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치열한 낙관②: 파리로부터

[아름다운 것] 치열한 낙관②: 파리로부터

문화매거진 2024-09-20 10:36:27 신고

3줄요약

[아름다운 것] 치열한 낙관①: 직업 인터뷰에 이어 

[문화매거진=MIA 작가] 처음 프랑스 파리를 여행한 후로 일 년 반 정도가 지나 다시 갈 기회가 생겼다. 첫 여행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주어진 시간에 기대어 발생한 우연이 낳은 기회였다. 그동안 프랑스어를 조금 배우고, 프랑스 문화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콘텐츠를 흘긋하며, 거기서 살기 위한 방도가 어떤 게 있을지 고민하면서 ‘언젠간 가리라’ 생각하긴 했어도, 두 번째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이번에도 결국 다시 돌아와야 하는 짧은 여행이 목적이었지만, ‘이렇게 횟수가 쌓이다 보면 정말 내가 원하는 그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감에 조금의 현실성을 부여하기에는 충분했다. 

▲ 2023년 3월, 파리 / 사진: MIA 제공
▲ 2023년 3월, 파리 / 사진: MIA 제공


나는 처음부터 파리가 좋았다. 무작정 마음에 들었다. 유럽에 갈 기회가 생겼을 때, 바로 프랑스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마음이 시키는 대로 떠난 곳에서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건 아주 즉각적인 감동이었다. 직관이 예견한 미래였다. ‘METRO’ 글자가 크게 보이는 지하철 사인, 예쁜 가로등 모양, 테라스에 나와 앉아 식전주를 마시는 사람들, 19세기 작품에서 본 거리와 건물들이 그대로 펼쳐져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채워졌다. 

단순히 이국적인 풍경이라서 그렇다고 하기엔, 보이는 광경 외에 다른 문화권도 궁금하다거나 알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대로 완전했으며, 거기서 더 바랄 필요가 없다는 느낌만은 분명했다. 특히 큰 감동의 원천은 미술관이었다. 한 곳, 한 곳을 갈 때마다 ‘그림이 있을 만한 곳에 있다’는 생각이 반복되었다. 어색한 땅 위를 비집고 억지로 세워진 건물이 아니라, 작가의 시간과 삶이 한 치의 어그러짐 없이 그대로 녹아든 곳 위에 때가 되어 솟은 섬처럼. 한국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파리에 직접 가기 전까지 나는 막연히 해외살이나 여행에 특별한 로망이나 낭만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그동안 단지 다른 곳으로 떠나는 행위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는 진단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시간만 되면 ‘어떻게 해야 떠날 수 있을까'란 생각을 반복하였으며, 이 두 번째 기회는 충분히 가슴이 뛸 만한 일이었다.

▲ 2024년 8월, 파리 / 사진: MIA 제공
▲ 2024년 8월, 파리 / 사진: MIA 제공


그리고 의외의 요구에 맞닥뜨렸다. 이번에는 왜 이토록 파리가 그리운지, 기회만 있다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가능한 투명한 이유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가령 건물 디자인이 예쁘다거나, 미술관이 많다거나, 예술가의 숨결이 느껴진다거나,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거나 하는, 어쩐지 시한부 같은 이유 말고 좀 더 ‘본질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그 이유를 발견하면 떠나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반대로 아주 쉽게 떠나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낱 기분에 속지 않았다고 여길 만한 마음의 민낯을 봐야 한다는 기분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았다. 기대감을 애써 누르며 ‘첫 번째 여행만큼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파리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속지 말자’는 문장을 되뇌었던 것 같다. 

확실히 첫 번째 여행과는 달랐다. 그런데 더 좋은 방향으로였다.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을 누르려 했던 노력이 무색해졌다. 작년에 방문한 미술관들의 구조는 물론 작품의 종류가 대거 바뀌어 있었으며, 새로 반입된 작품도 곳곳에 있었다. 익숙한 작가의 이름을 낯선 스타일의 그림-전혀 그가 그렸을 것 같지 않은-에서 발견하였고, 유명한 그림책 작가의 그림을 현대 미술관의 한 벽면에서 만났다. 내가 사랑하는 미술관들은, 흐르며 숨 쉬고 있었다. 이제는 매년 와야 할 이유까지 발견한 셈이다.

들라크루아 미술관도 전체적으로 작품 목록이 많이 바뀐 곳 중 하나였다. 특히 작년에 보았던 그림 중 다시 보고 싶은 그림 한 점이 있어 직원에게 볼 수 없는지 물었더니, 그 그림은 지금 남프랑스로 갔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상상이 이어졌다. ‘다음날 나는 그 그림이 걸린 미술관을 찾아 남프랑스로 떠난다, 마치 루벤스의 그림 한 점을 보기 위해서 떠나는 네로가 된 것처럼, 그것이 삶의 전부라 생각하는 사람처럼.’

▲ 2024년 8월, 파리 / 사진: MIA 제공
▲ 2024년 8월, 파리 / 사진: MIA 제공


사실 당시에 그 도시가 품고 있던 분위기 자체보다 인상적인 건 없었다. 이제 막 올림픽이 끝나고 패럴림픽 개막을 앞둔 파리는 소란스럽기보다 평화로웠으며, 적당한 활기를 띄었고 무엇보다 날씨가 굉장히 좋았다. 근교에서 하루 투어를 담당한 가이드를 통해 이번 올림픽에 관해 프랑스 사람들의 생각이라든가 정부와 시민들의 정치적인 입장 차이를 전해 듣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 앞에는 온통 날 취하게 만드는 풍경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늘은 새파랬으며, 때마다 모습을 바꾸는 구름은 마치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 것처럼 뚱뚱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떠다녔다. 맑은 공기 사이로 파고든 깨끗한 햇빛이 물살에 비쳐, 눈이 멀 것 같았다. 정확히는 그 물리적인 광도 보다 믿기지 않는 아우라 때문에. 여러 번 눈을 감았다 뜨고, ‘내가 여기 있다'는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애썼다. 친절한 행인과 상인들과 대화할 때마다 마음이 누그러졌다. 

귀국할 날을 앞두고는 비가 왔다. 여름의 끝에 남은 열기를 식히도록 충분히 내렸다. 적당히 맞고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만큼이었다. 그 광경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늦은 밤 카페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비가 내리는 풍경을 30분 정도 바라보았다.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와 빗소리가 백색 소음처럼 재생되는 밤이었다. 머물렀던 10일은, 전부 완벽한 날이었다, 예술과 삶의 분기점을 찾을 필요가 없는.

한국과 프랑스를 이성적이며 평등한 조건에서 비교하기에 완전히 균형을 잃었다. 나는 또, 헛된 꿈-이곳이 아닌 저곳은 다르다-에 부푼 채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이 낭만과 칭찬 일색인 회고를 나는 훗날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도, 아무래도 좋다. 여기 적은 모든 것은, 그때만큼은 진짜였으니까.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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