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조각으로 맺은 로맨스

Francçois-Xavier Lalanne, ‘Gorille consolé’(2002/2016)

일명 ‘레 랄란(Les Lalanne)’이라 불리는 프랑스 조각가 부부 프랑수아 자비에 랄란과 클로드 랄란은 ‘함께’였기에 독창적인 조각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랄란 커플은 주변에서 찾은 친숙한 형태에 이야기를 불어넣는 일을 함께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런 예술 관행을 이어온 부부지만 둘의 조각품은 뚜렷하게 구분된다. 아내 클로드는 식물에 관심을 갖고 은행잎과 나뭇가지, 사과 등 주변 식물을 서정적인 창조물로 변형시킨다. 반면 남편 프랑수아 자비에는 동물의 신비한 내적 삶에 매력을 느끼고 실용적인 기능을 숨긴 조각 형태를 선보여 왔다.

Claude & François-Xavier Lalanne, ‘Le Merle perché(detail)’(2006/2008)

자연과 조각으로 맺은 랄란 커플의 로맨스는 1952년 프랑수아 자비에의 회화 전시장에서 시작된다. 당시 클로드는 에콜 데 보자르에서 건축을 공부한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은 파리 앵파스 롱생(Impasse Ronsin)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당대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나열되는 순간 랄란 부부 이야기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스튜디오 이웃이었던 조각가 콘스탕탱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부터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만 레이(Man Ray) 등 다양한 초현실주의 작가와의 교류는 랄란 부부의 작업에 영향을 주었다. 프랑수아는 회화에서 벗어나 클로드의 조형적인 접근 방식으로 전환하며 조각에 풍부한 창의력과 기발함을 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4년, 이들의 기념비적인 첫 공동 전시 〈주피테스 Zoophites〉가 열린다. 프랑수아 자비에의 재치 있고 대담한 동물 조각과 클로드의 섬세한 식물이 대조를 이루며 환상의 풍경을 만들었다. 이 전시는 국제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됐고, 같은 테마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프랑수아 자비에와 클로드는 많은 컬렉터는 물론 세르주 갱스부르, 이브 생 로랑, 발렌티노, 칼 라거펠트 등 20세기의 저명한 아티스트와 패션 디자이너에게 사랑받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센터부터 영국의 윈저성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아시아, 미국 전역의 주요 박물관과 공공장소에 소장될 만큼 그들의 초현실적인 조각품과 절묘한 장식 예술은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Francçois-Xavier Lalanne, ‘Grand Rhinocéros V(detail)’(1994/2000)

남녀노소 불문하고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는 신묘한 조각품은 클로드와 프랑수아 자비에 랄란이 빚어낸 기예다. 2008년에는 프랑수아 자비에가, 2019년에는 클로드가 생을 마감했지만, 이들은 우리 곁에서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것을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적 상상력의 힘은 이런 것이라고.

Claude Lalanne, ‘Crococurule(detail)’(1992/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