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을 달지 않고 내용으로 승부하는 서울 시내의 맛집 4곳

간판을 달지 않고 내용으로 승부하는 서울 시내의 맛집 4곳

에스콰이어 2024-07-09 00:00:00 신고

place. 01 / 간판 없는 햄버거집
이 기사를 기획하게 된 건 순전히 이 집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등촌동에 묘한 요소가 많은 햄버거집이 있다는 풍문이 돌았다. “할머님 한 분이, ‘올드훼션드 햄버거’를, 아주 싸게 팔며, 상호는 없다.” 어느 하나 흥미를 돋우지 않을 구석이 없었다. 전화번호도 없고 영업시간도 없이 NPC처럼 붙박여 있던 가게는 시대에 맞게 포털 사이트에 이름과 정보를 등재했는데 재미있게도 ‘간판 없는 햄버거집’이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옛날에는 케첩과 양배추, 달걀 프라이가 들어간 햄버거를 은박지에 싸서 파는 분식집이 제법 있었다. 학교나 교회 앞처럼 사람이 모이는 곳에 주로 보였는데 간판 없는 햄버거 가게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길목에 있다. 그 연유는 한 맥락으로 설명된다. “원래는 이태원에서 돈가스랑 샌드위치, 아이스크림 같은 경양식을 팔았어요. 자리를 잘 잡고 있었는데 88올림픽을 앞두고 쇼핑타운을 짓는다고 다 물러나게 된 거죠. 집 근처에 똑같은 가게를 열었다 점점 여러 메뉴를 만들기가 힘들어서 햄버거 가게를 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예전 간판을 떼고 40년 가까이 한곳을 지켰다. 실내에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광범위한 시간 속의 재즈와 팝송이 흐르고, 붓글씨로 직접 쓴 메뉴판과 오래도록 가꾼 화초가 가게를 구성하는 전부다. 진짜 노스탤지어, 진짜 빈티지다. 메뉴는 차 종류를 빼면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다. 치즈버거와 에그버거가 2000원이고 치즈와 에그를 합친 버거는 2500원이다. 엄청난 맛은 아니지만 ‘이 가격에 이렇게 맛있다고!’ 호들갑은 떨 수 있다. 마가린으로 구운 번에 납품 받은 패티, 달걀과 치즈, 양배추와 오로라 소스가 들어가는데 오랜 경험치 덕분인지 맛이 모나지 않는다. 팥빙수도 얼음과 팥, 프루츠 칵테일의 소박한 삼박자에 생크림이라는 ‘킥’을 얹어 평범함 너머로 끌어올렸다. 80이 넘은 사장님은 여전히 건재하고 ‘수고비가 겨우 남는’ 가격도 웬만하면 유지될 것이며 간판과 인테리어가 바뀔 일도 없다.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려는 가게가 하나쯤 있다는 것, 그 이유만으로 발걸음이 닿는 곳이다.
location :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53가길 15
opening hour : 월~토 09:00~18:00

place. 02 / 고미태
거칠게 표현하자면 일본의 한적한 동네 어딘가에 있는 가게와 닮았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자면 일본 드라마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의 분위기에 〈미스터 초밥왕〉의 패기와 장인정신을 몇 국자 떠 넣은 듯하달까. 고미태는 계절별로 제철 재료와 그에 어울리는 면을 뽑아 만든 창작 면 요리를 선보인다. 하루 50그릇 한정으로 판매하기에 조기 종료가 일상이고, 새 메뉴를 만들기 위해 가게 문을 닫는 기간이 많은 이들의 애를 태운다. 원목과 아이보리 톤의 따뜻하고 여유로운 느낌의 인테리어 안에는 철저한 계산이 숨어 있다. 평균 앉은키를 고려한 좌석, 혼자 불편하지 않게 먹을 수 있을 만큼의 테이블 너비, 팬데믹 종식 아래 이제는 사라진 개인 위생용품 같은 것들 말이다. 임산부와 아이를 위한 별도의 의자와 식사 도구를 놓을 때 ‘혹시 왼손을 쓰시면 말씀해주세요’라고 묻는 심정적 배려까지. ‘장인정신’을 칭찬하면 권민택 대표는 이 모든 게 ‘무대연출’에 가깝다고 말한다. “제가 민머리에 하얀 유니폼을 고수하는 것도 가게와 어울릴 것 같아서입니다. 해방촌에서 합정으로 온 이유도 일대가 이미 ‘라멘 성지’였기 때문이고요. 간판이 없어도 목적지를 정하고 오는 손님들이 있으니 굳이 달 필요가 없었어요. 대로변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라는 입지도 한몫했죠.” 맥 빠지는 대답일 수 있지만 고미태의 미덕은 설정값을 정밀하게 지키는 데서 나온다. 가게를 내기 전 조사를 위해 9개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음식을 맛봤지만 결국 방향성은 ‘맥도날드 지수’로 귀결되었다. 아무나 즐길 수 있는 패스트푸드 가격만큼의 가치와 정비례하는 음식을 만들 것. 그래서 고미태는 최저시급 가격(현재 전 시즌 9800원이고 시급이 올라가면 가격도 올라간다)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 끼를 내놓는다. 여름을 담당하는 닭콩국수는 궁중 요리에서 착안한 보양식. 콩물을 섞은 삼계탕 국물에 닭 대신 듀럼밀을 섞어 만든 특제 면이 풍덩 빠져 있다. 파스타보다는 ‘메밀 순면’스러운 식감에 냉면이 떠오르다가 국물을 입에 떠 넣으면 들깨칼국수를 먹을 때의 반가운 고소함이 스친다. 짭짤한 오이와 새콤달콤한 참외 고명은 ‘단짠의 민족’을 최종적으로 만족시킨다.
location :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41 1층
opening hour : 월~토 12:00~20:30, 14:30~17:30 브레이크타임
instargram : @gomiitae

