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 기행] 올드 트래퍼드가 진짜로 낡았는지 확인해봤다 (맨유vs리버풀 직관 후기)

[PL 기행] 올드 트래퍼드가 진짜로 낡았는지 확인해봤다 (맨유vs리버풀 직관 후기)

풋볼리스트 2024-04-16 19: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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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트래퍼드. 김희준 기자
올드 트래퍼드. 김희준 기자

[풋볼리스트=맨체스터(영국)] 김희준 기자=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는 꿈의 극장으로 불린다. 데니스 로, 조지 베스트와 함께 맨유의 전설적인 트리오를 이뤘던 바비 찰튼 경이 붙인 별명이다. 지금도 맨유 입구 한 편에는 ‘꿈의 극장(The theatre of dream)’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맨유가 마지막으로 올드 트래퍼드 개보수를 진행한 건 약 20년 전이다. 2005년 글레이저 가문이 맨유를 인수한 이후 선수 영입에만 많은 돈을 투자하고, 그밖에 인프라 개선에는 손을 뗀 결과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2년 만에 구단에 복귀했을 당시 ‘변한 게 없다’는 말로 구단 시설이 낙후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최근 현지 언론에서는 낡은 올드 트래퍼드에 대한 보도가 심심찮게 나왔다. 녹슬고 페인트가 벗겨진 지붕에서 물이 새고 각종 시설이 노후화됐으며 화장실 물이 역류해 바닥에 하수도 물이 가득 차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내용이었다.

2024년 4월 7일 실제로 마주한 올드 트래퍼드는 적어도 겉보기에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 이것이 실제로 올드 트래퍼드에 문제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잉글랜드 경기장은 대부분 오래됐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이나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이 아닌 이상 겉모습에서 큰 차이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올드 트래퍼드는 전반적으로 묘하게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풍겼다. 악명이 높은 화장실은 실제로도 썩 좋지 않았다. 옛날 군대식 화장실처럼 칸막이 없이 일자형으로 놓인 소변기가 벽마다 놓여있었고, 바닥은 실제로 소변이 새어나오지는 않았지만 경기 시작 30분 전부터 물로 흥건했다.

올드 트래퍼드 1층 라운지. 김희준 기자
올드 트래퍼드 1층 라운지. 김희준 기자

경기 전후로 간단한 간식거리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1층 라운지 천장은 철골 구조물과 상하수도가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이런 류의 천장은 모든 구조물의 색만 통일해도 정돈된 느낌을 주는데, 올드 트래퍼드는 그렇지 않았다. 화장실 문이 따로 없고 천장도 하수도가 그대로 드러난 탓에 1층 라운지 전체에 은은한 지린내가 풍겼다.

경기장 안에는 배선이 노출된 조명기구와 낡은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하늘과 기묘한 조화를 이뤘다. 이날 노스웨스트 더비 종료 후 공개된 게리 네빌과 제이미 캐러거의 영국 ‘스카이스포츠’ 중계석 영상에서 지나치게 허름한 지붕이 주목받기도 했다.

현지 매체에서는 올드 트래퍼드를 완전히 개보수하기 위해 10억 파운드(약 1조 7,346억 원)가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짐 래트클리프 신임 구단주는 경기장 개선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약속했다. 경기 후 퇴근길에 모인 맨유 팬들이 선수들에게만큼 래트클리프 구단주에게 보내는 환호와 박수가 컸다는 사실은 전반적인 구단 개선에 관한 열망이 크다는 것을 입증한다.

올드 트래퍼드가 낡았다는 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구단의 역사가 깊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맨유는 잉글랜드 명문 클럽 중 하나로 잉글랜드 축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리버풀(6회) 다음으로 많이 우승한 잉글랜드 클럽도 맨유(3회)다.

맨유와 리버풀은 오랜 라이벌 관계다. 그들이 맞붙는 노스웨스트 더비는 수많은 지역 더비가 있는 잉글랜드 축구에서도 손꼽힐 만큼 치열함을 자랑한다. 어느 한 팀이 암흑기를 맞이하더라도 두 팀의 맞대결 결과만큼은 쉽사리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노란 안전 요원들로 둘러싸인 리버풀 원정석. 김희준 기자
노란 안전 요원들로 둘러싸인 리버풀 원정석. 김희준 기자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전반만 해도 리버풀이 최근 기세를 몰아 맨유를 압도하는 듯했다. 안전을 위해 노란 옷의 요원들에게 둘러싸인 리버풀 원정팬들은 나머지 홈 서포터들보다 훨씬 떠들썩했고, 루이스 디아스의 선제골이 들어간 이후에는 맹렬한 응원으로 올드 트래퍼드를 뒤덮었다.

맨유 팬들은 맨유 선수들이 실수할 때마다 탄식과 볼멘소리를 냈다. 옆에 앉은 나이가 지긋한 맨유 팬은 브루누 페르난데스가 패스미스를 범하자 “좋은 생각이야(Good idea), 페르난데스”라며 비아냥댔다. 하프타임에는 건너편에 앉은 맨유 팬과 에릭 텐하흐 감독의 전술적 패착이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반 초반 맨유가 연달아 두 골을 넣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페르난데스의 동점골이 들어가자 맨유 팬들은 함성을 내질렀고, 세트피스 키커인 페르난데스가 공을 잡을 때마다 “브루누”를 연호하며 주장을 독려했다. 올 시즌 맨유의 특급 유망주인 코비 마이누가 환상적인 역전골을 넣자 그제야 올드 트래퍼드가 맨유 팬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리버풀 원정석은 침묵에 빠졌고, 맨유 팬들은 응원가 메들리로 분위기를 달궜다.

아론 완비사카의 성급한 태클로 리버풀에 페널티킥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열기가 이어졌을 것이다. 비디오 판독 결과 리버풀의 페널티킥이 확정되자 옆에 있던 맨유 팬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 모하메드 살라가 동점골을 넣은 뒤에는 맨유 팬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노스웨스트 더비 결과가 나온 전광판. 김희준 기자
노스웨스트 더비 결과가 나온 전광판. 김희준 기자

결과는 2-2 무승부였다. 응원전을 놓고 봐도 합당한 결과였다. 살라의 동점골 이후 약 10분 동안은 맨유 팬과 리버풀 팬의 목소리가 한 데 뒤엉켜 전쟁을 치렀다. 노스웨스트 더비가 왜 잉글랜드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로 손꼽히는지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경기 후에도 맨유 팬들의 응원전은 계속됐다. 선수들의 퇴근길에 죽 늘어서 리버풀 선수가 나오면 야유를, 맨유 선수가 나오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특히 캐러거가 나올 때는 어느 때보다 거친 야유와 조롱이 쏟아졌다.

어쨌든 맨유와 리버풀 모두에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 선수들은 고개를 숙인 채 자리를 떴다. 일부 선수들은 팬들의 요청에도 손을 들어 인사하는 정도로 화답했다.

그런 와중에 리버풀의 알렉시스 맥알리스터, 맨유의 디오구 달로트와 조니 에반스 등 일부 선수들은 팬들에게 사인과 사진을 남겨주는 팬서비스를 선보였다. 맨유의 유망한 센터백 윌리 캄봘라는 같이 온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사실상 퇴근길을 한 바퀴 돌며 정성스럽게 팬들의 요청에 응답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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