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7대 이슈]① 헌법개정...37년째 그대로인 헌법, 이번엔 바꿀 수 있을까

[22대 국회 7대 이슈]① 헌법개정...37년째 그대로인 헌법, 이번엔 바꿀 수 있을까

폴리뉴스 2024-05-19 19:29:15 신고

[폴리뉴스 김진호 정치에디터] 전체의석의 과반이 넘는 거대야당의 출현으로 집권여당과 강대강 대치국면을 연출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22대 국회 개원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국회 원구성 협상을 앞둔 여야는 벌써부터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과장된 몸짓으로 분주하다. 자칫 원구성 협상이 원만치못할 경우 지난 21대 국회 전반기 처럼 거대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가운데 집권여당이 원구성을 이콧하는 입법독주 사태가 우려되는 시점이다. 폴리뉴스는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거대야당과 집권여당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펼쳐질 이슈 7개를 뽑아 이슈별 쟁점과 향후 전망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지난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가 일부 내용을 수정하기로 합의한 뒤 재발의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가 일부 내용을 수정하기로 합의한 뒤 재발의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987년 개헌 이후 37년째 그대로인 헌법을 22대 국회에선 과연 개정할 수 있을까.

지난 4·10 총선에서 범야권이 개헌에 필요한 200석에서 불과 8석 모자란 192석을 차지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등 범야권이 개헌을 주장하고 있어 개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7년 개헌으로 6공화국이 시작된 후 역대 국회는 매번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번 국회에서도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제안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인 2021년 헌법 전문에 5·18 전문 정신을 넣는 개헌을 약속한 바 있다.

헌법 개정은 역대 국회마다 논의가 이어졌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 난제에 속한다. 현 김진표 국회의장도 21대 국회에서 선거제 개헌은 물론 대통령 4년 중임제, 총리 국회 복수 추천제, 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 등 개헌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끝내 개헌을 실현하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치게 됐다.

민주, 4년 중임제 및 대통령거부권 제한·5·18 헌법 수록 등 제안

22대 국회에서는 과연 개헌이 가능할지 여부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야권에서는 대통령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4년 중임제와 대통령거부권 제한, 5·18 헌법 수록 등을 위한 개헌을 제안하고 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우원식 의원도 개헌에 찬성하고 있어 의외로 개헌논의가 급물살을 탈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22대 국회에서 거대야당으로 거듭난 더불어민주당은 4년 중임제 개헌안을 강력하게 밀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논의돼야 한다"며 "22대 국회에서는 개헌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지난달 30일 MBC 100분 토론에서 "저출생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 5년 단임제"라며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은 "5년 단임제하에서 대통령이 단기적으로 몰아치니 오히려 출산 세대에게 거부 반응이 생긴다"며 "국가의 의무를 헌법적으로 보장해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대통령에게 정치적, 법률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와 제22대 총선 광주 당선인들이 17일 오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촉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와 제22대 총선 광주 당선인들이 17일 오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촉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근에는 민주당 일각에서 4년 중임제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하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헌법개정특위 위원장인 윤호중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하고 대통령도 국회의장처럼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윤 의원은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헌법 수호를 위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할 뿐, 가족이나 측근을 수호하기 위해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개헌을 하면서 여야의 이견이 없는 광주 5·18 민주화 운동 정신 계승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거나, 헌법에 실려있는 검사의 직무 관련 규정을 삭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민주당 내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 나섰던 중진의원들 역시 대통령의 거부권 제한과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을 위한 개헌론에 찬성입장을 표명했다.

민주당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우원식 의원은 의장후보 출마 선언에서 "대통령 중임제와 감사원의 국회 이전, 검찰 권력의 정치 탄압 (저지), 의회의 실질적 권한 강화를 위한 개헌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의장 후보로 출마했다가 후보에서 사퇴한 조정식 의원도 지난달 29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저지하고, 필요하다면 탄핵소추에 필요한 의석도 200석에서 180석으로 낮추는 개헌을 시도하겠다"고 밝혔고, 같은 달 22일엔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했다.