place. 03 / 포어포어포어
“와인 관련 사업을 하는 중에 안테나숍으로 만든 공간입니다. 이왕이면 술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모여들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며 간판을 달지 않았어요.” 운영자 서홍주 씨는 위스키 바 ‘엔젤스셰어’에서 바텐더로 일했다. 지금은 사라진 그곳 역시 간판 대신 유리창에 시트지로 새긴 작은 표시만이 있었다. 새로운 가게를 만들면서 오랫동안 추구해온 미감이 작동한 것도 있지만 이곳에서 간판은 여과지 역할을 한다. 서계동 대로변에 유일하게 리모델링된 건물 1층, 철물점과 금은방 사이 통유리로 된 어리둥절한 공간. 낮에는 잠잠하다 어둑해지면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잔을 부딪히는 소리가 통행인을 이끈다. 단골들과 나 홀로 문을 열고 들어갈 아주 조금의 용기와 호기심 있는 손님들이 한데 섞이는 특유의 분위기는 그렇게 완성된다. 포어포어포어에는 술 메뉴나 리스트가 따로 없는데, 모두의 취향에 골고루 대응하기 위해서다. 기호가 확실한 사람들에게는 좀 더 정확한 결과물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상세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준을 제시한다. 포어포어포어가 즐거운 이유 중 일부는 잔에 있다. 장식장에 줄 세운 높낮이가 다른 와인잔이 만들어내는 음영이 밤의 취기에 힘을 더한다. 어울리는 잔에 샴페인을 마시다 기습적으로 나오는 도자기(역시 모두 다르며 작가들의 작품도 있다) 속 뜨거운 차가 기분 좋은 충돌을 만들어낸다. 이름은 따로 없지만 시그너처와 다름없는 일본주 베이스의 칵테일도 그것을 모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메뉴. 하루 동안 냉침한 센차에 사케나 말차 리큐어 등을 섞은 칵테일은 맛의 새 지평을 열어준다. 안주는 치즈를 중심으로 한 몇 종류 스몰 디시뿐인데도 충실하다. 이전에 몸담았던 레스토랑에서 익힌 스페인 바스크 지방 스타일의 디저트를 새로운 조합으로 선보인다. 토치로 구운 체더 치즈와 오렌지 위에 발사믹 펄을 올린 접시는 끝없이 술을 부른다. 여기가 어디던가?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pourpourpour)!
location : 서울시 용산구 만리재로 180-1 1층
opening hour : 19:00~01:00(화, 수 정기휴무)
instargram : @bar_pourpourpour

place. 04 / 서보
엄밀히 말하자면 서보에는 간판이 있다.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할 만큼 크고 또박또박한 글씨체로 ‘서보 전력’이라 쓰여 있다. 이전 가게의 간판을 떼지 않은 곳은 더러 있지만 서보는 이 간판으로 인해 이름을 바꿨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태국어 상호가 있었다. 하지만 가게 자리를 보러 갔을 때 서보 전력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 한자리에서 운영한 곳이라는 사실을 들었고, 오래가는 가게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과감하게 바꾼 것이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는 큰 간판 아래 작은 현판을 달았다. ‘서쪽의 보물’이라는 의미의 한자와 태국어를 병기한 빨간 현판을 태국에서 제작해 왔다. 송리단길 터에 태국의 기운이 교차하는 가게, 서보의 정체성이 제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메뉴 또한 다른 태국 음식점과 차별점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똠양꿍이나 팟타이는 찾아볼 수 없고 족발덮밥(까오까무)과 새우국밥(까오똠) 두 가지만 판매한다. 족발과 국밥이라니 이름마저 친근하다. 족발덮밥이야 이제 어느 정도 대중화가 되었지만 새우국밥은 서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찾기가 힘든 메뉴다. 태국에 깊이 뿌리내린 화교 문화에서 창조된 새우국밥은 현지에서는 아주 흔한 아침 식사 메뉴. 닭과 해산물, 뿌리채소로 낸 육수는 은은하게 이국의 맛을 품고 있다. 현지에서는 숙주를 거의 안 넣지만 콩나물국밥을 의식해 한 그릇을 디자인했다. 곡주를 즐기는 태국 식문화를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맛이 가장 비슷한 민속주 ‘왕주’를 잔술로 페어링한다. 두 나라의 접점을 이으려는 자연스러운 태도는 이창조 셰프의 또 하나의 직업과 무관하지 않다. 현직 대사관 셰프로 일주일에 두 번 출장을 다닌다. 세계 각국의 요리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일을 하지만 역시나 그가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요리는 태국 음식이다. “태국 요리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어 아직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요리가 정말 많아요. 지금 메뉴도 그렇고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는 태국 요리를 알리고 싶어요.”
location : 서울 송파구 오금로18길 5
opening hour : 11:30~20:00, 15:00~17:00 브레이크타임(화, 목 정기휴무)
instargram : @seobo.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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