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블러드 : 박수경] 감각적인 흔적들을 채집해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다

[영블러드 : 박수경] 감각적인 흔적들을 채집해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다

투데이신문 2024-04-03 10:21:33 신고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의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팝아트스트 낸시랭과 김선 비평가가 작품에 대한 폭넓은 시각도 제공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채집운동 : nameless summer, 11.7x16.8 cm, photogram, Gelatin silver print, 2021.

사진을 주 매체로 활동하는 박수경입니다. 저는 사진의 고전 암실 프로세스를 표현의 수단으로 가져와 포토그램 기법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감광지 위에 물체를 두고 노광을 주는 방식)을 통해 빛을 흡수하는 종이 위에 일상에서 감각한 물질들을 투과시켜 빛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체의 개념과는 역설적으로 빛, 그리고 사진을 구성하는 프로세스 만으로 ‘그리다’라는 개념을 성립시키기 위해 다채로운 실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

학부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정형화된 틀을 깨고 시야를 확장해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방향성을 찾아가던 중 기계의 개입을 최소화했을 때 사진매체가 가질 수 있는 권력과, 한계를 관찰해보고 싶었고, 복제가 용이하고 빠르게 재현되는 현 시대 이미지 생산 방식에 대해 권태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고민의 과정 중 매체를 대하는 스스로의 태도에 먼저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꾸준히 지속할 수 있으면서도 사진 매체로 할 수 있는 가장 수행적인 방식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 ARCHIVE 

채집운동 : sunset, 14.7x19.2 cm, photogram, Gelatin silver print, 2021
채집운동 : sunset, 14.7x19.2 cm, photogram, Gelatin silver print, 2021

[채집운동] 시리즈에서는 주로 소홀하게 느끼던 감각들을 의식적으로 채집해 형상화 하고 있습니다. 무더웠던 여름날, 작업실 옥상에서 지는 태양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반짝이는 노을의 끝은 결국 어둠이고 희망이 무색해질 정도로 찰나의 아름다움만 남기고 사라지겠지만 창밖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의 발길을 가장 오래 잡아두는 건 결국 광활한 자연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일상에서 마주한 사소한 장면들이 모여 삶을 지속해 준다고 믿으며 걷고 관찰하던 순간들을 수집하고 감광지 위에 빛의 흐름을 조합해 구성했습니다.

제 작업은 색이나 구도를 눈으로 확인하며 방향성을 잡아가는 일반적인 시각예술 프로세스와 다르게 주로 허공에 이미지를 예측하며 과정조차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부터 시작합니다. 오래도록 연습한 손의 감각을 상기시키고 명확하고 선명한 선을 그어보자는 마음으로 작업실에 들어서지만 어두운 암실에서의 오랜 시간은 때때로 깊은 허무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도 작은 종이 속 우연한 잔상들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면 조급한 마음을 비워내고 허무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추구해온 방향에 가까워진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

허무로 가는 길, 27x35 cm, photogram, Gelatin silver print, 2023.
허무로 가는 길, 27x35 cm, photogram, Gelatin silver print, 2023.

작년부터 구상하고 있는 ‘불규칙 속 조화’, ‘허무로 가는 길’ 시리즈는 반복해서 걸으며 마주한 무형의 감각들을 나열하던 기존 방식에서 나아가 실험적인 사진 조각들을 기반으로 몸에 익은 감각의 언어를 비워내기 위한 시도입니다.

방향성에 대한 고민의 과정에서 우연히 오래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인화지를 선물받았습니다. 테스트 확인차 사용하게 된 종이 곳곳에는 의도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색 바랜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있었고, 정형화된 진실만을 추구하던 제게 우연한 상황들이 겹쳐 탄생한 빛의 형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이후에는 작업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일부러 손상의 정도를 확인하기 어려운 인화지 만을 수집해 임의로 지정한 조건 내 에서 빛을 켜켜이 쌓아 올리거나, 검게 태우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물의 도움으로 흔들리는 나무, 20x25 cm, photogram, Gelatin silver print, 2023.
물의 도움으로 흔들리는 나무, 20x25 cm, photogram, Gelatin silver print, 2023.

모호한 형태의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선명한 진실은 때때로 힘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카메라에 찍힌 선명한 이미지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서 존재하지만, 가끔 미화되고 잊혀져가는 기억들이 더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기도 하니까요. 또는 그렇게 남아주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발표했던 전시들의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채집하는 운동을 하고, (채집운동, 2021) 걷는 연습을 하며 (걸음무, 2022) 비로소 조금씩 뛰고자 하는 용기는 (손끝에서 뛰기, 2024) 모두 잊혀진 감각들을 새롭게 저장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필연적인 우연과 반복의 시간을 거쳐 완성된 사진 조각들은 개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기억 속 세계와 맞물려 하나의 장면을 이루게 됩니다. 관람자들에게 경험의 간극을 내어주고 새로운 방식의 ‘사진읽기’를 시도할 수 있도록 남겨 두는 것 역시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모호한 형상들을 통해 각자의 경험 속 잊혀졌던 장면들이 회복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ARTIST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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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고전 방식으로 재료에 대한 연구와 반복적인 실험, 그리고 충분한 이해를 위한 공부가 동반돼야 하겠지만 작업을 하며 가장 재미를 느끼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회화와 사진, 그리고 조형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인접 분야와의 접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매체를 다루는 과정에 있어 넓은 스펙트럼의 지식을 가지고 싶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가까운 목표로는 7월에 북촌에서의 전시를 준비하는 것일 수 있겠네요.

모든 신진작가들의 바람이기도 하겠지만 작업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나가는 것 역시 가까운 목표입니다. 현재 생계를 위한 세 가지 일을 병행하며 조금은 더딘 속도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굳건한 마음으로 제가 가진 속도를 믿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스스로 결정한 여정을 즐기고, 희망의 세계를 채워가며 주어진 자리에서 조금 더 멀리 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삶의 방향성이자 예술적 가치관입니다.

ART CRITICISM   


박수경 작가는 사진을 주 매체로 하여 실험적인 사진 조각을 작업하는 아티스트다. 박수경은 빛의 흐름의 조화와 구성으로 감각적인 흔적들을 채집해 찰나의 순간을 기록한다. 색이 가지는 찬란함이 비워지고 우연한 잔상들이 여백 속에 고요하게 차분한 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박수경의 사진은 한 인간의 감정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감각으로 승화돼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회화적으로 그려졌다는 표현이 유독 어울리는 박수경의 사진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가는 시간이 잠시 머물다가 박제된 형상들로 남겨져 개인의 의식을 깨어나게 하는 몽환적인 상상력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섬세한 아름다움이 의식적으로 느껴지는 듯 이질적인 균열과 불규칙 속의 무형의 감각들의 나열이다. 우연과 반복의 시간이 맞물려 정적인 상태의 장면이 연출되면서 감각의 언어들이 박수경의 사진 속에 감각의 흔적들로 자리를 내어 존재하기 시작한다. (김선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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