“명심은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라며 국회의장 후보경선에 올인했던 추미애 당선자 역시 지난 8일 K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원포인트 개헌을 설득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며 "우리가 이해충돌 사안 또는 대통령 신상에 관한 것에 대한 거부권을 제한하자는 정도의 원포인트 개헌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22대 총선에서 해남 진도·완도에 출마해 전국 최고령·최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4년 만에 5선 국회의원으로 돌아오는 박지원 당선자는 여소야대(與小野大)에 따른 정국 불안에 대해 거국내각 구성을 통한 개헌을 촉구했다. 박 당선자는 거국내각에 대해 “결국 머잖아 윤 대통령은 탈당하고 거국내각으로 갈 것”이라며 “국민과 야당이 국회를 통해 더 (거국내각 구성을) 추진해야 한다. 이대로는 할 수 없다”고 말해 정치권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는 개헌에 대해 “헌정 중단을 (국민들이) 바라지 않는다. 여기에서 4년 중임제 개헌을 생각한다”며 “MB(이명박 대통령) 때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저와 개헌 문제를 깊숙이 논의했다. 4년 중임제 개헌을 하면서 MB가 임기를 1년 단축하면 (정치 일정이) 맞아 돌아갈 것이라 말했더니 소식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윤 대통령이 지금은 실패한 대통령이 됐지만 그가 역사에 남으려면 4년 중임제 개헌으로 임기 1년을 단축해 제7공화국을 탄생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개헌특위 설치 및 제7공화국 개헌 제안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개헌특위 설치 및 제7공화국 개헌 제안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조국혁신당, “제7공화국 개헌...대통령 4년 중임제” 등 제안

개헌 주장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도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시했다.

특히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17일 “22대 국회에서 제7공화국 개헌안(헌법개정안)을 마련하자”고 촉구했다. 조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7공화국 헌법에 담길 개헌사항을 제시했다. 조 대표는 이날 ▲부마민주항쟁·5·18민주화운동·6·10민주항쟁을 전문에 수록 ▲수도 지정을 법정(法定)사항으로 명문화 ▲대통령 4년 중임제 ▲검사 영장 신청권 삭제 ▲사회권 강화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수준 임금 ▲토지공개념 강화 등 총 7가지를 제안했다.

5.18정신, 부마민주항쟁 등을 전문에 수록하는데 대해선 “현행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며 “이에 더해 부마, 5·18, 6·10 정신의 계승을 헌법에 수록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해선 “1987년 헌법(현행헌법)이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한 이유는 딱 하나다. 독재정권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이제 평화적 정권 교체가 자연스러운 나라가 됐다. 국민 역량을 믿고 대통령 중임제를 채택할 시점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국정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바꿔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특히 검사 영장 신청권 삭제와 관련, “검찰청은 법무부 외청에 불과하지만, ‘준 사법기관’을 참칭하며 사실상 무소불위의 기소 권력을 누린다”며 “통제도 거의 받지 않는다. 해외에서도 일부 독재국가를 빼고 이처럼 강한 권능을 가진 검찰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로 인한 폐해는 자의적 수사·기소권 남용을 넘어 ‘검찰독재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며 “이에 영장 신청권을 헌법에서 삭제하고 신청 주체를 법률로 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5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 당선인들이 5·18 묘지에 헌화·참배하고 있다. 이 대표는 경남 김해에서 재배한 국화 1천송이를 직접 공수해 개별 묘지마다 헌화·참배했다.[사진=연합뉴스]
15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와 당선인들이 5·18 묘지에 헌화·참배하고 있다. 이 대표는 경남 김해에서 재배한 국화 1천송이를 직접 공수해 개별 묘지마다 헌화·참배했다.[사진=연합뉴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정국돌파 위해 임기단축 개헌해야할 것”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윤 대통령이 정국 돌파를 위해서는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이 대표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에 대해선 “개헌은 국민투표도 거쳐야 되고 상당히 어려운 절차인데, 6공화국에서 드러난 한계성들을 다 담아 개헌을 해야 되는 것”이라며 “전문개정 정도의 개헌을 따로 한다는 건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개헌이 성공하기 위해선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포함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개헌이 반복적으로 실패한 데 대해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이 보통 개헌에 반대하고 권력 누수가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에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것을 어느 정도 내려놓는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어느 정도 정체(政體)를 유지하고 있을 때, (6·29 선언 당시) 직선제 개헌처럼 (윤 대통령의) 결단이 있어야 된다”고 말해 개헌의 열쇠는 윤 대통령이 쥐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국회 주도의 개헌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해 눈길을 끌었다. 개헌선만 확보하면 개헌을 추진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엔 “(국민의힘의) 호응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오히려 그때는 민주당에서 호응을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식물 상태인 상황에서 자신이 다음 대선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권한을) 자기 권한이라 생각하고 (대통령 권한) 축소를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개헌선에 도달한 정파에서 차기 대통령을 낼 것을 염두에 두고, 권력구조를 변동시키는 개헌에 소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지난달 19일 유튜브 '지지율 대책회의'에 출연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과 관련해 "윤 대통령 본인이 여기서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임기 단축 개헌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야권에서는 22대 총선에서 야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만큼 이번에는 개헌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2대 국회는 민주당 175석, 국민의힘 108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으로 범야권이 192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집권여당이 비록 탄핵과 개헌을 저지할 수 있는 의석은 지켰다지만 여당 의원 8명만 이탈해도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되고 탄핵 저지선이 붕괴된다. 집권여당으로서는 민심의 파도가 조금만 요동쳐도 탄핵과 대통령거부권이 무력화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정치지형에 서있다.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5·18 민주화운동 44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관련 단체들과 간담회를 열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개헌 찬성 입장을 밝혔다.[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5·18 민주화운동 44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관련 단체들과 간담회를 열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개헌 찬성 입장을 밝혔다.[사진=연합뉴스]

