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의 까칠한 축구]2002 신화가 만든 괴물 홍명보, 신화의 종말을 선언하다

[최용재의 까칠한 축구]2002 신화가 만든 괴물 홍명보, 신화의 종말을 선언하다

마이데일리 2024-07-11 07: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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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한국프로축구연맹
홍명보 감독/한국프로축구연맹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한국 축구에서 '홍명보'라는 이름이 가진 영향력은 엄청나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 미국 월드컵, 19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까지 4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았고, A매치 136경기를 뛰었다. 차범근과 함께 한국 A매치 출장수 역대 공동 1위다.

홍명보 커리어 최고의 업적은 역시나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축구를 넘어 한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영광이자 환희였다. 이 역사를 이끈 한국 대표팀의 주장이자 위대한 리베로. 한국의 4강 신화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영웅이다. 한국 축구에서 가장 위대한 수비수라는 평가는 과장되지 않았다. 맞다. 분명 홍명보라는 선수는 위대한 선수였다.

하지만, 현역 은퇴 후 행보는 위대함과 어울리지 않는다. 아쉬움이 더욱 컸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영웅은 변했다. 기대한 것과 많이 다르게. 2002 4강 신화가 뒤를 받쳐줬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단단한 까방권이 막아줬다. 대한축구협회(축구협회)도 선수 영웅을 감독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특혜를 제공했다. 홍명보는 괴물로 변해갔다.

한국 축구는 홍명보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과정을 무시하고, 절차를 무시하고, 상식에 어긋나도 홍명보가 중심에 있다면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모두가 맞다고 박수를 쳤다. 모두가 잘한다고 동조했다.

2005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홍명보는 코치진으로 합류했다. 그런데 1급 자격증이 없는 상황에서 대표팀 코치가 됐다. '무자격 논란'이 일어났다. 그때 축구협회는 "지휘권을 갖지 않는 보조 지도자 역할이기 때문에 홍명보 코치의 1급 자격증 취득 여부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형평성 문제는 조용히 사라졌다.

200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감독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감독' 홍명보의 커리어가 시작됐다. 8강이라는 성과. 지도자 홍명보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회였다.

그리고 이어진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4강에서 골키퍼 교체라는 치명적 실책을 저지르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결승에 가지 못했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경질 당했을 것이다. 홍명보에게는 그런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이런 선택은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으로 만회가 됐다.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위대한 한국 축구의 역사다. 감독으로서 커리어 최대 성과였다. 그런데 이때부터였다. 부작용이, 역효과가 생기기 시작했다. 홍 감독을 향한 '맹신'이 시작된 것이. 홍 감독이 하는 일은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세뇌 당하기 시작한 것이. 무조건적인 찬양이 시작된 것이.

이 맹신은 냉정함을 잃었고, 판단력도 잃었다. 성인팀을 단 한 번도 지도해보지 못한 홍 감독에게 성인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 지휘봉을 맡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예고된 참사였다. 2014 브라질 월드컵. 21세기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못한 월드컵이 됐다. 한국 축구를 2002년 그 뜨거웠던 신화 이전으로 후퇴시킨 것이다.

이 역시 홍 감독 본인의 선택이었다. 누굴 탓하겠는가. 대표팀을 지도했던 짧은 기간을 탓하지 않겠다고 했다. 축구협회는 옆에서 그저 절대적인 지지를 했을 뿐.

여기서 축구협회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월드컵 참패에도 홍 감독 유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야말로 한국 축구는 대혼란에 빠졌다. 월드컵에서 참패한 감독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준다고 하니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홍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이었으면 바로 경질이다. 논란이 커지자 홍 감독은 결국 사퇴했다. 여기서 확실히 알 수 있다. 홍 감독과 축구협회의 관계, 그들의 의리.

브라질 월드컵 실패 후 홍 감독은 방황했다. 한국을 떠나, 축구협회의 지원을 멀리한 채 새로운 도전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홍 감독은 중국 항저우 뤼청 지휘봉을 잡았다. 1부리그였던 팀은 2부리그로 강등됐다. 팀에서 나왔다. 브라질 월드컵 이후 홍 감독이 한 일은 이게 전부다. 어떤 경쟁력도 입증하지 못했다.

홍명보 전무이사/대한축구협회

하지만 축구협회는 그를 다시 모셔 왔다. 영웅 대접도 잊지 않았다. 의리. 브라질 월드컵 실패 후 약 3년, 축구협회는 2017년 11월 홍 감독을 전무이사로 선임했다. 화려한 컴백이었다. 이전까지 행정 경험이 '전무'한 홍 감독을 축구협회 행정의 '수장' 전무이사로 파격 발탁한 것이다. 여기에 전무이사를 보좌하는 사무총장직을 신설하는 노력까지 더했다. 홍 전무이사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보좌하며 열심히 일했다.

당시 홍 전무이사는 "지금 지도자 생각을 접었다. 구단에서 제안이 와도 옮기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3년 만에 깨졌다. 홍 감독은 2020년 12월 울산 HD 감독으로 떠났다. 현대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홍 감독은 K리그1 2연패를 달성했다. 전북 현대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시기, 울산의 독주가 시작됐다. 단연 K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섰다. 성인팀 감독으로서 최초의 성과였다.

