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그가 원수 집안의 아들이라니. 비탄 속에서 줄리엣은 이렇게 외친다. “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 (O Romeo, Romeo! wherefore art thou Romeo?)- ‘로미오와 줄리엣’ 중에서
짧은 대사다. 하지만 줄리엣의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전달된다. 로미오를 향한 사랑, 그리고 로미오의 가문을 향한 원망이 한 줄 대사에 압축적으로 녹아있는 것. 게다가 대사 한 줄에 ‘로미오’라는 이름은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된다. 그런데도 단조롭지 않고 오히려 감정의 절실함과 리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여타 번역본의 경우 같은 대사에서 ‘로미오’를 한두 번으로 정리하거나, 리듬감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번역자마다 의도가 다르고 각자의 매력이 있다. 위 번역의 주체는 연세대학교 최종철 명예교수다. 그는 “셰익스피어는 쓸데없이 대사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지만, 두 가문은 원수지간입니다. 줄리엣이 ‘로미오’를 세 번이나 되풀이하는 이유는 그를 부르는 것과 동시에 그의 가문까지도 아우르는 거죠." 최 교수는 줄리엣이 '로미오'를 호명하는 데에는 사랑과 미움, 갈등이 들어있고, 그래서 "배우는 공연할 때 세 번의 로미오에 각각 다른 감정을 실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3일 서울시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셰익스피어 전집 완역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1993년 ‘맥베스’ 출간을 시작으로 셰익스피어의 말을 옮겼던 최종철 교수가 30년 만에 전집 완역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정도로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라면서도 “셰익스피어의 시행들이 우리말 운율을 타고 춤출 때의 기쁨에 끌려 여기까지 왔다”라고 말했다.
햄릿의 75%가 '시'라고?
30년 걸려 '전집 운문 번역'한 이유
‘우리말의 운율을 타고 춤출 때의 기쁨’이라는 소감은 이번 전집 번역의 특징을 그대로 설명한다. ‘전집 운문 번역’이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번역됐지만 대체로 의미 위주의 산문체 대사로 옮겨졌다. 문제는 400년 전 셰익스피어는 희곡의 절반 이상을 압축적이고 리듬감 있는 ‘운문체’로 썼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햄릿’의 75%가, '오셀로'의 80%와 ‘맥베스’의 95%가 운문체다. 이때 셰익스피어가 주로 사용한 형식을 ’약강 오보격 무운시‘(弱強五步格 無韻詩)라고 하는데, ’약하고 강한 발음이 한 줄에 다섯 번 반복되며 말끝에 압운(라임)은 없는 형태’를 말한다. 자연스럽게 영어의 리듬감이 살아나지만 끝의 운은 맞추지 않아 비교적 자유로운 대사 집필이 가능한 것. 말하자면, 셰익스피어는 음악적이고도 압축적인 '고밀도 텍스트'를 구사했다.
“셰익스피어는 인물의 계급이 높거나, 감정이 격하거나, 아름답거나, 의미를 강조하고자 할 때 주로 시 형식을 썼습니다. 결국 일반 언어보다 격식이 있는 내용을 전달할 때는 운문을 쓴 거죠. 반대로 낮은 계급이나 코미디의 경우 산문을 씁니다. 물론, 왕도 산문을 쓰긴 했습니다. 이 약강 오보격 문체를 쓸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닐 때요. 리어왕이 미쳤을 때처럼요. 그래서 리어왕은 (문체가) 왔다 갔다하죠." "운문체를 산문체로 풀어쓰면 대사가 늘어지면서 극도 늘어나죠. (원전의) 리듬감뿐만 아니라 시적인 상상력과 깊이도 온전히 느끼기 어려워요."
말하자면 최 교수의 '운문 전집 번역'은 셰익스피어의 운문체를 ‘한국적인 운율’로 되살리는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1993년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서도 밀도 높기로 정평난 ‘맥베스’ 번역이 그 시작이었다. 이때 그는 “시행착오 끝에 한국의 3.4조가 ‘약강 오보격 무운시’를 옮길 수 있는 데 최적”임을 알게 됐다고. 이렇게 되면 한글로도 음악성을 느낄 수 있고, 문장의 압축성이 살아나면서 보다 다양한 감상과 해석도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운문 번역은 왜 그동안 드물었던 걸까.
애초에 외국어의 운율을 옮기는 것은 창작에 버금가는 일이다. 하지만 최 교수는 역사적 배경에서도 그 이유를 찾았다. 부분 번역까지 포함하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한국에서 1910년대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서구 문화가 일본을 경유해 들어오다 보니 ‘직구 번역’을 못하고 일본의 번역본을 따라가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하필 일본어는 히라가나, 가타카나, 한자를 사용해 영어와 체계가 크게 달라 산문 투의 번역이 많았던 거죠." 반면 일본어와 달리 "한글은 세계의 소리를 옮기기에” 용이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현대 한글은 24자로, 서양 알파벳이 26자입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사실 비슷해요. 그래서 한글로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고 (과거 세대가) 착안할 수 있었을 텐데...” “제가 ‘맥베스’로 처음 운문 번역을 시도한 거죠.” “100년 동안 이어져온 일본에 대한 문화적 독립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 소리가 잘 들리는가, 잘 읽히는가는 독자의 몫입니다만...”
16세기 태어난 '현대인' 셰익스피어
2020년대 판매량 뛰어오른 '맥베스'
셰익스피어는 16세기 태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40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새롭게 읽힌다. 왜 아직도 셰익스피어일까. 최 교수는 인간 감정의 진실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 셰익스피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리어왕은 딸에게 집착하는 아버지가 나오는데 현대사회에서도 그런 이상한 아버지들이 있다”라고 했다. “셰익스피어가 구현했던 인간의 심리 상태는 사실 크게 진전이 없는 거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그래서일까? 최근 최종철 교수가 번역한 ‘맥베스’의 판매량이 뛰어오르는 일이 있었다. 이전부터 현직 대통령 부부의 관계를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관계’에 비유하는 여론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된다. 사례의 내용을 떠나 400년이 지난 지금도 독자들이 셰익스피어를 현실의 거울로 삼고 있다는 증거다.
최 교수는 올해 75세다. 그중 30년 세월을 셰익스피어의 말을 옮기고, 강의하는 데 써온 것이다. 오랜 번역을 마친 그는 “나이가 드니 귀가 잘 안 들리고, 눈이 시립니다”라며 웃었다. 노화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최 교수의 이날 강의는 밀도 있고, 목소리는 다정하고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셰익스피어의 단어들이 있다"면서 "건강이 허락한다면 10년 후 개정판을 내고 싶다"라고 했다.
“셰익스피어를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은 다릅니다. 읽은 사람은 내면의 변화가 반드시 찾아오죠.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이런 거구나’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올 거예요. 그러니 특히 소리를 내면서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겁니다.”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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