與, 개헌 신중.. 野 '대통령 거부권 제한'에는 "독재적 발상"

192석 거대야당의 요구에 맞선 국민의힘은 개헌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기현 전 대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필요성을 밝힌 바 있으나, 아직 개헌에 관한 뚜렷한 방침은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야당에서 제기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제한에 대해서는 "반헌법적인 독재적 발상"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정광재 대변인은 지난 14일 논평에서 "거대 야당의 정치 공세가 점입가경"이라며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제한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느니 위헌적 주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친윤계 이철규 의원도 MBC 라디오에 나와 민주당의 개헌 주장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192석의 범야권 의석을 가지고도 권력을 더 남용하고 싶어서 개헌론까지 들고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상범 비대위원은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헌법 정신을 의회 다수의 힘으로 말살하겠다는 의회 독재적 발상"이라며 "개헌은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이지, 정쟁을 위해 개헌하자고 하는 발상은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인 행태"라고 꼬집었다.

김용태 비대위원은 CBS 라디오에 나와 "야당이 탄핵 빌드업을 위해 특검 정국으로 가려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헌법상 부여된 대통령의 권한인 거부권 행사가 탄핵 사유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공부를 잘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야당의 개헌주장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지금 나오는 개헌 주장들이 예전 국회에서 제기된 개헌주장들과는 결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야당은 명분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개선하자고 하지만, 현재 제시된 4년 중임제·거부권 제한 등의 개헌 주장은 현직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견제에 무게가 실려있다. 윤 대통령에게 순직 해병대원 특검과 김건희 여사 특검 등 각종 '특검 공세'로 압박하면서 '대통령의 헌법적권한 축소'를 강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4년 중임제 주장도 다음 대선부터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임기부터 1년을 줄이자는 건 일종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말로는 '개헌'이라지만, 실질적으로는 '탄핵'하자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개헌을 통한 임기 단축은 탄핵에 비해 정치적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탄핵의 경우 대통령의 위법성이 명백해야 하고,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남아있다. 탄핵이 기각되면 역풍을 맞을 우려도 크다. 그 과정에서 보수층이 결집할 우려도 있다.

반면 개헌이 성공할 경우 37년간 바꾸지 못한 정치 구조 개혁에 성공한다는 명분이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 제한을 개헌내용으로 던진 것은 윤 대통령 '힘 빼기'작전의 일환으로 읽힌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헌법적 가치를 보호하는 경우'에만 한정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지만,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야권에서는 야당이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개헌을 추진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정권 심판 여론을 의석수로 확인했기 때문에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논리다. 총선 슬로건을 '윤석열 정권 3년은 너무 길다'고 노골적으로 건 조국혁신당이 12석이나 확보한 것도 야당의 개헌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당장 개헌 추진 가능성 높지 않아…"여론 반발 클 수 있어"

다만 범야권이 현실적으로 당장 개헌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 이탈표를 확보해 200석 이상을 확보하더라도, 국민투표에서 과반 동의를 얻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통령 거부권 제한이나 중임제 개헌으로 현 대통령의 임기를 축소하는 개헌에 대해서는 학계나 정치권 모두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차재원 부산카톨릭대 특임교수는 “대통령제에서 거부권 행사는 국회의 입법권을 통제하는 장치인데 이를 제한하면 삼권분립 침해 등 위헌 소지가 있다”며 “대통령 임기 단축이나 감사원을 국회 산하로 두는 문제는 헌법상 가능하나 여야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면 개헌 시도가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 역시 "정부가 국회의 입법권을 통제할 방안은 사실상 거부권이 거의 유일하다"라며 "의석수로 무력화시킨다면 결국 국회에 대한 통제권을 없앤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거부권 제한 개헌이 쉽지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제한하는 개헌에 대해 “의회 독재를 강화하겠다는 야욕”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중임제 개헌으로 현 대통령의 임기를 축소할 수 있을지 여부도 아직 불투명하다. 조국 대표의 경우 4년 중임제 개헌안에 부칙으로 현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축소한다는 부칙을 넣으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개헌을 하더라도 소급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현직 대통령에게 적용하면 위헌의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서는 "4년 연임제에 대해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더라도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당장 줄이자는 논의는 위헌 논란이 예상돼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당의 주장대로라면 윤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한 뒤 2026년에 지방선거와 대선을 치르고 2028년에 차기 총선을 치르는 등 2년 주기로 큰 선거를 진행하자는 의미다. 만일 신임 대통령이 2년간 국정운영에 성공하고 중간평가 격인 2년 후 총선에서 승리하면 국정운영 동력을 얻고 재선에 나설 수 있는 구조다.