자신감을 얻은 것일까. 항상 무모한 자신감은 무도한 도전을 하게 만든다. 그는 다른 쪽을 다시 쳐다보기 시작했다. 대표팀이다. 자신의 한이 남아 있는 대표팀. 2014 월드컵의 상처가 남아 있는 대표팀. 그 한을 풀고 싶은 마음은 백번 이해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나 비정상적이지 않은가. 그 절차가 너무나 뒤틀리지 않았나. 아무리 대표팀 감독이 하고 싶어도, 이런 방법은 아니지 않나. 축구협회 행정의 구멍이 보였고,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나.

홍 감독은 울산 감독을 하는 내내 대표팀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몇 번이고 약속했다.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울산 팬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랬던 그가 이 이사를 만난 지 10시간 만에 대표팀 감독을 수락했다.

2002 신화 주역 홍 감독의 영향력은 이 이사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만들었고, '면접 없이' 대표팀 감독이 될 수 있는 초유의 길을 열어줬다. 그리고 월드컵 본선에 간다면,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을 2번 지휘하는 감독이 된다.

그는 약속을 깼다. 거짓말을 했다. 이에 대한 울산 팬, K리그 팬들의 배신감은 엄청났다. 10일 열린 광주FC와 경기에서 팬들은 '축협의 개 MB', '우리가 본 감독 중 최악', '피노키홍', '아마노 홍', '명청한 행보' 등의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 이들의 분노가 느껴지는가. 부끄럽지 않은가.

분노한 울산 HD 팬들/마이데일리 DB

경기 후 열린 기자회견. 대표팀 선임 발표 후 무엇이 두려웠는지 뒤로 숨었던 홍 감독이 드디어 앞으로 나왔다. 모두의 눈과 귀가 홍 감독에게 쏠렸다. 도대체 왜? 10시간 만에 배신자가 됐는지.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개인적인 이유였다. 야욕이었다.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선택이었다. 2014년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본심을 드러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내 축구 인생 마지막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강한 승부욕이 생겼다. 나를 버렸다.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 그래서 마음을 바꿨다."

이 말로 설득이 될 거라 생각했나. 오히려 분노의 강도만 높였다. 도전하는 것을 말리지 않는다. 그런데 왜 자신의 도전을 위해 남을 밟고 가는가. K리그와 울산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으면서, 자신의 도전은 응원해 달라고 한 것인가. 어떻게 남에게 피눈물 흘리게 해 놓고 자신의 영광을 찾아 도전하겠다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나. 너무 이기적이다. 너무 뻔뻔하다.

왜 홍 감독의 도전을 위해 K리그와 울산이 희생해야 하나. 얼마나 K리그와 울산을 무시했으면 이렇게 할 수 있나. 남을 밟고 시작하는 도전은,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박수를 받을 수 없고,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절대로. 대표팀의 근간을 무시하는 자가 대표팀 감독이 되는 것도 참 아이러니다.

그리고 묻고 싶다. 대표팀 감독으로 가는 과정에서 당당한가. 전력강화위원회에 정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이사의 독단적인 결정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면접 없이 무혈입성한 것에 떳떳한가. 이것이 진정 한국 축구를 위한 길이라 생각하는가.

이런 뒤틀린 과정을 거친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인정할 수 없다. 홍 감독을 선임한 그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인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진정 대표팀 감독이 하고 싶으면 올바른 과정을 거친 뒤 당당하게 입성하시라.

대한민국 핑계는 한국 축구 팬들을 더욱 모욕하는 것이다. 왜 축구 팬들의 동의와 공감도 얻지 못했으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려 하는가. 한국 축구는, 한국 대표팀은 홍 감독의 것이 아니다. 정 회장의 것도, 이 이사의 것도 아니다. 한국 축구 팬들의 것이다. 몇몇 세력들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시라. 그런 시대는 지났다. 축구 팬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분노의 목소리를 낸 울산 팬들은 한국 축구 팬들이 아닌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이라면 이들도 품어야 하지 않나. 버리고 가면 끝인가. 울산 팬들이 아니라 대부분의 축구 팬들의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아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다.

신화는 꼭 아름답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신화 속에도 어둠은 있다. 아픔도 있다. 신화라는 힘을 등에 업고, 변질되는 영웅을 많이 봐 왔다. 이런 이들이 힘을 가지고 판을 흐린다면. 방법은 하나다. 신화의 종말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 고리를 끊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물, 새로운 활기를 찾아야 한다. 최소한 면접을 봐야 대표팀 감독이 될 수 있는 상식이 통하는 시대로.

2002 4강 신화. 22년이나 흘렀다. 위대한 역사, 이제 아름다운 추억으로 보내주자. 더 이상 2002 후광으로 한국 축구를 장악하려는 이들을 용납하지 말자. 다른 경쟁력을 보자. 다른 가치를 더 눈여겨보자. 더 이상 당하지 말자. 더 이상 괴물을 만들지 말자.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미래도 없다. 추억은 추억일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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