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마크 로스코의 대규모 전시를 보기 위해 찾은 루이 비통 재단미술관은 세계 주요 도시의 미술관에 견줘도 손색없는 역량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고, 밀란에 있는 폰다치오네 프라다는 밀란 패션위크에 갈 때마다 반드시 들르는 스폿으로 손꼽힌다. 한편 까르띠에도 1984년부터 40년 동안 운영하고 있는 현대미술재단이 300명 이상 되는 아티스트의 작품 1000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능 있는 예술가를 발굴해 직접 상을 주는 패션 하우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벌써 20년 넘게 열리고 있는 에르메스 재단미술상은 서도호, 정금형 같은 세계적인 작가를 배출해 국내 예술계에서 손꼽히는 미술상이 됐고, 로에베는 조너선 앤더슨의 아이디어로 2016년에 처음 시작한 공예상을 통해 세계 곳곳의 공예 작가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기회를 주고 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한 공예 작가 또한 로에베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후 작품을 소장하고 싶다는 이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진 걸 보면 회화 작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시 채널이 부족했던 공예 작가에게는 이런 예술상이 또 다른 기회인 셈.
그런데 패션계는 왜 이토록 예술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걸까? 냉정하지만 먼저 자본주의 관점에서 떠올릴 수 있는 답은 후원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CSR) 차원에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패션 하우스는 모두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인데 대부분의 기업은 사회공헌활동이 의무이므로 하우스 이미지에 어울리는 예술 분야 지원을 통해 사회공헌활동과 더불어 간접 마케팅까지 노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패션과 예술의 관계가 꼭 자본주의로 맺어진 건 아니다. 이 둘은 태생적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마드모아젤 샤넬은 장 콕토와 막역한 사이였고,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당대 초현실주의 아티스트의 일원이었던 것처럼 1984년에 설립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역시 당시 까르띠에 인터내셔널 사장과 절친한 친구였던 조각가 세자르(Ce′sar)가 제안한 데서 시작됐다. 물론 콧대 높은 예술계가 늘 패션에 우호적이었던 건 아니다. 순수예술의 기조가 강했던 과거에는 지금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1981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지안니 베르사체 전시는 ‘진지한 예술’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고, 90년대 초반 헬무트 랭이 뉴욕 예술계에 진출하려 했을 때도 평단의 싸늘한 반응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최근 이 둘의 기조가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로에베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며 서울을 방문한 조너선 앤더슨의 인터뷰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매장 곳곳에 예술 작품을 전시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소개하며 그는 “지금 세대는 단순히 로고 때문에 1만2000유로짜리 가방을 사지 않는다.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지지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하우스의 예술적 코드가 사람들의 소비심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그는 “예술계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궁극적으로 예술도 럭셔리와 같다. 1%를 위한 것이다. 앞으로 10년 안에 패션과 예술은 점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두 분야 모두 광고와 홍보를 위해 서로 의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 패션계는 예술성이 필요하고, 예술계는 패션계의 화제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는 패션과 예술의 관계는 앞으로 더 끈끈해질 일만 남았다. 어쩌면 하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루이비통 재단미술관을 개관할 때 LVMH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는 그곳을 “꿈이 실현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LVMH 그룹의 하우스들이 “인본주의적 전통에 스며든 ‘생활 속의 예술(Art de Vivre)’에 오랜 세월 기여했다”고 말했다. 패션을 생활 속 예술이라 칭하고 미술관을 통해 꿈이 실현될 거라고 믿은 그의 말 속에는 언젠가는 예술로 인정받고 싶은 패션의 열망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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