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분야에서 저마다 최고의 실력을 뽐내는 스포츠 스타들이 패션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오늘날 스포츠 스타들은 할리우드 배우나 팝 스타 같은 셀러브리티보다 대중에 더 막강한 파급력을 지닌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예술가, 정치가, 아티스트를 제치고 각종 SNS의 개인 팔로어 순위 1, 2위를 차지할 만큼 높은 미디어 영향력을 자랑하는 이들은 이제 자신의 필드뿐 아니라 패션 신에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에 이어 프로야구 정규 시즌 오픈, 2024 파리 올림픽 개막, 그랜드 슬램 다음으로 중요한 테니스 경기로 꼽히는 2024 마이애미 오픈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경기가 줄줄이 이어지며 스포츠 스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증폭되는 지금. 단순히 인터뷰와 화보 촬영을 넘어 영향력 있는 브랜드 앰배서더로 선정되고 캠페인에 등장하는 스포츠 스타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버버리의 앰배서더로 발탁된 손흥민은 2024 F/W 런던 패션위크 버버리쇼에 참석해 화제를 모았으며, 개성 있는 패션 감각으로 주목받는 황희찬 역시 캐나다구스의 2024 S/S 컬렉션 화보를 장식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비단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다. 이탈리아 선수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테니스 선수 야닉 시너(Jannik Sinner)를 위해 구찌는 하우스의 상징인 GG 모노그램과 구찌 웹(Web), 그의 이니셜을 새긴 커스텀 더플백을 제작했다. 구찌 앰배서더인 야닉 시너는 2024 마이애미 오픈에 이 커스텀 더플백을 메고 등장해 남자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탈리아 선수 최초로 세계 랭킹 2위에 올랐다. 그는 드레스 코드를 올 화이트로 엄격하게 규제하는 그랜드 슬램 윔블던에 구찌 커스텀 더플백을 메고 등장해 윔블던 1백46년 역사상 명품 브랜드 로고가 들어간 백을 메고 코트에 입장한 최초의 선수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브룩스 브라더스 역시 NBA 뉴욕 닉스의 올스타 포인트 가드 제일런 브런슨(Jalen Brunson)을 새로운 홍보대사로 선정했다. NBA에서 6년간 활약한 뛰어난 선수이자 ‘세컨드 라운드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교육, 스포츠, 지역사회를 통해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자선 활동가로 유명한 그는 최근 열린 NBA 올스타전에서 브룩스 브라더스의 1818 수트를 입고 등장해 브랜드와의 시너지를 보여줬다. 브랜드와 스포츠 간의 긴밀한 파트너십 또한 스포츠 팬들에게 또 한 번 브랜드를 각인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타미 힐피거는 여성 드라이버를 위한 1인승 F1 아카데미(F1 Academy)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스페인 대표 레이서 네레아 마르티(Nerea Martí)를 후원하고 있다. 마르티가 운전하는 타미 힐피거 차와 수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F1 아카데미 프리시즌 테스트에서 함께 데뷔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선수를 위한 제품을 개발해 대중에 선보이는 것은 브랜드의 명민한 마케팅 전략 중 하나. 또 다른 예로 21세기 남자 테니스계의 황금기를 이끈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은 2010년부터 럭셔리 워치 브랜드 리차드 밀과 오랜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다. 라파엘 나달 시계로도 유명한 리차드 밀은 그를 위한 특별한 타임피스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시합 전 강박적으로 자신만의 의식을 따르며 철저한 루틴을 지키는 예민한 그를 통해 리차드 밀은 세계적인 선수가 착용하는 시계라는 이미지뿐 아니라 섬세하기로 유명한 그가 시계를 찬 채로 경기에 나설 정도로 편하며, 격렬한 움직임을 견뎌내는 강한 시계임을 전 세계에 증명하고자 한 것. 끊임없는 도전 끝에 리차드 밀은 테니스와 워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제품을 탄생시켰으며, 나달은 리차드 밀을 착용하고 2010년 메이저 대회인 US오픈과 윔블던 대회까지 우승해 커리어의 정점을 장식했다. 이처럼 정해진 규칙 안에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이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착용하고 등장하는 순간 경기를 관람하러 온 관중에게 자연스럽게 브랜드가 노출되어 광고 효율이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오늘날 스포츠 세계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순간을 연출해 팬들에게 각본 없는 드라마를 선사한다. 온 마음을 다해 경기에 몰입하는 선수들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그들이 속한 팀 혹은 브랜드의 위상을 드높이기도 하며, 그들이 입고 쓰고 마시며 사용하는 모든 것이 화제가 되어 유행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한다. 이처럼 이전보다 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스포츠와 패션 업계에 주어진 임무는 하나. 단순히 상업적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선수들의 본질에 주목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이 가진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팬들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