여권은 개헌을 제기하는 민주당의 저의를 정면비판하고 있다.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윤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상황에서 4년 중임제 개헌안의 목표는 결국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이라는 것이다.

사실 개헌을 적극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내에서도 실제 개헌은 힘들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이 결심해야 (개헌이) 가능한데 정치적 신뢰 형성이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개헌안을 받을 가능성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회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키려면 국회 재적 의석수의 3분의2인 200명이 동의해야 하는데, 제22대 국회에서 민주당(171석)을 포함한 범야권은 192석으로 8석이 모자란다. 또 개헌안이 통과돼도 국민 투표를 통과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나마 여야 양당이 개헌 논의에서 접점을 보이던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서는 여야가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뤄지는 분위기지만 윤 대통령이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아 야당의 반발을 샀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지난 14일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 이 문제에 대해 협조를 요청했고,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22대 국회에서 매듭짓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5·18 민주화운동 44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관련 단체들과 간담회를 열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개헌 찬성 입장을 밝혔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5·18 정신은 헌법이 명령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신 그 자체"라며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서도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공약으로 발표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개헌 때 헌법 전문에 반드시 올려야 한다고 피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획을 그은 5월 정신 그 자체가 헌법 정신이란 점에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매우 마땅하다"며 "제반 여건이 무르익으면 여야 간 초당적 협의를 토대로 개헌을 통해 반드시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도 "5·18 민주화운동 관련 취지와 앞으로 당의 방향성에 대한 비대위원장의 말씀에 전적으로 궤를 같이한다"면서 "앞으로도 자유와 인권의 5·18 정신이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성일종 사무총장 역시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야당이 22대 국회 개원 후 헌법 전문 수록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 국민 사이에 어느 정도 컨센서스가 있고 많이 동의하고 있다"면서 "개헌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스타트가 될 수 없다. 국가 틀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원포인트'로 할 수 있는지는 여야 원내 전체적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취임 후 3년 연속 5·18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에도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언급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한 헌법 수록을 약속했다. 2022년과 지난해 기념식에서 윤 대통령은 "오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지만 헌법 수록에 대한 추가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제44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18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지도부가 윤상원 열사 묘를 참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44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18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지도부가 윤상원 열사 묘를 참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의 공약 불이행을 비판하며 "범죄행위"라고 공격했다. 

이 대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4주년인 18일 윤 대통령을 향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대선 공약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이날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 참석 후 기자회견을 열고 "개인들은 돈 10만원을 빌릴 때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제재받는데 국민 주권을 위임받는 대신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사기죄보다도 더 엄중한 범죄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헌법 전문 수록은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면서 대한민국 주권자들에게 분명하게 공식적으로 약속했던 것"이라며 "실천과 행동으로 그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 대표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고 그 약속을 공식적으로 한 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킬 때"라며 "반드시 헌법 전문에 수록해 다시는 국민들이 준 총칼로 국민을 집단 대량 살상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말씀하시든 안 하시든, 그 약속을 지키실 수 있도록 국회 차원에서 저희가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도 글을 올려 5·18 정신 헌법 수록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더 이상의 5.18 폄훼와 왜곡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며 "그것이 '산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오월 영령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도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의지를 분명히했다. 윤희석 국민의힘 선임대변인은 논평에서 "여야 간 초당적 협의를 기반으로 5·18 정신이 헌법 전문에 수록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겠다"며 "집권 여당의 무거운 책임감으로 5·18 정신이 온전하게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관련,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 개편 논의에 치우칠 경우 여야간 소모적 정쟁으로 번져 사회적으로 헌법에 반영하는 데 합의가 돼있는 5.18정신, 양극화, 저출생, 연금·노동개혁 등의 생산적 주제까지도 논의할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한 뒤 “개헌논의는 여야 간 합의할 수 있는 것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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