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포스터와 ‘어떤 크리스마스이브’ [홍종선의 연예단상㊿]

칸영화제 포스터와 ‘어떤 크리스마스이브’ [홍종선의 연예단상㊿]

데일리안 2024-04-23 07: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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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8월의 광시곡’ 담은 포스터

2024년 러-우 및 중동전쟁 중 평화를 바라는 마음

1980년대 만화책 ‘사랑의 학교’ 속 에피소드와 일치

제77회 칸국제영화제 포스터 ⓒ칸영화제 사무국 제공

제77회 칸국제영화제 포스터를 보자마자 어릴 적 읽었던 만화책 ‘사랑의 학교’(이원복 저)에 실려 있던 하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제법 크고 탄탄한 양장 표지에 하얀색 도톰한 종이 위 인쇄된 만화, 두툼한 두께의 ‘사랑의 학교’에는 가본 적 없는 대한민국 밖 이야기, 감동적 미담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개인적 기억으로는 49개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다.

그중 책의 끄트머리에서 만난 ‘어떤 크리스마스이브’ 이야기는 인상에 깊이 남았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사망했다는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를 학교에서 배우고, 교과서에 북한 군인은 직립보행의 늑대처럼 그려지던 때에 사뭇 다른 ‘평화’가 낯설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세월이 흘러 각 에피소드가 실제와 어떻게 다른지 바로잡아지고 있는데, 필자의 기억에 국한하여 말해 보면.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1944년), 독일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할머니가 홀로 계신 집. 미군 3명이 할머니 집에 먼저 들고, 독일군 4명이 나중 들었다. 당장이라도 손에 든 총으로 서로를 죽이고 할머니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 할머니는 성탄전야인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피를 흘릴 수는 없지 않겠느냐 설득하고. 양국의 군인들은 총을 내려놓고 할머니가 주신 음식과 노래 속에 ‘하룻밤의 휴전’을 통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의 전선을 향해 떠난다.

크리스마스라는 게 서양인들에게는 전쟁의 총소리마저 멈추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게 놀라웠고, 한 민족도 아닌 적군이 서로를 믿고 작은 집 안에서 평화로이 지내는 것이 충격적일 만큼 부러웠다.

어린 나이였지만 남과 북 사이에는 이런 일이 가능한 때가 언제일까, 설이나 추석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상상하다가 아니 결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북한의 존재는 위협적으로 가까이 느껴졌다.

오는 5월 14~25일 열리는 제77회 칸국제영화제의 포스터는 일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8월의 광시곡’의 한 장면이다. 5명의 가족이 모여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에 문득 ‘어떤 크리스마스이브’에서 느꼈던 ‘전쟁 중 평화’가 스며있다.

우연의 일치치곤, 아니 우연일 리가 없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으로 시작된 양국 간 전쟁이 이미 만 2년을 넘었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을 공식 선언하고 서로 무력 침공하고 있는 것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여기에 4월 들어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로의 본토를 공습하며 중동전쟁의 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칸국제영화제는 마치 영화제 기간만이라도 제2차 세계대전 중 ‘어떤 크리스마스이브’의 평화를 실현하자고 제안하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읽히는 혹은 읽고 싶은 포스터를 공개한 것이다.

제2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일본에서 제작된, 1945년 8월의 원폭 투하로 희생된 일본인 가족의 상처와 원폭을 투하했던 미국인 친척의 화해를 통해 전쟁이 남기는 상흔을 다독이는 영화의 한 장면을 고른 것이다. 물론 칸이 사랑한 감독, 일찌감치 1980년 제3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카게무샤’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에서.

‘8월의 광시곡’의 주제 의식에 대한 파악과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포스터. 할머니와 네 손주가 바라보는 하늘에 칸의 상징, 올리브 나뭇잎이 떠 있다.

이제는 특정 종교를 넘어 범지구화 된 크리스마스라는 문화가, 해마다 5월이면 세계 각국의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설레게 하는 칸영화제라는 문화행사가 과연 저 서쪽의 전쟁을 주도하는 이들의 붉은 마음을 하얀 달처럼 정화할 수 있을지. 그런 동화 같은 꿈은 ‘사랑의 학교’를 읽었던 1980년대에 진작 꿈도 꾸지 말아야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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