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리의 그림책 이야기] 추억, 우리가 함께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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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리의 그림책 이야기] 추억, 우리가 함께한 시간

독서신문 2024-08-01 14:00:00 신고

메피스토? 메피스토펠레스!

중학교 1학년 겨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절망하고 번민하는 베르테르의 마음에 너무나 공감했습니다. 특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고 괴로우면 삶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베르테르를 저는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묵묵히 일기장에 베르테르의 독백을 받아쓰면서 그를 추모했습니다. 

2학년이 되어 『파우스트』에 도전했습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고 받은 큰 충격과 감동이 채 식지 않은 때였습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외국어로 듣는 오페라만큼이나 어렵고 지루했습니다. 결국 저는 『파우스트』를 읽다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파우스트의 영혼을 두고 내기를 걸었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이름만큼은 또렷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버림받은 악마, 떠돌이 개가 되다!

책 『메피스토』 (루리 글/그림, 비룡소 펴냄)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팔았던 파우스트는 결국 신에게 구원받았습니다. 하지만 악마 메피스토는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루리 작가의 그래픽노블 『메피스토』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신에게 버림받은 악마 메피스토는 다시 떠돌이 개가 되었습니다. 이제 떠돌이 개 메피스토가 한 소녀를 만납니다. 소녀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떠돌이 개 메피스토에게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소녀는 떠돌이 개가 악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소녀에게도 아무 문제가 아니었죠. 그리고 둘은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처음 만난 날부터 늙고 병이 들어도 말입니다. 둘은 외롭고 버림받았고 불행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메피스토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늙고 병든 소녀가 이제 더는 메피스토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메피스토는 금지된 마법을 쓰고 맙니다. 소녀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서. 

만약에 신과 내기를 한다면

여러분은 신과 내기할 만한 배짱이 있습니까? 사실 감히 신과 내기를 하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짱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여러분이라면 누구를 위해 신과 내기할 수 있을까요? 질문을 더 쉽고 분명하게 바꾸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나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감히 신과 내기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구원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걸 수도 있습니다. 기꺼이 목숨까지도요.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이가 악마 메피스토라면? 그래도 메피스토를 위해 신과 내기할 수 있을까요?

내가 사랑하는 이가 메피스토라면?

메피스토는 악마였던 떠돌이 개입니다. 책 『메피스토』가 특별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과거 악마였던 떠돌이 개와 현재 듣지 못하고 가난한 소녀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서로를 위해 감히 신에게 도전하는 이야기가 바로 『메피스토』입니다. 

삶은 때로 너무나 남루하고 비참하며 잔인합니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고아가 되는데도 전쟁을 벌인 사람들은 여전히 권좌를 지킵니다. 호의호식하고 승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죠. 한편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다른 한편에서는 엄청난 부를 쌓고 모른 척 살아갑니다. 

루리 작가는 악마였던 떠돌이 개 메피스토와 가난하고 듣지 못하는 소녀의 기적 같은 사랑을 들려줍니다. 세상은 비정하고 삶은 잔혹하기에 그들의 사랑은 더욱 고귀합니다. 살아온 날들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웠어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추억이기 때문입니다. 단언컨대 사랑하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삶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견뎌낸 시간입니다.

이루리(작가/세종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루리 작가
/세종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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