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응천 청장 인터뷰…"문화·자연·무형유산 각각 특성 맞는 정책 펼쳐야"
"보존 중심에서 발전 동력으로 변화"…'역사유적정책관' 신설 협의 계획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오는 17일부터 적용되는 '국가유산' 체계가 지역 발전의 '걸림돌'이 아니라 '성장 디딤돌'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최 청장은 국가유산 체계 전환과 국가유산청 출범을 앞두고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 가치를 품고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기준인 '유산'(遺産·heritage) 개념을 적용한 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을 언급하며 "유형별 특성에 맞는 보존관리 활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롭게 출발하는 국가유산청과 관련해선 '과거 보존', '과거 지향' 프레임에서 벗어나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풀어주고 활용할 것은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최 청장과의 일문일답.
--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래 널리 쓰여왔던 '문화재'가 사라지고 '국가유산' 이 적용된다. 대대적 변화를 앞두고 있는데.
▲ 5월 17일부터 적용되는 '국가유산기본법'은 '모든 국민은 국가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어 새로운 가치를 더하며, 이를 차별 없이 자유롭게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이에 따라 (국보, 보물 등과 같은) 지정유산을 당위적으로 보존·관리하는 것에서 국민과 함께 국가유산을 향유·진흥하고 지역 성장의 디딤돌로 만드는 것으로 정책도 바뀔 예정이다.
-- '문화재'가 '국가유산'으로 바뀌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다.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 문화재청의 기존 슬로건은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합니다'였다. 말 그대로 보존하고 전달하는 역할인 셈이다. 그러나 국가유산청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 국가유산'을 미래 비전으로 내세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풀어주고 개발·활용할 수 있는 것은 단계적으로 하겠다는 의미다.
-- 오랜 논의 끝에 국가유산 체계를 완성했으나 일각에서는 우려도 있다. 다른 유산에 비해 문화유산의 비중이 높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 수량을 기준으로 보면 전체 국가유산 가운데 문화유산(85.5%)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고, 관리 면적으로는 자연유산(90.6%) 비중이 높다. 반면 두루미와 같은 천연기념물 개체수를 따지면 수량의 의미가 크지 않다. 이런 기준보다는 각 유산의 유형별 특성이 다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이에 맞는 보존관리 활용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 국가유산청 출범도 앞두고 있다. 국가유산 체계 전환 속에 상당한 진통도 겪은 것으로 아는데.
▲ 60년간 유지된 문화재 체계를 유네스코 국제 기준에 맞게 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 등으로 나눠 본청 조직을 전면적으로 정비했다. 새로 꾸려지는 문화유산국의 경우, 6과 1단 3팀으로 편제돼 업무 과부하가 예상된다는 일부 오해가 있기는 했다. 앞으로 '역사유적정책관' 신설을 위한 관계부처 협의를 추진하고 조직 개편의 완전성을 강화하겠다.
-- 영어 기관 명칭의 변화도 눈에 띈다.
▲ 문화재청의 영어 명칭은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CHA)'이었으나, 앞으로는 'Korea Heritage Service(KHS)'로 바뀐다. '관리'에서 '서비스'의 개념을 반영한 것으로 국가가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며 서비스하겠다는 의미다. 5월 17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유산청 출범 이후에도 국가유산의 미래 비전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겠다.
-- 대대적인 변화 속에 산적해 있는 안건도 많다. 최근 주요하게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 있다면.
▲ 경복궁 주변에 있는 한복 대여점과 관련한 부분을 검토 중이다. 경복궁을 찾는 많은 관광객이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 그러나 실제 한복과 맞지 않거나 '국적 불명'인 경우가 많다. 국가유산청이 앞장서서 우리 고유 한복에 대한 개념을 바로잡고 개선할 때가 됐다. 우리 기준에 맞는 한복을 입고 즐기자는 것이다.
-- 그동안 과도하게 반짝이거나 서양 드레스같이 과도하게 변형된 '퓨전 한복'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돼 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 왕의 복장을 한 채 갓을 쓰고, 여성 복장인데 위·아래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다. 현재 궁능유적본부를 통해 경복궁 주변 한복점 현황 등을 조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복점이 10년 가까이 영업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한복을 유형별로 모델화해서 협력하는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 우리 고유의 한복을 그대로 구현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복 대여점에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도 없을 텐데.
▲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한복을 바꾸세요' 할 수 없다. 업계 사정을 듣고 한복을 바꾸는 시점에 맞춰서 검증된 복식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강제적인 '채찍'보다는 업계가 원하는 부분을 반영해서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두면 우리 한복이 사라질 수도 있다.
-- 다른 기관과는 협의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를 대표해온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정부 기관, 지방자치단체, 뜻을 함께하는 민간단체와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서울 종로구청과 지난 14일 업무협약(MOU)을 맺고 우수한 한복 대여업체를 지원·양성하고 '궁중문화축전', 종로구 '한복 축제' 등을 통해 전통 한복의 고유성이 유지되도록 할 예정이다.
-- 지난해 한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심사하고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으로 선출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 전 세계적으로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유네스코에서는 말 그대로 국경 없는 '문화의 전쟁'이 펼쳐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027년까지 위원국으로 활동한다는 부분은 큰 의미가 있다. 세계유산위원회 사무국 측의 제안을 받아 이르면 2026년 정도 한국에서 위원회를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최근 문화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 중 경복궁 '낙서 테러'를 빼놓을 수 없다. 손해배상청구 계획은 그대로인가.
▲ 개인적으로는 정말 화가 나서 분을 못 참을 정도였다.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빠르게 나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직원들과는 연일 대책 회의를 하며 국가유산 주변 상황을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개선책을 낼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댔다. 손해배상 비용은 지금까지 들어간 인건비, 재료비 등을 토대로 산정 중이며, 재판 상황을 고려해 (최근 징역형이 구형된) 모방범에 대해 먼저 청구할 계획이다.
-- 국가유산청이 앞으로 어떤 조직이 되길 바라는가.
▲ 문화재청은 대한민국의 문화재 행정 전담 중앙행정기관으로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문화재가 필연적으로 역사와 연결되기 때문에 '과거의 보존'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과거 지향', '지역개발 걸림돌'이라는 이미지도 갖고 있어 아쉬움이 있었다. 이제는 오명을 벗고 지역사회의 원천 자원이자 원동력으로 지역소멸을 방지하고 행복을 주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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