘부터 걷기 속도를 조금 늦추어야겠다. 애초 나의 이 산책은 운동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산책 아닌가. 천천히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제대로 보고 싶어서다. 벌써 산책길 주변의 이름 없는 들풀이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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